참 환장하게 좋은 봄날입니다. 산 벚꽃이 한창인 지금 가슴이 할랑거려서 아무 일도 못할 것 같습니다. 연분홍치마가 눈앞에서 휘날리며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듯해서 초록빛 마음이 달려갑니다. 이 봄, 바다에 묻은 아이들만 아니었다면 저 꽃 저 이파리 속에 묻혀서 여한 없이 한세월 보냈을 것을, 이제 꽃은 꽃이 아니라 송이송이마다 먹먹한 아픔입니다. 직접 당사자가 아니어도 자식 가진 부모로써 몹쓸 상상에 시달리다 깜짝깜짝 깨어나곤 하는 4월16일인데 그래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간은 가는 것인지 때 되면 밥상에 둘러앉고 안부전화들을 합니다. 아마도 세월호의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 우리사회가 바로 놓이지 않는 이상 누구도 이 봄날의 트라우마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그럴 일이야 있겠습니까만 저 사는 이곳 면에서는 추모를 해야 할 시기에 하필 면민의 날 체육대회를 한다고 난리 북새를 만들었습니다. 5년 전에 4월12일을 면민의 날로 정하고 체육대회를 하면서 이날만은 꼭 천년만년 지켜낼 듯하더니 여태껏 한 번도 제 날짜에 치러진 적이 없었습니다. 해마다 행정편의에 따라서 날짜가 바뀌어 진다고 비판을 받았는데 올해는 급기야 4월17일로 정하더군요. 16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16일은 물론 17일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작년가을에 몇몇 사람들이 이곳 면사무소 앞에서 천막을 치고 세월호 진상규명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릴레이단식농성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4월께부터 경찰서 정보과에서 1주년 추모행사 하지 않느냐며 동향을 파악하더군요. 제가 생각하건데 아무래도 혹시 모를 1주기 행사를 묻히게 하기 위해서 면민의 날 체육대회로 소란을 떨지 않았을까요? 남의 복숭아나무 아래를 지날 때는 갓을 고쳐 쓰지 마라 했는데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하고 많은 날 중에 그 날을 택하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군민의 날이라고 하는 축제는 또 5월1일에서 사흘간입니다. 5월1일은 아시다시피 노동절입니다. 전 세계가 이날을 기념하는데 여기서는 기념식은 하여간에 먹고 노는 것에만 혼을 홀딱 뽑아놓게 합니다. 행사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어디에도 노동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프로그램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도리어 반 노동절행사 반 군민의 날인 듯합니다. 설마 일부러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요? 5월1일은 아직 멀었는데도 도로라고 생긴 곳에는 벌써부터 빈틈없이 현수막이 내 걸리고 행정조직을 통해서 분위기 띄우느라 난리입니다.

정신 줄 놓고 살아야 신간 편할 텐데 놓지도 못하고 제대로 붙들 줄도 모릅니다. 제대로 된 세상을 살아보지 못해서 생각은 틀어지고 항상 피해의식에 시달립니다. 그냥 봐주고 넘어갈 것도 그러지 못하고 응해야 될 것을 앙 하고야 맙니다. 저를 위해서도 별로 좋을 것은 없다 생각됩니다만 타고난 천성인가 조금만 부조리한 것을 봐도 마음이 언짢아지고 불편합니다. 나이 먹을수록 조금씩 내려놓으며 이해하자고 오늘도 다짐합니다.

요즈음은 비가 잦습니다. 다행인지 바람은 함께 오지 않아서 요란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이 마다하고 조금씩일망정 비가오니 따뜻한 날씨에 곧 초여름을 불러올 듯 풀이 무성합니다. 사나흘 후에는 예초기 둘러매고 밭둑의 풀을 깎아야 할 것 같습니다. 새끼를 치려는지 밭을 둘러보노라면 보리밭 속 여기저기서 까투리가 날아오릅니다. 예전에는 낫으로 보리를 베다가 코앞에서 꿩이 날아올라 놀래곤 했어요. 알을 품느라 마지막까지 도망치지 않던 것인데 생각 없이 그 꿩알 주어다 삶아 먹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쑥버무리도 봄엔 생각납니다. 언감생심 떡은 생각도 못하고 쑥에 쌀가루도 밀가루도 아닌 거무튀튀한 보릿가루를 거짓말처럼 버무려서는 사카린 물 타서 쪄 먹던 그 맛. 참 먹기 싫었던 음식인데 어른들 말씀은 쑥은 제 아무리 먹어도 속 편하고 탈이 없는 것이라며 쑥만 있어도 부황은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그 쑥이 음식이 아닌 베어내야 할 풀이 됐습니다. 너무 흔하니 귀하고 좋은 것인 줄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 좋은 쑥을 놔두고 애써 높은 가지에 달린 나뭇잎을 뜯고 아직 자라지도 않은 고사리며 취는 뿌리째 뽑아  냅니다.

뭐가 됐던지 다음해를 생각하고 삼분의 일 정도만 해서 여지를 남겨야 되는 것은 뭇 생명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의 그것은 하찮게 여기면서도 자기를 위해서는 그악을 떠는 모습. 그거 정말 자기를 위하게 되는 것인지요. 이봄엔, 특히 이즈음엔 무엇을 생각해도 무엇을 보아도 모두 다 세월호에 가 닿습니다. 안식구랑 같이 아침을 먹으면서 그 특집방송을 보다가 그만 몰래 눈물을 훔쳐야 했습니다. 겉으로는 이렇게 욕했습니다. “흥! 일 년 내 가만히 있던 놈들이 오늘 하루만 저리 요란을 떨고 또 일 년 가만히 자빠져 있겠지 나뿐놈덜-”

그러고 보면 제가 농사일을 줄여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어느 한 언저리엔 이런저런 것에 대한 무력감과 반감, 혹은 절망 때문인 듯도 합니다. 확실하게 놓지도 붙들지도 못하는 제 자신에 대한 불신이 농사에 옮겨가서 그 어떤 농사에도 자신을 잃어가는 것, 사람 회까닥 변하는 건 긴 시간 필요한 게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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