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순 강
농촌진흥청 토양비료과 농업연구관


올 여름은 유난히도 고온이 오래 지속되었다. 더군다나 가뭄도 길어서 농사가 힘들었던 계절이었다.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기온도 서서히 낮아지는 것으로 보아 이제 계절은 곧 완연한 가을의 문턱을 넘어설 것이다. 가을은 풍요로운 황금색 벼가 출렁이는 결실의 계절이다. 아울러 벼가 수확된 논에서는 가축에게 먹이기 위하여 볏짚을 둥글게 말아 쌓아놓는 작업이 이뤄질 것이다. 하얗고 거대한 볏짚더미, 일명 ‘공룡알’이 가을 들판의 여기저기 보이게 될 것이다. 이것은 축산농가에서 가축 사료로 사용하여 조사료 자급률을 올리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토양비옥도 입장에서 보게 되면 논토양으로 돌려보내져서 내년 농사용으로 쓰여야 할 유용한 유기물이 토양에서 제거되는 것이다. 볏짚이 수거되면서 논토양에 유기물 함량이 감소되고 양분 공급 능력이 떨어지며 양분의 순환도 단절되기 때문이다. 토양 유기물은 작물이 자라는 데에 있어서 토양을 부드럽게 하여 작물의 뿌리 내림을 좋게 하고, 벼에 유용한 양분들을 저장했다가 다시 작물에게 공급한다. 또한 토양에 유용한 역할을 하는 미생물들의 먹이가 되면서 작물 생산성을 올리는 데 여러 가지 유리한 도움을 준다. 그래서 논에 유기물 함량을 증진하는 것은 농사의 기초 체력을 든든하게 하는 것과 같다.
 
국내 논 면적 중 약 60여 만ha가 벼 수확 후 겨울철에 조사료 작물의 이모작 재배가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추수가 끝난 겨울철 논에 조사료를 재배하는 면적은 2010년 24만 4천ha에서 2014년 29만 7천ha로 점차적으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겨울철에 조사료를 심을 수 있는 넓은 면적의 논이 쉬고 있어서 안타깝다. 겨울철 논에 조사료 작물을 재배하면 가장 좋은 점은 쉬고 있는 농경지에서 가축 사료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봄철에 재배된 조사료를 수확하고 나면 토양에 조사료의 그루터기와 뿌리가 남아 많은 양의 유기물과 양분을 토양에 되돌려 주게 된다. 이것은 논에서 볏짚을 수거함에 따라 발생하는 유기물 감소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농촌진흥청에서는 2015년 1월부터 3월까지 조사료를 많이 재배하는 남부지역 농가를 대상으로 벼 수확 후 이모작으로 조사료를 재배 한 논과 재배하지 않고 쉬고 있는 논에 토양 비옥도를 조사한 바 있다. 조사 결과, 조사료 작물로는 이탈리안라이그라스, 청보리, 호밀 등이 주로 재배되고 있었으며, 이중에서 대체로 이탈리안라이그라스가 많이 재배되는 편이었다. 또한 이탈리안라이그라스를 재배하였던 논에 유기물 함량은 30g/kg (논에 유기물 함량의 적정 수준)으로 다른 조사료를 재배하였던 논과 조사료를 재배하지 않은 논 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조사료 재배 후 토양에 환원되는 그루터기와 뿌리의 양은 대략 6톤/ha 수준으로 벼를 수확한 이후 아무 것도 심지 않은 논에 비해서 유기물을 공급해 주는 효과가 큰 것으로 확인됐다. 무엇보다도 벼를 수확한 논을 겨울철에 그대로 두면 농촌 경관이 황량해 보일 수 있지만 조사료를 재배하게 되면 겨울철에도 녹색으로 빛나는 논을 볼 수 있어 우리 농촌의 아름다운 경관 가치도 아름답게 꾸밀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관점에서 비추어 볼 때 겨울철에 논을 그냥 방치하는 것에 비하여 벼 수확 후 겨울철 논에 조사료를 재배하는 것은 농경지의 이용률도 높이고, 동시에 부족한 조사료를 공급하여 조사료 수입 대체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풍요로움이 가득한 가을이 깊어지면서 벼의 수확이 끝난 들녘에 조사료 작물이 재배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겨울철 동안 논에서 조사료 작물이 푸르게 재배되고 품질 좋은 가축사료도 생산하면서 토양 비옥도를 향상하는 알찬 농사를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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