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 휘
농식품부 농정모니터위원


봄, 농부의 힘든 일은 가래질이 첫째다. 한 해 풍년농사를 기원하며 얼음이 채 녹기도 전 논물을 가두기 위해 시린 맨발로 논두렁을 매만지는 것이 영농의 첫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아니 직불제가 시행된 후 농업경영체 등록과 직불금 신청을 하기 위하여 추운 면사무소 강당에 모여 하루 종일 농업인 인증(?)을 받는 것이 영농의 시작이 되어버렸다.

돌이켜보면 직불금은 저임금 근로자에게 주식인 쌀을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하여 1973년 시범 도입한 후 1975년에 확대 실시한 ‘이중곡가제’(정부수매)가 전신이다. 그러던 것이 1995년 UR라운드의 WTO규정이 만들어지면서 정부수매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어 시행하게 된 정책이다. 직불금이 도입된 목적을 따져보면 농업인을 지원하기 위한 정책이라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지원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어찌됐든 농업경영체 등록이라는 농업인 인증을 하는 일이 한 해 농사의 시작이 된 것에 꽤나 불편하고 귀찮은 절차라는데 이견을 다는 농업인은 없을 것이다. 부정수급과 보조금의 불법사용을 방지하자는 큰 뜻에 동의하기 때문에서다. 그러나 정부수매가 시행되던 때에는 부정이니 불법이니 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다가 직불제가 시행된 후부터 문제가 발생한다는 아이러니는 심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특히 농가당 평균 100만원이 안되는 직불금과 쌀 백여 가마를 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을 빼면 농가당 평균 농업소득이 7~8백 만원도 안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직불금 정책이 쌀 생산 농가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은 사실상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일부 지자체에서 학생들에게 주는 무상급식을 두고 ‘부자에게까지 무상급식을 할 수 없다’며 선별적 복지로 지원하겠다고 선언해 사회적인 이슈가 된 현실을 따져보면 부자나 서민이나 모두에게 똑같이 저렴한 가격으로 쌀을 공급하는 것 자체는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큰 틀에서 쌀값이 싸지면 소비자에게 이득을 준다고 볼 수 있지만 이마저도 사 먹을 수 없는 서민이 부지기수라는 현실은 직불금도, 선택적 복지도 당초 목적과 거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다른 문제는 직불금 산정이다. 직불금을 수확기 이후 3개월(11~1월) 평균값으로 산정하다보니, 정부가 직불금을 줄이려고 공공비축미 매입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지역 농협으로 하여금 높은 가격에 수매토록 유도한다. 따라서 직불금 수령 끝나는 2월 이후부터 수입쌀과 공공비축미 방출 등으로 인해 쌀값이 거꾸로 폭락하는 사태가 계속되고 있다. 농민의 조합인 지역농협마저 수년간 누적된 적자로 인해 도산위기에 처해 있음은 농업인에게 이중적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다.

정말로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면, 직불금의 산정시기를 연중 평균치로 하여 수확기 이후 폭락사태를 방지해야 한다. 또한 잉여양곡의 문제를 매년 공공비축미 방출로 ‘물레방아식’ 미봉책으로 덮으려 해서는 안된다. 과거 우리가 헐벗고 굶주리던 시절 미국의 밀가루 원조로 기아를 극복했듯이, 농업예산이 아닌 해외협력기금으로 매년 2천억정도 출연하여 기아에 허덕이는 국가에 매년 10만톤 정도의 쌀을 무상지원하여 잉여 양곡의 문제를 해결하고 농업인의 사기를 복돋우며 우리가 받았던 은혜에 보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연말이면 여의도에 모여 FTA 반대와 생산비 문제를 책임지라는 집회로 1년을 마감하는 ‘신농가 월령가’를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 초강대국인 미국은 자원, 자본, 기술 등 어느 국가보다 월등함에도 우리나라의 ‘성장동력’이라는 자동차, 컴퓨터, 통신기기 등 공산품을 수입하면서까지 우리가 3D 산업으로 여기는 옥수수, 밀, 쌀, 소고기 등 농산물을 팔기 위해 세계무역시장의 패권을 주도하고 있다. 미국이 왜 그러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농업이 왜 중요하고 무엇이 농업을 위하는 것인지 각오를 새롭게 하였으면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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