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이 넘게 흐리고 지짐거리기만 하던 날이 한 번 추워지기 시작하자 눈으로 바뀌었습니다. 내륙 산간과 설악산 쪽에 눈이 온다는 소식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날이 푸근했는데 하룻밤 사이에 차디찬 얼음장으로 변하고 진눈개비를 쏟아내기도 합니다. 가을은 어디가고 겨울이 코앞에 바싹 그 모습을 드러내며 “인저 슬슬 맛 좀 볼텨?” 하는 느낌입니다. 김장들 서두르라는 말씀이겠지요? 텃밭의 배추 이파리들이 한 두 겹씩 눈의 무게로 벗겨져서 마치 치마를 벗은 듯 허옇게 알몸을 드러내고 무는 기세 좋게 위로 치솟던 이파리들이 땅에 납작합니다.

사람들 심리란 참 이상해서 따뜻한 날은 가만히 있다가 하필 이렇게 걱정스러운 날 배추 뽑고 무 뽑느라 난리더군요. 하긴 김장은 추울 때 해야 김치가 잘 익는다는데 꼭 그래서 라기 보다는 조급한 마음이 그리 시키는 듯합니다. 앞으로 영영 궂은 날만 계속 되기라도 한다는 듯이요. 저희 집은 김장할 것 가지고는 하나도 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정작은 큰집에서들 난리 몰아칩니다. 오늘 당장 처가에 김장한다고 해서 안식구는 내일까지 거기 가 있게 됐고요, 이번 주말과 내주 초에는 두 형님 댁에서 김장 날을 받아놓았다고 통지가(!) 날아왔습니다.

김장이 큰일은 큰일인데 아무래도 여자주장으로 하는 일이라 남자들은 쫌 편하지요? 배추 따다 주고 간 치는 데 옆에서 도와주고 함께 씻고, 버무릴 때 들어다 주는 일, 김치 통 나르는 일정도. 그러고 보니 남자들 일도 장난은 아닙니다만 무거운 것 드나드는 것이야 힘으로 꿍꿍 하는 일이고 간 죽이는 것과 양념배합 같은 신경 쓰는 일이 여자들의 몫이라 실은 그게 힘든 일입니다. 아무렴요! 남자는 그런 복잡한 일은 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이런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건 주부로써는 커다란 자랑일겁니다. “저 사람이 간은 기가 막히게 잘 본다” 던지 “양념은 저이가 타야 김치가 맛나다” 던지라는 인정을 받으며 김장을 지휘하고 마무리하고 뒤처리까지 질서 정연하다면 아마 다른 일도 그의 오지랖 속에서 그리되기 쉽겠지요. 주부가 이렇게 늘 살림의 중심에 있는 가정은 바람도 잠잠 할 겁니다. 어쨌거나 저희 집도 다음 주 중엔 김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딸애가 집에 왔는데 몇 년 만에 같이 김장하면 좋을 듯 하고, 때가 인제 됐습니다.

김장은 이렇듯 지나간 일이 아니어도 치러낼 일이 아무 걱정 없이 되려 흥겨울듯한데 감나무에 매달린 감을 쳐다보고 있는 심정은 그리 넉넉지 못하군요. 먹시 같은 쪼그만 녀석들이야 겨울까지 가지에 남아있어도 무방하고 오히려 그 편이 보기 정겨운데 대봉감은 나무에 매달려 있으니 제 게으름을 가지마다 눈 벌겋게 뜨고 증거 하는 것 같아 불편합니다. 먹시는 워낙 자잘하기도 하려니와 생감이 시장에서는 거래가 거의 되지 않는 것이라 그런데 큰 감은 커다란 것이 매달려 있으니 마치 무슨 재물덩어리가 달려있는 듯하고 그것은 부자도 아닌 제가 그냥 버리는 듯한, 혹시 지나가며 누가 보고 저를 욕하지나 않을까요? 꼭 그리할 것 같습니다.

색다른, 아니 이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참 우스울 이야기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핸드폰을 하나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태껏 없이 살았는데 단체의 대표를 맡게 되니 어떻게 이렇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핸드폰 때문에 겪는 일, 예컨대 스펨 메일에 시달린다던지 내외간에 분란의 도구가 된다던지, 늘 손에 끼고 있다가 잊어버리고는 허둥댄다던지, 게임에 빠져 있다든지 편지 한 장의 낭만대신 가벼운 문자질을 한다든지 카톡방에서 수다 떤다던지 하는, 핸드폰이 마치 인격체인양 여기는 것이 싫어서, 그러니까 핸드폰에 구속당하는 것이 싫어서 없는 불편을 기꺼이 견디며 지내왔는데 갑자기 슬그머니 마음이 누그러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전화만 주고받는 저가 폴더폰이 있다고 하는 소리에 그전부터 귀가 솔깃하기는 했지만 그 저가라는 게 4~5천원대라니 하나 있어도 괜찮겠다고 악마가 자꾸 제 귀에 속삭이더군요. 마침 큰 딸애가 귀 얇아진 아비의 상황을 잽싸게 파악하고는 서울에서 하나 만들어서 가지고 내려와 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째 사흘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서운 것이라도 되는 냥 책상 위에서 멀찍이 놓아두고 시방 눈으로만 바라보며 낯을 익히는 중입니다. 그리고는 저만의 이런 사용원칙도 세워 보았습니다. 밖에 나갈 때만 가지고 나가되 평소처럼 공중전화를 찾아야 되는 상황일 때만 쓸 것. 이게 말이 되는 일 같습니까? 사실 이런 경우에 핸드폰이 아쉬웠으니까요. 지금은 정말 공중전화 찾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핸드폰을 쓰게 된 날 새벽잠이 깨며 이런 깨달음도 함께 생기더라고요. ‘나는 참 그동안 이기적이었구나’ 나 필요할 때는 집전화로 하고 남이 필요할 땐 받지 못해서 원성을 많이 들었으니까요. 이제는 핸드폰이 하나의 현상이 아니고 사회 그 자체라 소통의 중요한 도구라는 점을 또 놓치고 있었고요. 지금껏 핸드폰 없는 것도 하나의 자산(?)이라고 생각하며 결핍 없이 무엇을 할 수 있으랴 싶었는데 끝내는 애착하고 포획될 수밖에 없는 이것과 그것은 바꿀만한 것 일런지요. 핸드폰이 생겨도 속내가 복잡합니다. 조금 써보고 에라 잡것, 안되겠다 싶으면 나는 내식대로 살란다 던져 버릴 겁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