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을 베었습니다. 6월8일에 심고 10월8일에 베었으니 꼭 넉 달 만이군요. 포트모를 해서 손 모내기를 했는데 작년보다 나락이 더 잘 되었습니다. 하긴 올 같은 해 나락농사 못 지었다고 하면 말이 아니죠 벼농사에 영향을 줄 만한 태풍 한번 없었고 비 또한 잦지 않았으니까요. 나락이 아주 약간 선 듯한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베어도 무방하지만 조금 섭섭했다고 할까요?

하지만 콤바인이 제 논 근처에 와서 작업을 한다기에 일 수월하게 할 생각으로 베어버렸습니다. 제 논은 이쪽 지역의 유기농 영농조합법인이 운영하는 벼 건조 저장시설 옆에 있는 까닭에 베는 날은 그곳에서 일하는 후배들이 모두 논둑에 나와 서서 구경들을 했습니다. 처음에 콤바인이 논의 가장자리를 따라 두 바퀴째 돌고 조금 더 베어나가자 부저가 울렸습니다. 그러면 돌아와서 자루에 쏟아야 하는데 그냥 마저 한 바퀴를 돌고 나서 쏟았습니다. 그러니까 1톤 자루에 가득 나락이 찼습니다.

그런 식으로 부저가 네 번을 울렸습니다. 처음 번처럼 가득 차지는 않았지만 그만그만하게 네 자루가 나온 것입니다. 작년에도 많이 나왔지만 작년보다도 더 나온 셈입니다. 나락을 거의 다 베어 나가자 후배들이 “형 올해 대박 터졌네. 기분 좋지요?” 너스레를 떨며 “전어 회 한 접시만 먹읍시다”고 사정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수법을 잘 알고 있기에 “이 사람들아, 자네들 농사가 내 농사보다 더 많고 잘 지었던데 무슨 나한테 회 타령이야” 하지만 그 말이 싫지가 않은 게 참 이상하지요?

저는 또 그 지점에서 옛날 생각이 나는 거였습니다. 벼 베는 날의 그 흥성거림 말입니다. 아침 일찍 일꾼들이 낫 들고 논에 나와서는 먼저 벼 두세 다발을 벱니다. 그리고는 아침부터 막걸리를 한잔씩 걸칩니다. 이 술의 이름이 무엇인지 혹시 아시는지요? 이름 하여 이슬털이 술입니다. 이슬마르라고 잠시 앉아 술 한 잔 먹고 담배 한대 꼬실르는 건데 말이 그럴듯하게 이슬털이 술이지 실은 워밍업용 술인 거지요. 그러고 나서 이제 본격적으로 나락을 벴습니다. 나락 베는 날은 가장 기분 좋고 마음이 넉넉합니다. 아침 저녁나절의 두 번의 새참과 점심은 물론 저녁까지 해 먹이고 힘든 고비마다 참참이 술을 먹입니다.

농사를 많이 짓는 부자들은 풍년이 든 해는 더욱 손이 넉넉하지요. 일군들뿐만이 아니라 그 식구들까지 다 불러서 저녁 한 끼 정도는 함께 먹였습니다. ‘일꾼들은 먹을 것으로 잡아야한다’는 말은 이렇게 잘 먹이면 그만큼 일을 많이 해 준다는 말입니다. 사실 또 많이 먹이지 않으면 하루 종일 구부리고 엎드려 낫질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마른 논에서야 그깟 것 아무것도 아니지만 발 푹푹 빠지는 고래실논에서 벼를 베고 그 볏 다발을 논둑으로 쳐내는 일은 황소 같은 힘이 아니고서는 해낼 수가 없어요.

하지만 이런 시절이 가고 콤바인 한대가 사람 수십 명 몫의 일을 하는 지금은 아무리 풍년이 들어도 논둑에 따수운 바람은커녕 찬바람만 납니다. 일꾼들의 일밥 한 끼를 위해 몇 달 전부터 산과 들을 누비며 준비해야했던 주부들의 노동을 콤바인은 아예 수행되지도 않도록 했습니다. 논 한 필지 나락을 베는 데는 한 시간이면 족하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은 논둑에 앉아 술 한 잔 먹을 새가 없습니다. 그것은 콤바인 기사도 마찬가지. 힘들게 낫질을 하는 셈인데 논 주인에게 술 한 잔 못 얻어먹는 것입니다.

그래 못 이기는 척 “요즈음 전어회 1키로에 얼마나 한다냐?”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들었다 보았다 얼굴에 희색들이 가득해서 3만원이면 떡을 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가격까지 잘 아는 걸로 보아 전어회 못 먹어본 사람들도 아닌 듯 했지만 콤바인이 마지막 한 바퀴 도는 것을 보며 후배들에게 네 귀퉁이 베어놓은 나락이랑 좀 처리하라 이르고 회 사오마고 회 센터에 갔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옛날세대여서 그런지 작으나 많으나 일꾼이 일을 하는데 그냥 말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나락 많이 나온 것 하고는 상관없이요.

아는 집에 갔더니 횟집 주인의 인심이 박하지 않아서 전어 1킬로그램을 뼈째 썰어주는데 2만원을 받았습니다. 제 꼴을 보고는 웬일이냐 묻길래 이만저만해서 왔다 했더니 빙그레 웃으면서 제 나락 베는데 자기가 인심을 좀 써도 되냐며 2만원 받겠다내요. 이것 참! 이렇게 되면 먹자는 사람이나 먹일려는 사람이나 거기 조금 더 보태려는 사람이나 모두들 두루두루 잘 살겠지요? 역시나 누우런 그 들판이, 이 가을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힘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뉘라 여름 지기들의 땀 흘린 수고와 햇빛과 비와 바람과 땅의 보살핌으로 알게 모르게 일어나고 스며들고 널리 퍼지는 이 가을 마음들을 훼절하리요마는 그러나 한 가지, 요즈음 벌어지는 교과서 국정화 논쟁을 보면 농민의 입장에서 참 씁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뭣이다냐 그 엊그저께 TV 토론에 나온 여야의 정치인과 국정화 찬성 반대의 입장을 가진 학자 각 두 명씩 양쪽이 벌인 논쟁 말인데요. 일제시대의 산미증산 정책이 수탈이냐 수출이냐, 역사에 있어서 아무리 객관적 학술적 시각이 중요하다고 해도 굶어죽으면서 빼앗긴 그것을 세상에 수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그게 거 밥숟갈 입에 떠 넣는 사람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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