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 갑니다. 단풍이 고와지는 것으로 그걸 느끼곤 했는데 올해는 제 느낌인지 몰라도 단풍이 곱지는 않은 듯합니다. 대신 성긴 빗방울과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 그리고 스산한 바람이 겨울을 재촉하는 듯해서 가을이 깊어졌음을 알겠습니다. 어제 이어 오늘도 비가 옵니다. 거기다가 오늘은 입동입니다.

가을 속에 겨울이 슬쩍 끼어들어 있다 해야 할까요. 아니면 겨울 속에 가을이 남아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계절은 한 중간이 아닌 끝과 시작점이 항상 더 좋습니다. 안타까움과 설레임이 교차하고 아쉬움과 기대가 섞여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쓸쓸함이 함께 있어 좋습니다.

어제는 멀리 나들이를 갔다 왔답니다. 혼자나 둘이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단체관광이었습니다. 관광차 안에서 갈 때와 올 때 정신 줄 놓고 흔들어대는 그런 관광이지요. 그러므로 목적지나 그 곳의 경관은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가고 오면서 먹는 것, 피곤하거나 지루하지 않을 동선, 약간의 눈요기 거리가 있으면 되고 관광차 기사가 얼마나 꿍짝을 잘 맞춰주느냐가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됩니다.

저는 놀러가는 단체의 대표가 돼나서 일 년에 한 번 있는 이 행사에 늘 피곤이 쌓입니다. 일일이 각기 다른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주기도 힘들고 여럿이 만족하기란 더욱 어려워서 섭섭한 일이 꼭 한 두 가지씩은 생기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저러한 것들을 유야무야 덮으며 나갈 수 있는 것은 술입니다. 좋을 때 좋은 사람이거나 실을 때 싫은 사람과 술잔으로 대신 부딪고 섞이어서 몸 흔들어대면 대충 끝이 보이지요. 그런 다음의 그 지긋지긋한 뒤처리들.

오늘도 아침 열한시 무렵까지 어제의 잔해들을 정리했습니다. 그때까지 다행으로 비가 간간하더니 일끝내자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대강 손발 씻고 방에 들어와 신문을 펼쳐듭니다. 제게는 이 순간부터가 휴식입니다. 무슨 티낸다고 하실지 몰라도 방에 누워 스탠드 켜고 손에 무언가 읽을 것을 펼쳐들어야 마음이 편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요즈음 신문은 제 휴식에는 적당하지 않더군요. 면을 넘길 때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기사들이 많아서요.

그러나 어제 저녁에 땐 불로 방 아랫목이 아직 따끈따끈해서 이불속에 발을 넣고 있자 이내 10분이 지나지 않아서 스르르 잠이 쏟아집니다. 조금 더 졸음이 무거워지기를 기다려 신문을 놓고 눈을 감습니다. 잠을 청하고 자시고 할 것 없이 기분 좋게 잠속으로 빠져 드는 것을 느낍니다. 그로부터 두 시간, 참 오랜만에 깊은 낮잠을 자게 되어서 깨어 일어나자 기분이 상쾌하고 몸이 가뿐합니다. 이렇게 비가 오면 부실한 무릎관절 때문에 잠을 자도 시원치 않은데 오늘은 예외군요. 잠시 문을 열어두고 비 오는 바깥풍경을 바라봤습니다.

다시 비 이야기입니다만 비중에서 가장 좋은 비가 어떤 비일까 생각해 봅니다. 참 한가하지요? 물론 가뭄 끝에 내리는 해갈비가 그중 달겠는데 그런 실속 있는 비 말고 사람의 감정에 작용하는 비로 말한다면 저는 가을비를 꼽겠습니다. 봄비요? 말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촉촉하게 슬슬 내리는 봄비는 부드럽고 온화하기 짝이 없어서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차별을 두지 않는 조물주위 손과 같은 것이지요. 여름비는 별로 재미없고요. 하지만 갑자기 몰려드는 천둥 번개와 소나기는 몹시 매력 있는 것이어서 벌판을 말 달리는 장부의 호쾌한 기개가 느껴집니다. 그마져 없다면 여름찜통을 차마 견디기 어려울 겝니다.

가을의 비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합니다. 하루하루 달이 차올랐다가 다시 우그러들듯이 만추를 재촉하는 것도 비요 쇠락을 부추기는 것도 비입니다. 미구에 닥쳐올 스산한 것들을 속에 품고 있는 것이라 정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쓸쓸함과 외로움이 비수처럼 날카롭게 살갗을 찌르고 정처 없는 발걸음을 할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그립게 하고 마음의 병을 깊게 합니다. 때론 걷잡을 수 없는 혼자만의 세계로 한없이 나아가게 만듭니다. 단풍이 한없이 붉어졌다가 끝내 흰색으로 바래며 떨어지고 그 자리 또 다른 잎을 예비하는 부름켜가 자라듯 가을비는 우주질서의 순환 속에서 늘 마지막 어둠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이 가을비는 마음 놓고 맞을 수 없어요. 제 아무리 비를 좋아해도 저는 가을비는 머리털위로 받기가 어렵더라고요. 이 비는 느끼고 바라보는 비입니다. 우산을 쓰고 낙엽 뒹구는 거리를 걸을 것도 못되는 비입니다. 검은 구름짱이 달리는 여름의 그것은 풍요와 결실을 담고 있는 것이지만 가을의 저 스산한 구름은 ‘사흘 굶은 시어미상’이라는 말이 있듯이 기대할게  못됩니다. 서둘러 몇 아름의 장작을 집안으로 옮겨야 되고 처마 밑에 까대기도 달아야 되고 짐승의 우리를 손질해야 합니다.

부엌에 서서 유리창 문을 할퀴는 빗방울을 바라보고 있는데 개울건너 불과 20m도 떨어지지 않은 형님네 감나무 밭에 멧돼지 한 마리가 빗속을 배회합니다. 사람의 눈을 거의 의식하지 않은 듯 중간크기나 되는 것이 이리저리 닫기도 하고 냄새를 맡으며 서성이는 군요, 저들에게도 계절을 미리 내다보는 능력이 있어 겨울을 이겨내야 하는 삶의 무게를 사람처럼 느낄까요? 여름내 고구마 밭에서 밤을 새며 저들을 경계했던 것과는 달리 이러저러한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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