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광 근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과 연구관


한바탕 흐드러진 꽃 잔치로 전국을 질펀하게 훑고 간 봄을 지나 여름의 문턱에 와있다. 농촌에는 감자, 옥수수 새싹들이 여름 준비를 시작하고, 이삭이 팬 보리가 한껏 푸르름을 자랑한다. 아침과 저녁 햇살에는 금빛 은빛 물결을, 비 오는 날에는 안개와 구름과 어우러진 물방울을 맺고 있다.
보리는 쌀, 밀, 콩, 옥수수와 더불어 5대 곡물 중 하나로 기원전 1만 7천〜1만 8천 년 전부터 인류의 주요 식량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5세기부터 재배됐다. 10〜11월에 씨를 뿌려 5월 말에서 6월 초에 수확하는 보리는 춘궁기에 서민의 굶주림을 해결해준 고마운 곡식이다.

보리가 아직 여물지 않은 4〜5월에 기아문제가 가장 심각해 그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했다. 먹는 느낌이 다소 거칠고 색이 거무스름한 보리밥은 서민층의 넉넉지 못한 살림살이를 상징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보리는 가축의 조사료로서 가치가 높고 겨울에 노는 땅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료를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에 딱 맞는 사료작물이면서 겨울~초여름까지 청보리밭의 장관을 연출하는 좋은 경관자원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작물이기도 하다.

쌀과 밀 보다도 먼저 인류 주식으로 이용되던 보리는 20세기 이후 생산량이 증가한 쌀과 밀에게 그 위치를 내어주며 잡곡의 하나로 전락하게 되었다. 정부 수매가 중단된 2012년 갑자기 줄어든 생산 때문에 가격이 폭등하고 무너진 생산기반은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회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2011년 보리 정부수매 마지막 가격은 겉보리 1등급이 27,600원/40kg 이었으나 수매가 중단된 2012년에는 44,000원 선에서, 2013년에는 5만 원을 훌쩍 넘어 거래가 이루어지는 기현상 속에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 급등현상이 발생하였고 지난해까지 3년간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재배면적을 보면 생산량이 많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어 높은 가격이 지속될 것 같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에서는 제2의 주곡에서 잡곡으로 전락한 보리 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앞장서고 있다.

단순히 섬유질이 많아 건강에 좋다는 보리쌀에서 먹기에 부드러운 찰보리, 기능성이 더해진 검은색, 자색, 푸른색 등 다양한 품종을 개발했으며, 산업체와 함께 보리 새싹을 이용한 혈당강하제, 차, 두유 뿐 만아니라 보리 새싹 추출물이 함유된 스크럽, 세안제 등도 개발했다.
새로 개발된 보리는 과거와 달리 조리특성도 좋아져 쌀과 섞어 밥을  하기만 하면 되며 유색보리가 개발되어 기능성물질이 추가되는 등 곡식으로서의 품격을 높였다.

이에 발맞춰 보리 산업의 생존 전략을 뒷받침하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식량위기에 대응하는 보리의 역할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먼저, 잡곡이나 쌀의 대체물로 볼 것이 아니라 장차 국민들에게 발생할 우려가 높은 성인병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막아줄 좋은 수단으로 봐야한다.

또한, 식용위주의 소비에서 가공 산업화를 통한 새수요 측면을 고려하는 종합적인 관점에서의 보리 관련 연구가 추진되어야 하고 수매중단과 FTA에 대응하기 위해 비즈니스 모델의 구상을 기반으로 하는 계약재배와 용도별 맞춤형 유통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더불어 용도별 품질등급제를 적극 도입하여 계속적으로 우량종자를 생산 보급하여 자체적으로 품질을 높이는 노력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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