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선거구 사수”…인구편차 따른 획정은 ‘농업말살’

“선거구간 인구편차 2대 1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야 합니다.” 최근 선거구 획정의 독립성을 추구하기 위해 마련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회의 뜻은 확고하다.
가령 국회의원을 뽑는데 인구 20만이상인 단일 선거구가 있기 때문에 10만이하인 선거구는 합쳐야 한다는 헌재의 판단을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지론을 편다.

이쯤되면 수도권과 대도시는 의원수를 늘려야 하고, 이를 제외한 농어촌지역은 단일 후보를 내지 못하고 여러지역을 묶어 후보를 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의원수가 줄어든다는 결론이다. 수도권이 9명정도 늘고 농어촌지역이 6명정도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당연히 농어촌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여야 국회 정치인들은 난리다. 이들 정치인들은 당초 농어촌 선거구의 대표성을 인정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농민단체들에게 은근히 기대고 있는 모양새다.
농민단체를 비롯한 농업계는 소외되고 있는 농촌현실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농업말살’ 정책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국농업의 붕괴를 더욱 자초하는 원인이라 지목하고 있다. 국회 여야는 당리당략에 의해 팽팽히 맞서고 있고, 총선을 향한 법정 일정은 촌각을 다투고 있다. 여야의 여건과 협상에 따라 게리맨더링(특정정당이나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선거구를 변경하는 것)의 야합도 가능한 때다. 농촌이 위태롭다.


새누리당“비례대표줄이고 지역구 보호”

여당은 비례대표를 줄여서라도 지역구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어촌지역의 대표성 문제가 있으니, 농어촌지역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농어촌특별선거구’를 강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헌재의 결정 한도내에서, 농어촌지역을 최대한 보호하겠다는 의미정도로 해석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또한 지난 17일 농민단체 대표와 대담에서 “헌재의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지만, 농어촌 지역의 특수성을 배려해 선거구가 대폭 감소하는 일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가 지난해 10월 인구편차 2대1의 결정을 내리면서 표의 등가성(한 표의 가치가 모두 같아야 한다)이 지역대표성(농민단체 주장)에 우선한다고 판결한 것을 따를 수밖에 없다는 뉘앙스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례대표 감축 반대 주장에 역공을 폈다. 김용남 새누리당 원내 대변인은 24일 브리핑을 통해 “새누리당의 입장은 간단하고 합리적이다. 국회의원 총 정수는 늘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을 살려야 하고, 최대 6개의 군이 하나의 국회의원 선거구로 묶이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사실상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당권을 가진 권력자가 임명하는 국회의원으로 당권을 거머쥐는 데 성공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전리품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는 사실상 수십 명의 국회의원을 임명할 수 있는 특권을 내려놓는 데 동참하길 바란다”고 거듭 비례대표 축소를 강조했다.
헌재의 판결에 따라 인구편차 2대1 결정은 존중하고, 농어촌을 위해선 특별선거구를 논의하자는 결론인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비례대표 절대 사수”

이에 반해 야당은 비례대표 수를 줄여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강하다. 선거에서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표를 사장시킬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새정연 신정훈 의원은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이 비례대표 못지않게 중요하지만 비례대표도 사회적 약자와 정치적 소수자를 대변한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농어촌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의원들의 반발도 있는 터라 당론이 모호한 상황이다. 황주홍(장흥강진영암)의원과 김승남(고흥보성) 등 호남지역의 일부 의원들은 농어촌선거구 확정문제와 관련된 성명발표 및 당대표 면담 등 지역구 보호 활동에 나서고 있다는 전언이다.

농어촌지역국회의원“무조건 넓어진 지역구는 무의미”

농어촌지방주권지키기모임(농어촌의원모임) 소속 여야 국회의원들은 집단반발 행동에 나섰다. 지난 24일 농어촌의원모임은 국회에서 긴급모임과 기자회견을 갖고 선거구획정위원회의 지역구 의석수 결정은 농어촌 지역의 대표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강력 반발했다. 이들은 우선 선거구획정위의 지역구 의석수 결정을 철회하고, 농어촌지방 특별선거구를 설치할 것을 주장했다. 또 지역구 의석수 확대와 함께 비례대표 축소 등을 발표했다. 새누리당 의견과 비슷한 주장인 셈이다.

황영철 새누리당 의원(홍천횡성)은 “획정위 안은 기형적인 선거구를 만들 수밖에 없다”면서 “현행 4개 군이 한 선거구인 지역을 한 사람의 국회의원이 감당하기 어려운데 이것을 또 5~6개로 늘리는 것은 국회에서 일하지 말고 지방에서 지역주민만 만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새정연 이윤석 의원(무안신안) 또한 “제 지역구는 서울보다 면적이 24배 큰데 국회의원수는 서울이 48명, 제 지역구는 1명”이라며 “이 얘기는 지역 대표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획정위 결정을 비판했다.

농어촌의원모임 의원들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선거구 획정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부분을 질타하며, “여야 대표는 정파적 이해를 초월하고 도농간 균형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선거구 조정안을 정개특위가 마련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여야대표 회담이 해결책”

일단 비례대표 축소 여부를 두고 팽팽한 의견대립으로 회의 성립이 안되고 있다. 김무성 대표가 제안한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공천제) 도입을 두고 문재인 대표와 협상문제가 얽혀 있어, 진도가 안나간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개점 휴업중인 정개특위의 작동을 촉구하고 있다. 지적대상인 비례대표와 지역구 비율 문제, 특별선거구 인정 문제, 소지역구를 묶는 단위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등은 정개특위 논의사항이고, 이를 빨리 결정해야 내년 총선에서 예상되는 분란을 막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정개특위의 빠른 속개가 필요하다는 의견은 여야 모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결정권이 없는 상황에서 무조건 안건 보류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농민단체“획정안은 농업붕괴 프로그램”

우리농어촌지역지키기운동본부를 비롯한 각 농민단체들의 농촌지역 선거구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15일부터 서울여의도에서 시작된 한농연의 천막농성에 정치권의 관심이 쏠려 있다. 선거구와 직접관련된 여야 국회의원들은 물론 정부 관계자들의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에 한국농촌지도자중앙연합회 등 29개 농민단체로 이뤄진 우리농어촌지역지키기운동본부는 최근 성명을 통해 “헌재의 결정에 따라 표의 등가성을 원칙으로 한 인구편차 조정만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확정한다면, 농어업예산 및 농어촌지역예산은 줄고, 지역불균형발전은 심화될 것”을 우려했다. 운동본부는 또 “확정안에 인구수 못지않게 중요한 농어촌지역의 대표성과 특수성, 그리고 국토를 이루고 있는 지역의 면적 등이 충분히 고려되길 바라며, 투표가치의 평등을 이유로 농어촌 지역에 살고 있는 선거구민들이 오히려 불이익을 받지 않는 공정하고 올바른 획정 안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발표했다.

전농 또한 23일 별도의 성명을 내고 “획정위 안대로 추진된다면 농촌 소외가 심화되는 가운데 지역구 감소는 농민들에게 정치적 박탈감을 가져오기에 충분하다”면서 “농촌 지역구 감소는 근본적으로 한국농업의 붕괴가 원인으로, ‘배지 셈법’에 빠지지 말고 비례대표의 중요성과 지역구의 특수성을 모두 아우를수 대안을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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