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규 호
국립축산과학원 양돈과 농업연구관


가족 나들이나 회식 자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메뉴가 있다. 바로 돼지고기. 실제 우리나라 양돈산업 생산액은 6조 6천억 원으로 전체 농림업 생산액의 12%를 차지한다.
요즘 구제역(FMD)으로 많은 농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돼지고기는 품목별 농림업 생산액 중 부동의 2위 자리를 고수하며 여전히 국민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돼지고기 중에서도 맛이 유별나게 좋아 많은 애호가들이 찾고 있는 것이 흑돼지다. 흑돼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생산하는데, 단순히 외국 품종을 도입해 활용하거나 외국품종과 교잡하여 생산하는 방식도 있지만, 우리나라 고유 유전자원인 한국재래돼지를 활용해 생산할 수도 있다.

본디 우리나라의 재래돼지는 2,000년 전 만주지역에서 들어와 우리 환경에 적응하면서 조선시대까지 고유한 형태를 띠며 사육돼 왔다. 일제 강점기 재래돼지의 느린 성장속도를 개선한다는 미명 아래 외래 품종과 무분별한 교잡이 이뤄지며 소실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행히 유전자원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국립축산과학원이 1990년도부터 복원사업을 시작해 2007년 재래돼지의 복원을 완료했고, 육질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재래돼지에서 두록이나 랜드레이스, 요크셔 등 외래돼지 품종들과는 기능적 차이를 나타낼 수 있는 26개 변이를 발견하기도 했다.

한국재래돼지에 지방세포 분화와 에너지 대사에 관여하는 유전자가 특이적으로 고정돼 있었는데 이는 근내지방이 높고, 다즙성과 연도 면에서 뛰어난 재래돼지의 우수성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해주는 결과라 할 수 있다. 유전자원은 보존 그 자체로의 의미도 크지만 현실에 맞게 실용화하는 것 또한 풀어야 할 숙제다.

국립축산과학원은 한국재래돼지의 낮은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복원한 재래돼지 순종은 유지, 보존하면서 타 품종과의 교잡을 통해 새로운 품종을 육성하는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물로 ‘우리흑돈’과 ‘난축맛돈’같은 흑돼지 신품종을 개발했다. 이 두 품종은 낮은 재래돼지의 성장률을 개선한 것과 더불어 고기 맛이 외래종에 비하여 월등히 좋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행히 정부차원에서도 토종가축 유전자원의 보호·육성, 사육 농가의 소득향상, 소비자의 알 권리 확보 및 투명한 구매지표 제공을 위해 2014년부터 한우, 돼지, 닭, 오리, 말, 꿀벌 등 6개 축종을 대상으로 토종가축 인정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렇게 토종가축으로 인정을 받은 축산물은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라 토종가축으로 표시해 판매가 가능하다.

재래가축의 보존과 실용화가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서는 토종 축산물에 대한 홍보강화를 통해 소비자의 인지도를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일본의 JAS(토종닭 인정 규격)처럼 토종가축 인정대상을 현행 개별농가에서 생산단체, 유통업체, 음식점 등까지 확대하여 토종 축산물의 원활한 생산과 수요창출이 필요하다. 또한 토종 축산물의 인증마크제 도입, 토종 축산물 취급 음식점 표시제, 현재 외래품종에 맞춘 도축방법 등에 대한 개선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자유무역협정으로 너무나 쉽게 보고 구매할 수 있는 외국산 농산물, 축산물이 즐비한 이 시기에 한때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는 광고영상이 다시 생각난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땅에서 우리와 삶을 공유하며 자라온 식물, 동물들이 우리 몸에 맡는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철학은 단지 애국심에 호소하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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