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도매인, 농민단체가 함께 판단해 달라”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농민단체를 대상으로 가락시장 시장도매인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새로운 거래제도인 양 포장되고 있는 시장도매인이 망령으로 남아있는 위탁상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에 농민들의 정서와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더욱이 위탁상의 적폐를 뿌리 뽑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영도매시장 가락시장이 무대가 되면서 자기모순에 빠진 모양세다.

시장도매인 제도입 ‘재점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지난달 열린 농민단체 간담회 자리에서 “가락시장을 현재와 같이 경매제 위주로 갈 것인지, 보완적으로 일부 시장도매인제를 둘 것인지, 둔다면 언제가 적정한 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농입인단체에서 출하자에게 이익이 되는 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시장도매인제 도입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다음과 같은 문제와 대책에 대해 농업인단체에게 함께 머리를 맞대어 바람직한 대안이 되는 지 판단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대금지급의 안정성-정산회사를 통해 출하자에게 판매 당일 또는 익일 송금 △가격 결정의 투명성-경매제와 동일하게 실시간으로 시장도매인 거래내역을 출하자에게 공개. 이를 위해 지난 8월부터 상장예외품목(비경매 품목) 실시간 거래내역 서비스를 제공 △농업인의 출하선택권-새로운 거래제도를 도입하여 서비스 경쟁 촉진 △물류비용 절감-거래과정의 단순화로 유통비용 절감을 제시했다.

과연 그럴까. 우선 시장도매인은 새롭지도 않고, 거래제도도 아니다. 농안법이 규정하고 있는 공영도매시장의 거래제도는 상장경매와 정가·수의매매 2가지 뿐이다. 수집주체인 도매시장법인. 분산주체인 중도매인. 수집과 분산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시장도매인. 이들 모두는 공영도매시장의 거래주체일 뿐이다.
공영도매시장의 도매시장법인과 공판장은 상장경매와 정가·수의매매를 주관하며 농안법에 따라 최대 7%(가락시장 4% 수준)의 수수료를 수익으로 한다. 구조상 출하된 농산물을 비싸게 팔아야만 수익이 높아지기 때문에 출하자 이익과 궤를 같이 한다.

그러나 중도매인은 경락받은 농산물의 판매를 통한 마진으로 수익을 챙기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야 수익률이 높아지는 구조다. 시장도매인은 수익구조에 있어서는 양수겸장이다. 위탁 수수료와 판매 마진을 모두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1998년 시장도매인 논의가 시작된 이후 당시 농림부가 마련한 ‘시장도매인제 운영지침’(2000.10월)에서도 대금결제는 정산창구를 통한 즉시결제로 되어 있다. 또한 “시장도매인의 도입은 신규시장일 경우 적합한 시설을 갖추고, 외부에서 능력있는 도매시장법인 모집이 어려울 때” 도입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정보없는 거래내역… 농민 ‘우롱’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강서시장에 시장도매인을 도입한 지 10년이 넘은 상황에서도 정산조직을 제대로 출범시키지 못하고 있다. 가락시장은 지난해 7월 출범한 가락정산회사(주)를 통해 상장예외품목의 대금정산을 대행하고 있지만, 2015년 7월 현재까지 월평균 정산회사 이용자는 중도매인 287명, 출하자 1,087명 수준에 불과하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지난 8월부터 상장예외품목의 실시간 거래내역 서비스를 강조하며 경매제와 동일하게 실시간으로 시장도매인 거래내역을 출하자에게 공개하겠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제공되는 서비스로는 어느 중도매인이 가장 좋은 가격을 내는지 확인할 수 없다. 더욱이 가락정산회사(주)의 홈페이지에서 조차 가격정보가 제공되지 않는다.

반면 상장경매는 각 별인별로 반입량, 산지, 등급별 가격 등이 제공된다. 특히 각 법인별 홈페이지는 일일시황과 주간전망 산지 및 소비지 동향 등의 유통정보를 제공한다. 이런 상황을 알면서도 “경매제처럼 판매 가격의 투명성 확보”를 운운한 것은 농민단체에 대한 우롱이다.

농안법 시행규칙(제34조의2)에 따르면 “1. 거래일자별·품목별 반입량 및 가격정보 2. 주주 및 임원의 현황과 그 변동사항 3. 겸영사업을 하는 경우 그 사업내용 4.직전 회계연도의 재무제표”를 “공시는 해당 도매시장의 게시판이나 정보통신망에 하여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은 한국시장도매인연합회 홈페이지를 통해 52개 시장도매인의 재무제표와 주주 및 임원현황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농안법 시행규칙이 규정하고 있는 거래일자와 품목별 반입량 및 가격정보는 52개 시장도매인별 공시가 되고 있지 않다. 시장도매인이 농민들에게 ‘가격 결정의 투명성’에 대한 공감을 얻으려면 매수 및 위탁거래별 거래내역 공시 정도는 먼저 주장하고 나서야 한다.

시장도매인제, 출하자의 거래비용 상승시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유통정보를 통해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의 품목별 평균가격을 공개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3일 정도의 시차가 발생한다. 그럼에도 52개 시장도매인 각각의 품목별 반입량과 가격정보는 한 차례도 공시된 적이 없다. 더욱 큰 문제는 개설자의 관리책임을 대행하고 있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강서시장 시장도매인의 공시의무 위반을 인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울시의회의 행정사무 감사를 통해 수차례 지적을 받았음에도 수년째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기존 경매제에서 시장도매인 거래제도(출하경로)를 추가해 산지 물량 유치 촉발로 출하자에 대한 서비스 질을 높이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거래제도는 아니다. 이미 가락시장에는 6곳의 상장경매 출하처가 있다. 산지에서 인근에 있는 지방도매시장을 두고 서울까지 출하하는 이유는 출하선택권이 없어서가 아니다. 가락시장의 분산력 때문이다.

다양해지는 유통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구색과 물량을 갖춘 도매시장이 적소다. 또한 시장도매인을 도입해서 정착시키기 보다는 자본과 인력, 다양한 거래경험을 갖추고 있는 도매법인을 통해 정가·수의매매를 기반으로 한 제3자판매 방식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면서 유통변화에 순응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는 시장도매인이 단순한 거래과정으로 유통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실일까.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관계자의 보고서 한 대목이다. “강서시장의 시장도매인제가 농가 수취가격을 높인다는 증거는 없는 반면, 오히려 경매제에 비해 출하자의 거래비용을 9.4% 상승시키며, 이중 담보비용이 40%, 감시비용 25%, 탐색비용 21%, 협상비용 14%로 분석됐다.”

또 다른 관계자는 ‘강서시장의 상장경매와 시장도매인제 가격 비교분석’에서 “시장도매인제는 양자거래의 속성상 가격결정 기능을 위축시키고 투명하고 신속한 가격발견 기능이 크게 저해되며, 가격변동성을 도리어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 체험하며 연구를 병행한 실무자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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