켈트족 투쟁정신 일깨워 로마군에 대항한 불멸의 여걸

  
 
  
 
‘부디카’(Boadicca·? ~ 서기 60년)는 오늘날 영국 동부의 작은 지역인 ‘노퍽’에 있었던 ‘이케니’라는 작은 나라의 왕비였다. 당시 영국은 로마인들에 의해 ‘브리타니아’로 불리었는데, 수십 개의 작은 부족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브리타니아는 섬나라였지만 당시 지중해일대 전역을 손아귀에 넣었던 로마의 막강한 힘을 피할 수는 없어 식민지 상태로 있었다.

부디카의 남편 ‘프라수타구스’ 왕은 서기 59년 왕위를 이을 아들도 없이 세상을 떠났다. 왕과 부디카 사이에는 딸만 둘 있을 뿐이었다. 부디카와 두 딸, 그리고 그들의 왕국인 이케니 백성들은 혼란에 빠졌다. 이유는 로마의 식민지 정책에 있었다. 당시 로마의 황제는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였다.


힘 센 자 마음
영국에서 남쪽으로 수 천키로 떨어진 이탈리아 반도에는 세계제국 로마의 심장부가 있다. 로마 원로원(최고 의결기구)에서는 회의가 한창이다.
“북쪽의 척박한 섬나라 브리타니아 이케니 지방의 왕 프라수타구스가 죽었소.”

“그는 벌써 17년 전 주위의 켈트족(고대 북유럽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용감한 종족) 나라들과 함께 우리 로마에 항복했던 자요.”
“우리 법에 의하면 로마에 항복한 왕은 살아있을 때까지는 그 나라의 왕으로 인정해 주되, 왕이 죽으면 그 나라는 로마의 속주로 편입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가 남긴 모든 유산도 로마의 것이 됩니다. 그자는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로마법에 따르겠노라고 맹세했소.”

“그렇다면 그대로 이케니를 로마의 종속국으로 흡수하면 되지 무슨 회의가 필요합니까?”
“그런데 그게…… 참 우스운 일이 벌어지고 있답니다.”
“이케니 왕의 미망인 부디카란 여자가 여왕에 올라 종속에 반대하고, 왕의 유산의 로마 귀속도 거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요? 우리 로마는 여왕을 인정하지 않잖소? 그 지역을 관장하는 총독에게 명해 당장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하지 않나요?”
“야만인들이란…… 게다가 여자라니! 원….”

재앙
로마의 협상가가 부디카를 만났다.
로마인들의 눈에 비친 부디카는 기골이 장대하고 뼈가 굵은 켈트족답게 어깨가 넓고 키가 크며, 붉은 빛을 띠는 긴 머리카락은 탄탄한 엉덩이까지 내려와 있었다. 부디카는 로마의 요구사항들을 끝내 거부했다.
“우리는 조상대대로 나름대로의 고유한 생활을 해왔고, 여기는 우리 땅입니다. 왕이 남긴 모든 유산은 우리 것입니다. 로마에 무슨 권한이 있습니까?”

로마 군의 책임자가 말했다. “당신들의 왕 프라수타구스 즉, 당신의 남편이 생전에 이미 로마에 항복했고, 그가 죽음과 동시에 이 땅은 로마의 것이 되기로 결정돼 있었소. 로마 속주의 백성들은 모두 잘 살고 있다오. 자존심 때문이라면 어리석은 짓이오.”
“그는 내 남편이고 이 땅의 왕이었지만 그의 판단이 다 옳지는 않아요. 여기 살아남은 백성들과 저는 그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끝까지 거절한다면 할 수 없지. 후회하게 될 겁니다.”
며칠 후, 로마군은 이케니에 전광석화처럼 밀고 들어와 부디카와 호위부대를 제압했다.

로마병사들은 부디카를 기둥에 묶어 놓고 채찍질을 하고 두 딸을 겁탈하는 어이없는 짓을 저지르고 만다. 그들의 눈에 야만인 켈트족 따위는 인간이 아닌 어떤 저열한 존재에 불과했던 것이다. 눈앞에서 딸들이 능욕을 당하고 여왕의 몸으로 옷이 다 찢어발겨질 정도로 매질을 당하는 모욕과 수치 속에서 부디카는 피눈물을 흘리며 이를 악물었다.
‘저 놈들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처절한 피의 복수를 해 줄 것이다.’

우리는 살아있다
로마인들은 이케니의 재산을 몰수하고 군사를 물렸다.
복수를 다짐하는 부디카는 브리타니아의 켈트족 부족들을 찾아다니며 조심스럽게 그들을 설득했다. 부디카가 다녀간 부족의 지도자들은 이런 말을 주고받았다.

“부디카는 생전의 프라수타구스 왕 보다 훨씬 총명하고 용감하다.”
“그래 남편보다 위엄이 있고 자존심이 강한 것 같아. 로마인들이 우리 켈트족을 그렇게까지 능멸한다면 참을 수 없는 일이지.”
“군사를 모아 부디카와 함께 로마에 복수하자.”

켈트족은 문화 수준에서는 로마에 한참 못 미쳤지만 그 용맹성만큼은 명성이 자자했다.
부디카는 “우리는 노예도 아니고, 저들의 소유물도 아니다. 로마인들의 오만과 무례를 용납한다면 저들은 계속 우리를 조롱하고, 침 뱉고, 우리 재산을 약탈하고, 우리의 딸들을 욕보일 것이다. 켈트의 용사들이여! 여자인 나도 일어서려 한다. 나와 함께 저들을 응징하지 않으려는가.”라며 켈트인들의 가슴 속에 불을 지폈다.

마침내 서기 60년 잠자고 있던 켈트정신이 폭발했다. 브리타니아 북쪽의 북웨일즈 공략에 정신이 없었던 로마군과 로마에 항복한 브리타니아 내의 로마 동맹 도시들에게 대재앙이 닥친 것이다.
켈트족들은 기습작전으로 로마군 주둔지를 덮쳐 1개 군단의 병사들을 몰살시켰다.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더미가 타는 연기는 하늘을 뒤덮을 정도였다.

부디카를 매질했던 로마총독은 아연실색, 런던을 방어하려고 하지만 이미 부디카 부대는 런던을 점령했다. 켈트족 군대는 런던 전체를 불태워버렸다.
“다음 도시로 진격하자. 로마에 협력해 핏줄을 배신하고 당장의 안락만 구한 이들을 살려두지 말자.”

부디카군의 무자비한 복수에 8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비명소리와 울부짖음이 하늘에 사무쳤다.
부디카는 완벽한 복수를 했고, 켈트족의 자존심을 만방에 떨쳤다.

스러진 불꽃
“이럴 수는 없어. 지중해를 우리의 내해(內海)로 여기는 위대한 로마의 군대가…….”
북유럽과 브리타니아를 다스리던 로마의 총독 수에토니우스는 이를 박박 갈았다.

그는 영국(브리타니아) 중부지역의 모든 로마 병사를 모아들였다. 숫자는 1만 여명 밖에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은 당시로서는 최고의 전투장비에 고도로 조직화 된 작전개념을 숙지한 전투기계들이었다.

로마군의 조직력… 이것이야 말로 그들을 세계제국으로 이끈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서기 61년 브리타니아의 운명을 건 한판 승부가 ‘워틀링’ 벌판에서 벌어지게 된다.
“진격, 진격한다.”

“침략자들을 응징하자. 남김없이 죽여 다시는 고향땅에 돌아가지 못하게 하자.”
창칼이 부딪히는 불꽃이 난무하고, 하늘을 덮을 듯 무수한 화살들이 오고갔다.
로마인들이 자랑하는 기마부대는 종횡무진하며 눈부신 무용(武勇)을 뽐냈다. 기습이나 난타전으로 붙는 정면승부에서 로마군은 켈트족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켈트병사들은 로마인들의 치밀한 전략과 절묘한 진용의 운영, 그리고 압도적인 군사장비에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여러 부족의 연합체로 한 번도 대규모의 독립된 작전을 수행해 본 적이 없는 켈트족 부대는 우왕좌왕하며 괴멸되기 시작한다.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로마군은 켈트족들을 도륙했다. 기록에 의하면 일전에 부디카가 복수할 때 죽인 사람의 수만큼의 켈트족이 그 전투에서 로마군에게 목숨을 잃었다한다.
부디카는 생각했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게 됐구나. 저들에게 잡혀 치욕을 당하느니…….’
그녀가 택한 것은 죽음이었다. 부디카는 독약을 삼켰다.

부디카의 투쟁은 그렇게, 강렬했으나 짧은 화산폭발처럼 끝나고 말았다.
‘부디카 사건’은 그러나 로마의 통치자들에게 식민지의 백성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부디카는 자기 민족이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증명했다.

부디카를 모욕한 수에토니우스는 반란(?)을 진압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로 소환됐다.
부디카의 영웅적인 투쟁은 1700여 년이 지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다시 재조명 되며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스페인과 프랑스 북부, 영국 섬에 사는 수천만의 켈트족 후손들은 부디카를 그들의 위대한 조상, 불멸의 여걸로 기억하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