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멧돼지 이야기를 또 하게 됩니다 그려. 옥수수를 좋아하는 제 안식구가 욕심을 내서 누가 준 좋은 종자라는 걸 핑계로 무려 400포기나 심었는데요. 늦게 심은 탓에 남들 옥수수에 멧돼지 피해있다는 시기를 좀 비끼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멧돼지란 놈들이 저희 것만 비켜가는 아량은 없어서 역시나 어느 날 밤 방문을 받았습니다. 다행히 그때는 옥수수가 아 직수염도 나지 않아서 맛이 없었는지 두어 포기씩 서너 군데만 분탕질을 했는데요, 또 그 옆에 있는 고구마 밭도 여러 군데 파헤친 흔적을 남겼습니다. 고구마도 늦게 심어서 이제 겨우 실뿌리나 생겼을 때입니다.

이것 참 큰일이더군요. 이렇게 말하면 아내가 싫어할지 모르겠습니다. 옥수수는 연할 때 몇 차례 따 먹으면 그만이지만 고구마는 겨우내 봄내 먹을 수 있는 좋은 끼니 대용 아니던가요? 그래서 생각다 못해 옥수수 고구마 밭 옆에서 야영하기로 했습니다. 효과도 없는 목책기도 이미 걷어 치워버린 상태고 덫이나 올무 또한 제 손으로는 놓을 재주가 없으니 막고 품는 식밖에는 도리가 없었던 거지요. 마침 옆에 7~8m 사이를 두고 좋은 감나무 두 그루가 있어 그 가운데에 평상을 가져다 놓고 준비를 했습니다. 나무 밑이라 밤이슬은 막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비가림막은 하나 있어야겠기에 비닐을 가져다 지붕을 만들었고요. 마침 또 펴기만 하면 되는 모기장이 하나 있었기에 평상위에는 그걸 쳤습니다.

밤에 덮을 이불을 미리 가져다 놓고 마트에 가서 플래시 약도 새로 샀습니다. 호루라기를 찾다가 없어서 소용도 없겠지만 그래도 믿음성은 있게 죽창도 하나 만들어서 감나무에 기대 놓았습니다. 그날 밤부터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는 야영이 시작 되었습니다. 가만! 꼽아보니 그렇게 처음 시작은 7월 20일 무렵부터였군요. 옥수수는 그로부터 한 열흘 지켜내면 수확할 수 있지만 고구마는 시월중순까지는 놔두어야 캘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시작은 했어도 대략 난감이었습니다. 금실 좋은 저희 부부가 밤마다 이산가족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멧돼지들은 초저녁부터 바로 행동 개시하는 성질 급한 놈들이라 저녁뉴스도 보지 못하게 생겼더군요. 밤에 외출은 더욱 어려운 일이겠고요. 더군다나 이놈들은 사람이 자리를 비운 시간만을 귀신같이 알아서 내려 온다내요.

천만다행으로 8월초에 아버님 기일이 있어 밤12시 가까이 자리를 비웠건만 그날은 이 녀석들이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옥수수도 한참 익어서 따내고 있는 중이었는데요.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이날은 아버지제사 모시라고 야들이 봐준 모양입니다. 문제는 사흘 전에 일어났습니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칠석날이었습니다. 한 달 동안 이어진 야영도 이제 몸에 배어서 밤에 들려오는 온갖 가지 뭇짐승들의 소리에도 적당하게 귀가 무디어졌는데  칠석날 저녁에 내리는 비만큼은 저도 왠지 맞기 싫어 방에 들어와 잔 게 화근이 되었습니다.

멧돼지 이 귀신같은 놈들이 정확하게 그날 밤에 내려와서 고구마 밭을 삼분의 일이나 갈아 버린 겁니다. 멧돼지를 지킨 한 달 적공이 하루 밤에 도로 아미타불이 된 것이지요. 이러니 제가 멧돼지 이야기를 다시 안 꺼내겠습니까? 고구마는 이제 애기들 주먹 만씩 하게 자라느라 두둑에 금이 가는 중이고 그 사이 고구마 밭김은 두 번을 매주었습니다.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다음날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겨서 하루 밤 집을 비워야 하기도 했습니다. 서로 약속이 얽혀있는 일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지요.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없었으니 멧돼지들도 저의 고구마 밭을 잊어버리거나 포기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던 게 사실이고요. 하지만 멧돼지가 저보다 한수 위였습니다. 잊어버린 것도 아니고 포기한 것도 아니고 고구마가 크기를 기다리며 기회를 엿봤던 셈인거지요. 결과적으로 말하면 칠석날 견우직녀님의 해후의 눈물 덕을 저희 부부보다도 멧돼지 식구들이 본 것입니다. 조물주의 덕화가 미물에게까지 이리 고루 미쳤습니다. 나머지 고구마라도 지킬 양으로 외출 했던 일은 반 토막으로 자르고 죽을 똥 살 똥 두 시간을 달려서 겨우 어둠발이 짙어질 무렵 집에 올수 있었습니다.

멧돼지 얘기 또 할게 있습니다. 한 2주일 전쯤엔 멧돼지 한 마리를 잡기도 했습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그날은 늦게까지 콩밭을 매다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호미를 놓고 돌아오는 중이었지요. 집 앞 화단 근처에 멧돼지라고 직감되는 것이 화단을 가로질러가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덮어놓고 앞을 막아섰지요. 어른 허벅지 마큼이나 자란, 아직 등줄 무늬가 사라지지 않은 새끼 멧돼지였고 행동은 조금 굼떴습니다. 큰소리로 아들 녀석과 아내를 불러서 이리저리 포위망을 좁히고 사정거리 안에 들어오길래 발길질 두 어 번에 제압을 해서 뒷다리를 치켜들었습니다.

그랬더니 말이지요. 세상에 멧돼지의 온몸에, 어른 손톱만한 것에서부터 이만씩 한 것까지 바늘하나 꽂을 틈 없이 진드기가 붙어있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비실비실하느라 어미와 형제들을 놓치고 제 손에 잡힌 거지요. 결국 이틀 후에 죽어서 나무 밑에 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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