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을 코앞에 두고 풀을 깎으려고 예초기를 둘러메다니 참 우스운 일입니다. 늦가을 날씨가 오랫동안 지짐거리며 따뜻했던 까닭이지요. 다른 곳은 하여간에 마당과 집 주변의 풀이 너무 보기 싫어서 그걸 정리하지 않고 쳐다보려니 정신조차 어수선하더군요. 그래 한나절 마음먹고 다시 기계를 꺼내었습니다. 된서리가 딱 한번 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서리를 맞고 죽은 풀은 거의 없었지요. 자라고 있던 풀들은 대부분 겨울 월동 풀이었던 겁니다.

아무래도 여름이나 가을 같지 않고 쉽기는 하더군요. 뒷마당 몇 번 쓱쓱 문대고 다니니  풀이 다 베어져버리고 집 주변과 한길까지의 작은 길, 그리고 밭둑과 거두지 않고 버려둔 콩밭의 콩대까지, 또 화단의 어지러운 꽃 대궁들까지 말끔하게 하는데 한나절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좀 더 정리해보자며 손을 댄 여러 가지 살림살이의 잔해 물들이었습니다. 고물장수에게 주려고 일 년 내 분류해서 한쪽에 쌓아둔 재활용품들이야 차에 실어내어 길에 부려 놓으면 먼저 본 고물장수가 주인일 테니 걱정이 없는데 고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림에 쓰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것들은 참 난감했습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다 그럴 겁니다. 괜찮아 보이는 물건이 생기면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나중에는 쓸 소용이 있겠거니 하고 잘 간수해 놓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개뿔, 쓰기는 어디 쓰이던가요? 몇 년을 어디 놔 둔지도 모르고 잊고 지내기 일쑤고 아니면 한두 번 이 곳 저곳으로 옮겨 놓다가 먼지 앉고 헤져서 에이! 하고는 던져 버리지요. 그런데 던지는 횟수보다는 모아들이는 것이 더 많으니 필경 집안 이 곳 저곳이 너저분해집니다. 모아들이고 버리지 않는 그것이 마치 살림을 알뜰하게 하는 잣대라도 되는 양 했는데 나중에는 반대로 그것들에 치이고 묻혀서 숨쉬기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느 스님이 쓴 소유에 관한 책을 다시 들춰 보기도 합니다. 먹고사는 문제, 그리고 그것에서부터 생기는 여러 가지 물건들, 물론 먹고 사는 문제는 큰일이어서 이것저것 살림살이가 느는 것은 당연합니다만 그러나 어느 것이 적당한지 소유의 한계가 늘 일정치 않다는데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물건이 낡고 쓸모없어서 버려지는 것과는 반대로 우리의 생각이 낡지 않고 늘 벼려지는, 그런 정신은 반짝반짝 빛이 나겠고 오래도록 자주 쓰이는 물건은 낡아야 더 아름답겠죠. 결국 용ㆍ불용의 문제인 듯합니다.

어쨌거나 다시 또 여러 가지 살림살이들을 버릴 꺼나 말 꺼나 하며 결정하지 못하는 그 상태의 한나절이 더 힘이 들었습니다. 생각이 딱 무지러지지 않으니 치워도 치운 것 같지 않고 머릿속에는 때의 덮개가 더 두꺼워지는 듯 했습니다. 버리는 것만큼은 훈련이 필요하다 여겨지더군요. 자꾸 덜어내고 버리는 훈련을 해야 정신도 말랑거리지 그것이 일 년만 나뭇단 쌓듯 쌓아놓으면 땅에 닿은 밑 부분은 꼭 썩혀서 버리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요.

다 저녁때는 오랜만에 동네 마실을 갔습니다. 저 사는 곳이 마을과 약 일 킬로미터쯤 떨어져 있어서 볼일이 있지 않으면, 그러니까 남자들 거 왜 있지 않습니까? 술 먹으러 마실 나가는 것 말이지요, 그런데 술 먹으러 동네 마실을 가지 않은지 오래 됐으니 볼일이라는 것이 몇 달 만인지 잘 짐작이 가지 않는데 누가 더덕 좀 달라고 해서 더덕 캐 가지고 마실을 간 겁니다. 주인도 없는 집에 더덕을 내려주고 간 김에 오래된 기억을 더듬듯 따로 조금 비닐봉지에 싼 더덕을 들고 막걸리 집을 갔습니다.

참 운 좋게도 바다에서 금방 건져온 뱅어회 무침을 해놓고 마을 형님 두 분이서 술을 마시더군요. 의자에 앉을 새도 없이 손을 잡고 따라주는 술 한 잔을 선술로 마시고 나니 어서 회 한 점 집어 보라며 젓가락을 내밉니다. 생각해보니 일 년 만이더군요. 바다가 거칠어지고 날이 차가워야 얼굴을 보여주는 뱅어를 회 무침으로 해서 먹어본 것 말입니다. 후래자 삼배라고 거푸 소주 서너 잔에 뱅어회 안주로 정신이 다 어지러웠습니다.

가지고 간 더덕을 몇 개 껍질 벗겨서 술상에 놔 드리고 일어서려는데 집에 가서 식구들과 먹으라고 따로 씻어놨던 뱅어를 또 나눠주시더군요. 늘 느끼는 것이지만 아직은 우리 세상이 주는 것 보다는 받는 게 더 많은 것 아닌가 여겨집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은 어떤 나뿐 행위에 대한 과보로 많이 쓰이지만 그러나 저는 인정을 주고받는데 쓰는 것이 더 좋겠다 여겨집니다.

12월의 중간쯤에서부터는 항상 걱정과 불안, 그리고 무언가 허전하고 초초해지기도 하는데 거푸 마신 술 때문인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다 구질구질하다 생각되더군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가에서 몇 걸음 걷다가 우뚝우뚝 멈춰 서기를 여러 번, 발아래 낙엽이 뒹굴고 어두워지는 하늘에 새가 어디론지 날아가고, 저 앞에서 전조등을 켠 차의 불빛이 훑듯이 제 옆을 지나갑니다. 이런 풍경이 순간 언젠가 꿈에서 본 듯 기시감으로 다가왔습니다. 끊임없이 되풀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에서 12월,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디로 나아가기 위해 다시 복귀하는 것일까요?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