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술을 좀 많이 마셨습니다. 물론 좋은 일로요. 술 마신 이야기를 굳이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만 하고자하는 이야기가 술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 조금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저는  공동체학교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일주일에 한번 시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를 가르친다고 하니 그 말 또한 적당한 말은 아닙니다만 학생들에게 좋은 시를 만나게 하여 시를 읽고 쓰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것이니 가르치는 행위가 없다고야 할 수 없겠지요.

저희 공동체 학교는 3월 달에 학기를 시작하여 어제(6월26일)를 끝으로 1학기를 마쳤습니다. 무슨 학교가 그러냐 궁금하시겠지요? 앞으로 1주일은 해마다 장마 방학이라 하여 기숙사생활을 하던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가 그 후에 소집하여 약2주일정도 논밭의 풀을 매도록 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러면 더위가 한창인 7월 중순이 되므로 그때 정식 여름방학을 하지요. 그래서 어제가 실은 1학기의 맨 끝요일에 놓인 저의 마지막 수업이었답니다.

그전에 저는 학생들에게 마지막 수업 끝나고 나면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약속을 하고 대신 니들은 시 한편씩을 써오라 했습니다. 그렇게 써온 시들을 발표하고 합평을 해보느라 수업시간은 쉬지도 않고 2시간가량 이어졌습니다.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버린 거지요. 술은 아이들과 함께 짜장면을 먹으면서부터 시작됐습니다.

물론 학생 신분에 있으니 얘들은 먹지 않고 저 혼자 기분 좋아서 마시는 술입니다. 제가 앞에 서서 일방적으로 무얼 가르칠 때는 잘 몰랐던 아이들의 생각이나 행동이 자기가 직접 쓴 시에서는 속임 없이 드러나는 것이라 개중에는 예쁜 놈 당돌한 놈 벌써 허무에 빠진 놈 엉뚱한 놈 별놈이다 있습니다. 녀석들의 시는 시적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솔직 재밌는 것들이어서 저는 기분이 참 좋았던 겁니다.

일주일에 한 번하는 수업을 준비하느라 몇 시간씩 자료를 찾고 모았던 수고들도 지나고 나서 그런지 달콤하더군요. 그래서 학생들 집으로 다 가버린 텅 빈 학교에 저 혼자 다시 올라가서 공동체 식당에 앉아 마냥 마셨던 겁니다. 덕분에 오늘 아침 밥을 못 먹고 내내 누워서 뒹굴어야 했습니다. 어제 저녁부터 먹은 것은 없는데 술독이 빠지느라 화장실을 몇 번을 들락거렸는지 모릅니다. 그럴 때마다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느라 맹물을 들이키고, 그럭저럭 12시가 가까워서야 속이 다 씻겨 졌는지 편안해지고 머리도 맑아지더군요.
그런데 그때부터가 문제입니다.

속에서 무얼 들여보내라 하는데 헛헛해진 속에 들여보낼 것이 마땅찮은 겁니다. 시장이 가까우면 콩나물이나 북어 조개 따위를 사다 슴슴하게 끓여서 한 두어 사발 따뜻하게 들이키면 될 터인데 그럴 수도 없고, 아내가 있으면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이니 어떻게 비책이 나왔을 텐데 제가 아침을 못 먹으니 혼자 부엌에서서 한 숟갈 뜨는 둥 마는 둥하고 일 나갔고요. 이 괴로움의 여정이 음식에 대한 제 상상의 시작입니다. 저는 참 이상하게 술 때문에 밥을 한 두 끼 못 먹으면 나중에라도 꼭 그 끼니가 뱃속에 들어가 줘야 견디겠더라고요. 그런데 오늘처럼 우선 속을 달랠 마땅한 것이 없으면 상상으로 배를 채우게 됩니다.

이런 것입니다. 봄에 이 바다에서는 쫄 복이 많이 나옵니다. 그걸 한상자사서 따 말려놨다면 쌀뜨물에 한 두어 시간 담가 놨다가 된장기 조금하고 들깨가루 풀고 또 얼큰하게 고춧가루 풀어서 미나리 넣고… 이러기 시작하면 입에 신 침이 고이며 창자 속은 천하없어도 그 쫄 복탕 아니면 안 되겠다는 듯 배배꼬이기까지 합니다. 일어나서 또 물을 한잔 먹고 이를 악물고 마당을 한 바퀴 돌아야 겨우 진정이 되는데 암만해도 이것은 너무 멀고 높은데 있어 그나마 진정이 조금 되는 겁니다.

또 이렇습니다. 좋은 황구 한 마리 잡아서 내장 대가리 한 솥에 넣고 폭신 고와서 마른고기로 먹을 만큼 먹고 국물 양념해서 그 진득진득한 것에 밥 한 그릇 말아 땀 푸욱 솟아나게 먹었으면 살겠는 것, 그게 아니면 그 살코기를 수육으로 썰어서 찹쌀가루 발라서 말려서 냉장고에 넣어 놓았다가 한 냄비 끓여내서 냄비 째 끼고 앉아서 한번 먹어봤으면 싶은 것, 이것도 또한 너무 멀고 높은데 있어 제 복이 닿지 않습니다.

이렇게 한번 시작되면 온갖 음식들이 다 뛰어나와서 저를 괴롭히고 속을 더 헛헛하게 합니다. 오늘은 이런 생각도 하였습니다. 연하게 자란 열무로 담근 물김치 아삭아삭 새곰새곰하게 익은 놈 한 그릇에 삼삼하고 구수하게 밥솥에 쪄낸 강된장을 역시나 걱실걱실한 총각처럼 생긴 뚝배기에 담아 보리가 반 남아 섞이게 지은 고실고실한 반식기 밥에 척척 비벼서 한 그릇 먹어봤으면… 가만~ 그러고 보니 냉장고 안에 열무물김치가 있긴 있습니다. 며칠 전에 마을의 형님 댁에서 보내 오셨는데 너무 달아서 한번 맛보고 놔둔 것입니다. 저는 그라도 한 모금 국물을 마실 양으로 냉장고 속 김치 통을 찾아 뚜껑을 열었다가 도로 닫고 할 수 없이 텃밭의 상추 세입 뜯어서 씻어서 밥통의 밥 한 숟갈과 된장 쌈이라도 해야 했습니다. 일 갔다 돌아온 아내가 짐작이 가는지 그런 저를 측은히 쳐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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