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 범
국립농업과학원 농업환경부장


가뭄으로 국토가 메말라 가고 있다. 특히 경기, 강원, 충북 지역이 심각한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우제도 여러 곳에서 지내고 있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에서는 기우제를 지내자 비가 왔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예술가들도 발 벗고 나섰다. 마임이스트, 퍼포머, 타악그룹이 함께 모여 바닥을 드러낸 소양호에서 ‘해갈 퍼포먼스 벼락’을 열기도 했다.

농사를 천하의 근본으로 삼았던 시대에는 이렇게 가뭄이 지속되면 어김없이 기우제를 지냈다. 가뭄이 들면 결국 흉년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백성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대사였기에 가뭄을 타개하려는 노력은 국왕을 비롯해 민관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우리 조상들의 기우제와 관련된 이야기는 단군신화에서도 볼 수 있다. 환웅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올 때 거느린 삼천의 무리 중 바람을 담당하는 풍백, 구름을 주관하는 운사와 함께 비를 관장하는 주술사인 ‘우사(雨師)’가 앞자리를 차지할 만큼 중요했다. <삼국사기>에는 시조묘나 명산대천 등에서 기우제를 올리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사>에는 조상·궁중·불교·무속·명산대천 등에 제사를 올리는 것과 함께 시장 옮기기, 용그림 기원 등의 풍속이 전해지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해마다 거의 빠지지 않고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있는데, 심지어 태종 16년에는 아홉 번이나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경국대전’에는 ‘국행기우제’가 명문화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각 군현마다 기우제에 영험한 장소가 열거되어 있을 정도로 중요시 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도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영덕군수의 주재로 군내 116개 부락에서 산봉우리마다 장작, 솔가지, 시초(땔나무로 쓰는 풀)를 집채만큼 쌓아 놓고 밤 10시가 되자 한꺼번에 불을 붙여 산상분화(山上焚火)를 거행했는데,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빗줄기가 쏟아졌다고 한다.
농촌마을 노인들을 만나 여쭤보면, 1970년대까지도 기우제를 지낸 곳이 많았다. 지역이나 마을의 유지들이 유교식으로 기우제를 지냈다는 이야기와 무당이나 승려를 불러 굿을 했다는 이야기도 흔히 들을 수 있다.

지금도 해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 있다. 충남 금산군의 ‘농바우끄시기’가 그것인데, 2000년에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32호로 지정된 이후 해마다 금강여울축제와 금산인삼축제에서 재현공연을 펼치고 있다. 금산군 느재마을에 위치한 ‘농바우’는 장군전설이 서려 있는 신성한 바위로, 그 생김새가 반닫이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과 같아 붙여진 이름이다. 농바우끄시기는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지내는데, 농바우에서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무제’, 농바우에 매어놓은 용줄을 당기는 ‘농바우끄시기’, 농바우 아래 개울을 막은 후 여성들이 발가벗고 들어가 키로 물을 까부는 ‘날궂이’ 등을 순서대로 행한다. 그렇게 하면 볼썽사나워 비를 내려준다는 것이다.

농바우끄시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랫말을 보면 “비나이다, 비나이다. 만백성 소원이니, 비 좀 내려 주옵소서.”라고 기원하는 대목이 나온다. 현재 가뭄이 심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도 똑같을 것이다.
장마전선이 북상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하지만 남부지역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중부이북지역이 걱정이다. 장마철에는 날이 개기를 기원하는 기청제(祈晴祭)를 했다는 기록도 많은데,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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