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대로 200평 조금 못되는 밭에서 양파 서른 망 담고 말았습니다. 날이 많이 가물어서 캐기는 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모를 내놓고 조금 한갓진 마음으로 양파를 캐기 시작했는데 땅이 굳은 대다가 양파가 병으로 자라질 못해서 땅에 박혀 있는 상태이므로 어떤 것은 호미를 들이대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렇지 않고 잘 자랐다면 땅위로 솟아올랐기 때문에 캐는 것이 참 재밌는데 말입니다.

하여간 이렇게 저와 아내가 사흘씩이나(!) 캔 양파를 마침 집에 다니러온 아들 녀석에게 대궁을 자르게 하고 망에 담았습니다. 그 망 작업을 한날은 또 어떤 줄 아십니까? 전국적으로 5mm 안팎의 비가 온다는 예보가 떨어졌는데 아내는 때마침 홀로 계시는 친정어머니가 아파서 가봐야 하는 처지였어요. 까짓것 5mm정도의 비라면 맞아도 상관없겠지만 맞추지 않는 이만은 못하겠고 그라도 오기만 온다면 그전에 미리 치워버리고 비닐까지 걷은 상태로 놔둬야 밭에 다음 일을 하기가 수월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은 바쁘기만 했지요. 새벽에 눈 벌어지자마자 작업복 주워 입고 혼자 양파를 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은 찌푸릴 때로 찌푸려져서 조금 오다말더라도 비는 올 모양인지라 중간에 비 몰이를 하더라도 일을 줄여놔야겠더라고요. 다행히 날이 흐린 탓에 밤에 이슬도 오지 않아서 양파는 고실고실 담기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침 먹기 전에 20kg망으로 열 포대를 담았습니다.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므로 마음이 급해서 아침도 방에 들어가지 않고 마루에서 먹고 커피한잔 얼른 마신 다음에 버스정류장까지 아내를 대려다준 다음에 또 일을 시작했습니다.

참 숨 가쁘지요? 넙덕지만한 땅위에서 풍신 나게 생긴 양파작업을 하는데 정말이지 그깟 비 좀 맞으면 세월이 덧나나요? 그래도 그렇게 서둔 덕분에 양파작업을 다 끝내서 밭둑에 쌓아놓고 마늘까지 깨끗이 담아서 뒤 처마의 바람 잘 통하는 곳에 가져다 놓고, 온갖 먼지를 둘러쓰면서 비닐까지 걷어서 포대에 담아 놓으니 오후 1시30분, 비는커녕 물방울 몇 개 떨어지다 말았지만 덕분에 일은 잘 마쳤습니다. 사람이 좀 느긋해야 건강에도 좋고 돈도 붙는다는데 저는 그와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성미대로 하느라 애면글면 하는 식입니다. 땀에 절은 옷까지 빨아 널고 머리감고 면도하고 올 들어 처음으로 찬물에 그냥 샤워하고 덕분에 코가 맹맹한 채 방에 들어와 몸을 누이니 후유하고 한숨이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내일은 밭둑과 집 주변전체를 풀 한번 깎아야겠다. 생각하고 또 그 일로 생각이 닳기 시작 합니다 그려.

비가 여러 날 오지 않으니 두 가지 좋은 게 있습니다. 풀 자라지 않아서 좋고요. 밭에 무얼 심을 수가 없으니 일거리 없어서 좋습니다. 아직은 하지 전이라 여름 끌이 급할 것은 없지만 농사꾼이 날마다 하릴없이 희디흰 밭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마음은 야윕니다.  그사이에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논에 일이 생겼습니다. 모를 낸지 헤아려보니 이제 12일째인데 비가 오지 않고 기온이 높은 탓인지 단 며칠사이에 개구리밥이 엄청 퍼졌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논 한 구석에 조금 있어서 눈여겨보지도 않고 그것이 퍼져서 무슨 문제가 생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개구리밥이 일을 저질러 논 것 입니다.

논의 물꼬를 보러갔는데 간밤에 바람이 좀 심하게 분 덕분에 그게 모두 한쪽으로 몰려서 모를 다 껴 누르고 있더군요. 그 상태로 하루 이틀 지나면 큰일이겠다 싶어서 서둘러 집에 돌아와 부엌에서 쓰는 쇠 그물로 된 뜰채 같은 것을 챙겨 다시 논으로 갔습니다. 그 뜰채로 몇 번 퍼 담지 않아 플라스틱 바구니에 가득차는 개구리밥을 건져 내기 두 시간, 밀 심은 논에 아직 모를 내지 않은 후배가 논에서 일을 하기에 허리를 펴고 막걸리나 한잔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자기는 금방 집에서 먹고 왔다더군요.

혼자 막걸리 집에 가기는 좀 그래서 그 시간을 참고 일이나 하려는데 잠깐 보이지 않던 후배가 어느새 가게에 다녀왔는지 비닐봉지에서 주섬주섬 맥주 캔을 커내며 형님 이리 나오시라고 부릅니다. 그러면서 “목마를 때는 맥주 한 캔이 약” 이랍니다. 그 고마움에 후배 앞이라도 저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아 - 이 사람이 이렇게 속이 깊었는지, 평소 드러나 보이지 않던 이런 한울님들이 지금 세상에도 있다는 말인지 -

그 힘이 결국 그로부터 3시간 넘게 개구리밥과 사투(!)룰 벌이는데 필요한 보약이 됐습니다. 오후 2시30분 무렵부터 시작한 그것이 중간에 맥주 한 캔 마시는 5분정도를 빼고 7시30분 무렵까지, 무려 다섯 시간을 허리는 끊어지고 속이 뉘엇거리기 까지 했지만 견뎌내서 말끔하게 모 들을 제 자리에 돌려놨으니까요. 지나가는 사람마다 참 별거로 생고생을 한다며 위로 하는데 이상하게도 제 논만 개구리밥이 많이 생기는 것을 어찌합니까?
붉은 해가 서산에 훌훌 넘어갈 때는 쌀밥 먹으려는데 이정도 고생이야 해야지 라는 생각도 적막과 함께 조금 서글픔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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