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 승 범
국립농업과학원 농업미생물과 박사


우리 조상들은 떼루아(자연환경)를 잘 활용한 신토불이 우리 술을 즐겼다. 밀, 쌀, 녹두, 보리 등 직접 경작한 곡물을 거칠게 빻아 물로 반죽하고 원반형으로 누룩을 만들어 따듯한 곳에 두어 주변의 곰팡이들을 불러 모았다. 밀, 쌀, 보리 등 곡물은 녹말이 많아 곰팡이가 좋아하는 먹이지만 딱딱한 껍질로 싸여 있고 물기가 없어 곰팡이가 접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들을 빻고 물을 부어주면 곰팡이에게는 잘 차려진 밥상이 된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40일가량 곰팡이를 키우면 술 만드는데 필요한 충분한 양의 당화효소가 확보된다.

또 곰팡이의 일종으로 알코올 발효를 담당하는 효모와 우리 몸에 유익한 유산균도 함께 자란다. 직접 생산한 쌀로 고두밥을 지은 후 여기에 곰팡이, 효모가 잘 배양된 누룩을 넣고 물을 부으면 곰팡이가 만들어 놓은 당화효소가 밥의 녹말을 포도당으로 바꾸고 이어 효모가 포도당을 알코올로 바꾼다. 우리 땅에서 나온 곡물이 우리곰팡이의 도움을 받아 신토불이 우리 술로 태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술을 만들던 우리 곰팡이가 산업화 논리에 밀려서 일본에서 유래한 백국균이나 황국균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술맛도 변해버렸다. 그동안 우리 술 복원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해방 후 70년이 지난 현재에도 공장에서 제조하는 막걸리와 전통소주에는 백국균이 청주에는 황국균이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이들의 기원과 제조방식에서 일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막걸리를 만드는 주요 곰팡이인 백국균은 최근까지도 일본인 양조업자 카와치 겐이치로를 기리기 위하여 만들어진 아스페르길루스 카와치라는 학명을 사용해 왔다. 다행히 농촌진흥청에서 백국균의 바른 이름이 아스페르길루스 카와치가 아니라 아스페르길루스 루추엔시스임과 함께 이 곰팡이가 일본에서 술 만드는데 사용되기 이전부터 우리전통 누룩에서 흔하게 사용되는 곰팡이임을 밝혔다.
우리 술은 우리곰팡이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21세기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 집집마다 술을 만들던 예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다. 이에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누룩을 이용하여 우리 주변의 곰팡이를 불러 모아 배양한 후에 술을 제조하는 전통 방법은 그대로 계승하여야 한다. 이는 친환경적인 방법이며 누룩의 곰팡이 유전자원을 현지에서 보존한다는 의의도 있다. 하지만 표준화와 대량생산 등에 한계가 있으므로 이는 식품명인을 중심으로 하고 지역적 특색을 살려 소수 고급화 전략으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표준화된 대량생산을 위하여 백국균과 황국균의 단일곰팡이를 사용하되 균주만이라도 우리 전통누룩에서 분리한 우리 곰팡이를 개발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최근에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전통누룩으로부터 17 점의 우수 곰팡이를 확보하고 생물자원관에서도 3점의 곰팡이를 확보하여 막걸리업체에 기술이전을 추진하여 우리나라 유래 곰팡이로 우리 술을 만들게 한다니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더 좋은 방법은 우리 술에 적합한 고유종 곰팡이를 개발하여 대량생산에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 전통누룩에는 백국균과 황국균으로 사용되는 아스페르길루스 외에도 뿌리곰팡이(리조푸스), 털곰팡이(무코르), 리크테이미아, 신세팔라스트룸 등의 다양한 곰팡이가 존재하고 당화효소 생성능력을 포함한 술 제조 능력이 우수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중 뿌리곰팡이 1종만이 전통주 제조업체에 의하여 산업화되었는데 이들 토종곰팡이에 대한 연구와 산업화가 절실하다.

백국균과 황국균이 오랫동안 널리 사용되었기에 이를 토종곰팡이로 급속하게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연구자와 생산업체가 차근차근 노력하여 우리 술을 우리곰팡이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생물주권을 지키는 것이고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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