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로마제국과 한판 승부를 벌인 고대 시리아 여왕

  
 
  
 
중동지역에서 이스라엘의 북쪽에 위치한 아랍의 강국 시리아는 약 1700년 전인 서기 270년경, 세계제국 로마의 동방속주로 통치 받고 있었다.
당시의 시리아 지역은 지금처럼 하나의 단일화 된 국가가 아니라 사막 속 오아시스를 기반으로 한 부족단위의 작은 나라로 쪼개져 있었는데, 그중에는 사막의 핵심 요충지에 위치, 중계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하면서 수세기에 걸쳐 엄청난 부를 축적해 백성들의 생활이 풍족하고 고도의 문화를 이룩한 ‘팔미라’라는 나라가 있었다.


태양처럼 나타난 여인
이 나라에는 어릴 적부터 절세미인으로 소문난 처녀가 있었다. ‘제노비아’라는 이 여성은 아라비아 반도와 페르시아 일대를 떠돌던 집시 족 아버지와 이집트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다. 낙타를 몰고 다니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집시 족의 생활 속에서 제노비아는 여자의 몸으로 낙타 몰이의 일인자가 되어 있었다. 엄청난 악력과 강한 허리로 낙타의 움직임에 리듬을 맞추며 능숙하게 통제하는 그녀의 모습은 사막 낙타 몰이의 교본처럼 칭송이 자자했다.

당시 팔미라에는 ‘오데나투스’라는 (? ~ 267년) 야심찬 아랍 귀족이 있었다.
그는 로마의 명을 받고 팔미라를 다스리던 ‘속주의 왕’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다른 생각이 들어있었다.
‘내가 겉으로는 너희(로마)들의 명대로 나라를 다스리지만 우리가 왜 너희들에게 세금을 내야 하고 너희들의 창칼 아래 보호를 받아야 하는가! 우리와 당신들은 섬기는 신도 틀리고 조상도 틀리고 생활도 틀리다. 나는 반드시 너희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겠다.’

그는 로마군의 눈에 띄지 않는 사막 깊숙한 곳에서 은밀하게 병사들을 훈련시켰다. 로마군을 무찌르기 위한 일종의 독립군 양성소였던 것이다.
‘사막 전투에서는 낙타를 잘 다루어야 해. 로마인들은 낙타 다루는 데는 어린아이들보다도 못하지. 그들의 약점을 물고 늘어져야 한다.’

어느 날 부하 한명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
“사막을 떠도는 집시 부족에 신기의 낙타몰이 솜씨를 가진 자가 있답니다.”
“그런 자가 있다면 빨리 데리고 와야지. 집시 족들이라면 사나운 야생 낙타를 순치하는 비법도 가지고 있다던데.”
“그런데 그자가 여자랍니다. 집시 족 족장이었던 아버지를 대신해 부족의 지도자 노릇까지 하고 있답니다. 데려 올까요?”

“물론이다. 여자라니 더 궁금하구나.”
제노비아는 그렇게 팔미라의 왕 오데나투스를 만나게 된다.
오데나투스 앞에 나타난 제노비아는 베일을 벗었다.

오데나투스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경악했다. 억세고 투박한 집시 여인만 생각했던 제노비아의 모습은 사막의 어둠을 뚫고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눈부셨다.
‘아! 여신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얼마 후 제노비아는 오데나투스의 아내가 된다.

아라비아의 클레오파트라
제노비아의 능력은 미모에 버금가게 뛰어났다. 낙타 기병대의 진용은 적의 허를 찌르고 작전이 신출귀몰 해 오데나투스 휘하의 노련한 장수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낙타의 작은 습성까지 간파하게 된 그녀의 낙타기병대는 마치 사람과 낙타가 하나가 된 것 같은 일체감을 보여주면서 자연히 최강의 낙타부대로 탈바꿈했다.

그녀는 독자적으로 부대를 지휘하면서 인근의 강국 페르시아(지금의 이란)군을 대파하기도 한다. 이 소문이 알려지자 군소단위의 작은 부족국가들이 팔미라와 동맹을 맺으려고 줄줄이 달려왔다. 눈덩이가 커지듯 팔미라의 위세가 커지고 있었다.

팔미라는 돈과 힘을 소리 소문 없이 빨아들였다. 그러나 로마는 눈치 채지 못한다. 제노비아에 대한 소문은 멀리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까지 퍼져있었지만 내용은 그녀의 미모에만 한정된 것이었다.
“동방 시리아의 팔미라 왕비 제노비아에 대한 이야기 들어봤소?”

“200여 년 전 카이사르(씨이저)를 사랑의 포로로 만들었던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를 능가하는 미녀라는군.”
“로마가 배출한 최고의 엘리트를 정신 못 차리게 했던 클레오파트라의 매력과 한갓 동방의 작은 오아시스 국가의 왕비를 비교하다니, 좀 너무한 거 아니요?”
“글쎄요 거기서 임기를 마치고 돌아 온 장교들의 말로는 직접 보니 사막에서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다고 하더이다.”

그때만 해도 그들은 다만 흥밋거리로 이야기하던 그 제노비아가 몇 년 후 자신들의 등 뒤에서 비수를 찌르는 무서운 여인으로 나타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정복여왕 제노비아
제노비아가 왕비로 들어앉은 이후부터 팔미라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세상의 화려하고 찬란한 것은 다 모아놓은 것처럼 이 나라의 풍족함은 절정에 달했다. 로마는 로마대로 좋았다. 이 부자나라에서 거들 수 있는 세금은 로마에게도 엄청난 재원이 됐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팔미라에 조금 너그러웠고, 최소한의 감시와 통제 속에 될 수 있는 대로 자유스럽게 내버려 두었다.

그런 느슨함 속에서 오데나투스와 제노비아는 그들의 군대를 정예강군(精銳强軍)으로 만들어 냈던 것이다.
서기 267년 오데나투스가 죽었다. 자연사는 아니었고 제노비아의 소행으로 보이는 암살의 흔적이 보였지만 궁중 사람들은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제노비아의 야욕이 들어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제노비아의 가치는 미모보다 오히려 그 용의주도함과 용기, 지혜, 카리스마에 있다는 것을 잘 아는 팔미라 왕국의 엘리트들은 오히려 그녀를 절대군주로 떠받들었다.
“여왕으로 우리를 다스려 주소서. 당신은 팔미라의 태양이요. 신의 딸로 이 나라의 주인으로 손색이 없는 분이십니다.”

제노비아는 팔미라의 여왕으로 등극한다. 그녀의 야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제노비아는 언제라도 출동 준비가 돼있던 군사 7만 명을 이끌고 벼락같이 이집트로 진격했다. 로마의 노른자위 속주 이집트는 ‘앗’소리도 지르지 못한 채 제노비아에 점령당했다.

팔레스타인, 시나이반도, 페르시아 일대, 시리아 전역, 터키와 이라크 지역이 3년도 안 돼 제노비아의 손에 들어갔다. 가는 곳마다 제노비아에 투항했다. 아무래도 라틴족인 로마보다는 인종적 유대감이 강한 팔미라의 제노비아에 복속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 도 있고 당시 철학자로 유명했던 로마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느슨한 지배지 통치도 로마의 영토상실에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시 로마 제국 영토의 절반에 가까운 엄청난 면적이었다. 로마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로마의 반격
서기 272년 제노비아는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 로마 황제와 동급인 황제 칭호를 붙였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팔미라의 버릇을 고쳐줘야겠다.” (로마 황제 아우렐리우스)
그러나 로마는 적은 수의 군대를 보냈다가 제노비아 군에게 전멸 당한다.
로마는 팔미라의 실력을 깨달았다. 제노비아의 팔미라는 이제 엄청난 강국으로 성장해 있었던 것이다. 로마는 황제 아우렐리우스가 직접 대군을 이끌고 동방으로 진격했다.

로마와 로마동맹국의 정예병을 총 출동한 대군이 팔미라 성을 포위했다. 고립된 성안에서는 팔미라의 장기인 낙타기병대가 소용없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야했다. 제노비아는 구원병을 요청하기 위해 그물 같은 포위망을 뚫고 성을 빠져나가 페르시아로 향했다.

그러나 밀고자의 신고로 유프라테스 강변에서 로마군에 체포된다.
‘두목’을 잡은 로마황제는 팔미라에서 군대를 물렸다.
“제노비아가 우리 손에 들어 왔으니 됐다. 저 여자를 로마에 끌고 가서 망신을 주고 저 여자의 미모를 궁금해 하는 시민들에게 구경거리로 삼아야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성을 감시할 수비 병력만 남은 로마군을 향해 팔미라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로마수비병을 몰살시켰다. 로마로 가던 길에 이 소식을 들은 아우렐리우스는 불같이 화가 났다.
다시 로마군을 팔미라로 돌린 아우렐리우스가 말한다. “그 곳에 사는 것은 사람이건 짐승이건 코로 숨 쉬는 것들은 모두 죽여 없애고, 건물이고 신전이고 모조리 불살라라. 은혜를 모르는 놈들에게 자비는 필요 없다.”

엇갈리는 이야기
그날 팔미라는 생지옥으로 변했다. 화려한 문화와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던 팔미라의 부(富)는 한 줌의 재로 사라진 것이다.
제노비아는 로마로 압송돼 개선하는 로마 장군의 마차 뒤쪽에 묶인 채 끌려 다니며, 환호하는 군중들의 구경거리가 됐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치욕과 슬픔을 견디지 못한 제노비아가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다는 이야기와 여전히 눈부신 미모를 이용, 로마 고관을 사로잡아 로마 귀부인으로 평생을 호위호식하면서 잘 살았다는 이야기다.

어느 것이 맞는 말인지는 역사서에 기록돼 있지 않다.
제노비아는 과감성, 조직 장악력, 작전능력을 고루 갖추고 로마 점령지의 반을 빼앗았을 정도로 군사적 재능이 탁월한 보기 드문 여걸이었다. 그러나 남편까지 독살하고 절대군주에 올랐을 만큼 지독한 야욕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따라서 제노비아의 영광과 성취는 순수한 애국애족심의 발로라기보다는 절대여왕으로 군림하고픈 자기영달에의 지독한 집착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편이 옳을 듯하다.
팔미라는 제노비아로 인해 가장 큰 영광을 누렸고 또 그녀로 인해 멸망의 구렁텅이로 빠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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