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메르스와 가뭄 때문에 사방이 난리입니다. 요즈음 TV가 해주는 뉴스라는 게 딱 세 가지, 메르스와 가뭄과 총리 후보자 인사 청문회입니다.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만 앞의 두 가지 것이 아니라면 총리후보자가 인사 청문회를 무사히 통과하여 후보딱지를 떼게 됐을까 하는 의심이 듭니다. 메르스와 가뭄이 누구는 죽이고 누구는 살렸다고 생각이 드니 괜스레 헛웃음이 나옵니다.

다행인지 저 사는 이곳은 메르스도 오지 않고 약 일주일 전쯤엔 비가 왔습니다. 물론 그전에 날이 몹시 가물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죠. 약 한달 가까이 비가 오지 않으니 풀조차 자라질 않고 밭에는 여름작물을 심을 수도 없었고요. 농번기인데 농한기처럼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가 장마철이 가까워서인지 간간이 소나기 예보가 있었는데 조금 오고 만다던 그 소나기가 50mm이상의 해갈 단비로 바꾸어져버렸던 것입니다.

마당에 놔뒀던 플라스틱 대야에 세수 물 만큼이나 빗물이 차고 이미 갈아 놓았던 밭은 사흘이 지나가도 경운기로 되갈아 보니 땅이 질었습니다. 그래 땅 좀 마르기를 기다려 밭을 갈고 엊그제 깨 씨 뿌리고 고구마 심었습니다. 비가 와서 갑자기 습도가 높아진 탓에 날씨가 몹시 무더웠습니다. 경운기질 할 때는 해질녘이라서 그걸 못 느꼈는데 이튿날 아침 깨 씨를 뿌릴 때부터는 아주 땀을 흠씬 흘리고 말았습니다.

모든 종자가 거의 다 그렇지만 깨 씨는 뿌릴 때마다 다른 것에 비해 두 배는 신경이 쓰입니다. 작고 부피 없는 것을 넓은 바탕에 고루 알맞게 뿌려야 되니 흙이나 모래에 섞어서 뿌려야 합니다. 한번으로는 완벽할 수 없으니 가로로 세로로 두세 번 교차하면서 조금씩 뿌려나가야 합니다. 오른 팔뚝만 죽어라 내둘러야 하니 팔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지요. 그러니 온몸에 땀이 더 나고 빨리 지치는 겁니다. 끌어 덮는 것은 힘들기는 해도 마음 써야 되는 일이 아니므로 몸만 고달프고 맙니다. 그러긴 해도 비 따위로 살살 쓸 듯이 하거나 갈퀴로 얇게 덮어야 되므로 눈감고 한다고야 할 순 없지요.

고구마 두둑을 만드는 일도 한나절동안 꽤 힘이 들었습니다. 경운기로 갈아서 두둑을 잡으면 그걸 괭이로 매끈하게 다듬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매끈하게 다듬는다는 게 어떤 건지 아세요? 고랑의 흙을 퍼 올려서 반듯하고 이쁘게, 그러니까 관리기가 지나가며 해 놓은 것보다 더 곱게 두둑을 만드는 겁니다. 그렇게 해놔야 아내가 고구마 순을 묻을 때 즐거워서 고구마순의 간격도 자로 재듯이 묻어 놓는답니다. 세 두둑에 고구마 순을 묻고 물까지 주고 저의 내외가 참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그걸 바라봤어요. 벌써 고구마가 무성히 자라기라도 한다는 듯이 말이지요. 가을의 멧돼지 걱정이야 그 순간에는 잊는 거고요.

그런 다음 콩을 심었습니다. 꿩 비둘기 놈들 때문에 밭에 바로 심을 수는 없고요. 언젠가 한번 밭에 바로 심고는 약 일주일가량을 꼭두새벽부터 밭머리에 붙어 앉아서 망을 본적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특히 콩 종류는 녀석들로부터 지켜낼 도리가 없어요. 허수아비도 우습게보고 반짝이 줄도 아무 효과가 없다고 어떤 사람은 논에서 새 ㅤㅉㅗㅈ을 때 쓰는 폭약포를 다 설치해놓기도 하더군요. 그래서 이번에도 저희는 포트에 콩 모종을 냈습니다.

128구멍짜리 포트 판에 상토를 반쯤 채우고 칸칸마다 두 알씩 콩을 넣는 거지요. 그런 다음 다시 상토를 채우고 그러기를 서른 판, 이정도면 200평 정도는 심을 수 있을 겁니다. 이걸 마당에 비닐 펴고 반듯하게 늘어놓은 다음 물을 듬뿍 주지요. 그러면서 이 또한 쟁그라워 죽을 지경입니다. 꿩 비둘기 이놈들이 제 아무리 간이 크다 해도 감히 마당까지 와서 파먹지는 못 할 테니까요. 저기를 좀 보십시오. 제 집은 산 밑이라서인지 조금만 가만히 앉아서 살펴보면 꿩이란 놈들 어느 겨를에 대가리 숙여 감추며 밭 귀퉁이로 숨어들잖습니까?

이렇게 저번 비온 뒤로부터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오늘은 비가 옵니다. 이 비가 전국에 걸쳐서 온다니 비록 많이 오지는 않는다지만 또 누가 압니까. 저번의 비처럼 장맛비로 올른지도요. 그렇게 돼서 제발 먹는 물이라도 맘대로 할 수 있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중부지방과 영동지방의 가뭄이 심한데 메르스마저 그쪽이 더 심하더군요. 비가 온다는 날은 왠지 아침부터 마음이 참 차분해집니다. 가령 오늘 비가 오신다면 어제까지는 죽을 똥 살똥 열심히 일을 해놨으므로 오는 비를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아침도 조금 늦게 먹고 커피도 한잔 오래 홀짝이고, 그렇게 한 방울 두 방울 비님이 오시면 마루 끝에 앉아서 그이를 바라보는 것도 좋고 방안에서 신문을 펼쳐드는 것도 좋고 또 거 있잖습니까. 옆에서 TV 채널을 돌리는 아내를 슬쩍슬쩍 곁눈질해보며 갑자기 왜 아내가 이뻐질까 생각해 보는 것! 그럴 때 당신의 아내는 매몰차게 당신의 손을 쳐내진 않나요? 그렇다고 무색해서 포기하며 서운해 하지 말고 좀 더 가까이 부드럽게 다가가십시오. 아 참 그러기 전에 아까 한잔 마시던 커피는 당신이 타셨나요? 아픈 팔다리 주물러 준다고 아양이라도 한번 떨어보셨나요? 지금 밖에 비가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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