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풀 깎는 게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입니다. 한번 깎는 데는 꼬박 이틀정도 품이 듭니다. 무게 10kg 남짓 되는 예초기를 등에 지고 하루 종일 풀을 깎는 것은 노동 중에서도 아주 상노동이어서 대단히 괴로운 일이지요. 젊은 사람 같으면 모르지만 저 정도 나이에는 도저히 하루 종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나절만 내쳐 예초기질을 해도 팔뚝이 올라가지 않아서 밥숟갈 뜨기가 힘들어지곤 합니다. 그러므로 한번 풀을 깎을라치면 조금씩 쉬엄쉬엄 하게 되므로 보통 사나흘은 걸리는 듯합니다.

봄풀이 연하기는 해도 너무 길게 자라도록 놔두면 예초기 날에 풀이 감겨서 그도 또한 베기 어렵더군요. 그래서 저는 두 번 깎을 것 세 번 깎는 게 더 쉽다 생각하고 그렇게 합니다. 그러면 풀 깎은 뒤의 그 산뜻하고 개운해진 모습을 자주 보게 되어 좋지요 일주일 정도는 그 느낌이 유지되어서 내내 단정한 마음입니다. 풀 깎을 때에는 개울가에 심은 나무 밑을 먼저 깎고 삥 돌아가며 밭둑을 깎고 그 다음엔 집에서 행길까지 이어진 길을 깎습니다. 그런 다음에 화단 주변과 앞 뒷마당 집 주변을 깎습니다. 깎으면서 또 늘 이런 생각으로 혼자 웃는답니다. ‘농사는 잘 못 지어도 풀은 잘 깎는구나!’

사실 외딴집에 살려면 집 주변에 늘 신경 써야 합니다. 저는 뱀 같은 것이 나올까봐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풀 하고는 상관없이 뱀, 그중에도 구렁이는 늘 집 주변과 울안에서 함께 사니까요 특히 구렁이는 사는 곳이 정해져 있어서 일년에 한 두 번씩은 꼭 장작더미 쌓아둔 곳이나 돌담에서 허물과 함께 알현(!) 하게 되는데 옛 어른들 말씀은 그게 업둥이라 하지 않던가요? 그래 반갑고 정다운 느낌이 들어서 멀리하고 푼 생각이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입니다. 봄부터 가을까지 무슨 이유에서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은 길목에 사는 덕분에 어쩔 수 없이 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게 됩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던가요? 아파트나 동네의 보통 집은 그닥 호기심이 생기지 않아도 누가 외따로 살고 있는 게 눈에 띄면 우선 저 집은 뭐 하는 집인가 하는 호기심과 함께 자연히 눈여겨 봐 지는 것 말입니다. 그러한 눈에 하고 사는 꼴이 어수선하고 지저분하게 보인다면 이런 말을 바람결에게라도 옮겨 준답니다. ‘누구는 꼭 돼지처럼 하고 살더라.’ 사실 돼지는 참 깨끗한 짐승인데요.

어쨌거나 그렇게 벌써 두 번의 풀을 깎고 엊그제는 논둑의 풀을 족쳐대러 갔습니다. 모심을 날은 6월 5~6일 무렵으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 안에 거름뿌리고 초벌 노타리 하려면 논둑의 치렁해진 풀들을 깎아서 논에 밀어 넣어버려야 하겠지요. 그리고 모내기 직전에 다듬어주듯 슬쩍 하번 더 깎아주면 모 심어진 모습과 함께 아주 예쁠 것입니다. 풀 한번 깎는데 논둑은 꼭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비가 잦았던 탓에 풀이 얼마나 많이 자랐던지 중간 대궁을 한번 치고 깎아야 했으니까요. 특히 억세고 무성한 소루쟁이들은 더 잘게 부수고 잘라야 합니다. 집에서 왔다 갔다 하기까지 세 시간, 잠깐씩 쉬는 것 따지면 논은 한나절이 걸리는 셈입니다. 그래도 제가 제일 먼저 풀을 깎았더군요. 제 논이 있는 근처에 유기농논들이 대부분인데 누구 한사람 그렇게 먼저 일을 하면 그 뒤를 이어 다른 사람들도 서둘게 됩니다. 그런 것도 조금은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이지요?

하지만 논두렁 깎다가 돌이 튀어서 무릎을 조금 다쳤습니다. 무릎과 정강이를 싸주는 보호대를 차야 하는데 보통 장화신은 걸로 대신하고 풀을 깎는 탓에 간혹 돌이 튀어 발을 다칩니다. 얼굴 쪽은 신발보다는 더 위험하다 여겨져서 보안경을 하고 또 그 위에 얼굴 가리게 가 달린 모자를 쓰므로 웬만해선 안전한데 발쪽은 제 몸뚱이 아니라고 여기는지 그만 방심하지요. 살 없는 뼈가 돌에 맞아서 가죽이 부풀어 오르고 피가 비치더니 나중엔 퍼렇게 멍이 생겼습니다. 그 보담도 뼈 속으로 지끈지끈 통증이 느껴져서 할 수 없이 두어 번 파스 신세를 져야했습니다.

요즈음은 한 가지 즐거움도 있습니다. 뒤란 대밭에 올라오는 죽순을 지켜보는 일입니다. 저희 집 뒤란엔 장독대가 있고 그 옆으로 이어 화단이 있는데 또 그 뒤로는 5~6m 넓이로 키 작은 관상수들이 길게 심어져 있고, 그리고는 소나무 숲과 섞인 대밭이 있습니다. 그 대밭에 올라오는 죽순이 거짓말 조금보태서 물동이만 하고 어린애들 몸뚱이 만씩 합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화장실 가는 길목에서서 죽순이 위로위로 뻗어 오르는 기세를 보는데 참으로 놀라서 입이 벌어집니다. 오전에는 죽순의 끝에서 쉼 없이 물이 떨어지는 걸로 보아 뿌리로부터 빨아올려 키를 키우는데 쓰느라 그러겠지요. 하루에 30cm 이상씩 자란다더니 그게 거짓말이 아니어서 단 며칠 만에 키가 저의 두 배 세배 되게 자랐습니다. 손가락 굵기의 대 세 뿌리 옮겨다 심은 지 10여년 만에 이제 제 꼴 갖춘 대가 되었습니다. 조금 더 아담한 대밭이 되게끔 멀리 뻗어나간 것들을 배고 나이 먹은 것들은 솎아줄 생각입니다. 대숲 서걱 이는 소리와 대숲에 비 내리고 눈 쌓인 이른 아침이나 늦은 저녁의 정경이 맘속에 그려져서 죽순을 보는 것이 더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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