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절기여서 그런지 잠깐 얼어붙었던 날씨가 다시 풀렸습니다. 햇빛까지 반짝 났으면 좋겠는데 날은 많이 흐리고 옅은 황사가 끼어서 조금은 춥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방안에 있기가 점점 불안해 집니다. 땅에 얼음이 풀리기만 하면 지금 당장 마늘 양파 밭에 풀을 매야 하기 때문입니다. 겨울날이 따뜻했던 탓에 마늘 양파 밭의 비닐구멍마다 한구석 빼꼼한데도 없이 풀이 수북이 올라왔습니다. 웃거름을 줘야 될 때인데 저렇게 풀을 놔두고는 안 되겠지요 그래 마음이 불안해집니다.

더덕도 지난 설에 몇 집 선물하려고 캐 보았더니 그때 벌써 새움이 조금씩 올라오더군요. 한자리에 삼년이 넘으니 썩은 게 많이 생겨서 올해는 파서 다른 곳으로 옮길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그것도 언 땅만 녹으면 바로 시작해야 합니다. 새순이 땅 밖으로 올라와 버리면 늦는 거지요. 삼월 초엔 감자도 몇 두둑 묻어야 합니다. 늘 새삼스럽게 느끼는 것이지만 농사란 것이 때를 알고 거기에 맞추지 않으면 애써 고생해봐야 소용없다 생각되더라고요. 그런데 요즈음 때를 모르는 게 있어요.

바로 화단에 피는 꽃들 이야긴데 작년과는 하는 짓이 참 많이 달라서 걱정입니다. 초겨울에 진달래 만발하더니 그 뒤를 히어리가 피었습니다. 봄에 싹을 내야할 튤립은 아예 겨울부터 새파랗게 올라왔고 수선의 알뿌리도 이미 다 싹이 올라왔습니다. 매화도 이곳에서는 삼월중순은 되어야 피는데 겨울에 이미 필 준비로 봉오리가 부풀었습니다. 그것이 지난번 지독한 추위에 얼었던 모양이라 여기저기 띄엄띄엄 하나씩 피는 것이 꽃잎이 영 시원찮습니다.

이것이 꽃 탓이겠습니까. 다 날씨 탓이지요. 식물은 참 민감해서 온도가 0.5도 1도만 다른 날이 계속돼도 사람으로 치면 자율신경계 같은 것이 작동해서 잘못된 정보를 읽은 것 같습니다. 바로 며칠 전에 그렇게 일찍 핀 꽃을 찾아 나섰는지 사진 찍는 몇 분이서 저희 집 뒷산을 오르더군요. 아직 이르다 이르다 하면서도 저희 집에 핀 매화를 보면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들인 듯 서둘러 길을 재촉했습니다. 저도 오늘 혹시나 해서 집 뒤의 계곡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사진 찍자고 멀리서 온 게 아니니 피어도 그만 안 피어도 그만이어서 굳이 꽃을 찾으러 애쓰는 눈길이 아닌지라 자연 발길이 놀 량으로 산길을 따라갑니다.

잠깐 불던 바람도 그쳐서 숲은 따뜻하고 바로 가까이서는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가 들렀습니다. 냇가 웅덩이에 낳아놓은 도롱뇽 알 하나를 건져서 입에 넣으려다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 나왔습니다. 어릴 때는, 그러니까 십리쯤 떨어진 초등학교를 산길을 타 넘어 다닐 때는 배가 고파서도 물웅덩이의 그것을 많이 건져 먹었는데 나중에 들으니 그것이 무슨 정력제라나요. 신경통약이라나요. 시장에서 파는 것도 보았더랬습니다. 그래 도롱뇽 알을 무의식중에 입에 넣으려던 저의 행동이 어디에 뿌리를 대고 있는가 생각하고 웃었지요.

도롱뇽 알은 아무 맛없습니다. 순대 굵기의 다섯 배쯤은 가는, 애들 손가락 길이만한 그것은 꼭 순대 같아서 투명한 비닐 막 같은 것으로 속의 알을 싸고 있는데 그걸 통째로 입에 넣고 힘들여서 꿀꺽 삼켜야 넘어갑니다. 그렇지 않으면 겉의 막을 터뜨려서 반절 끊어야 되는데 그러면 젤 같은 속엣 것이 쏟아져 나와서 먹기가 조금 거시기 하죠. 목을 타고 넘어갈 때 시원한 느낌 말고는 정말 아무 맛도 없고 아무 약효도 없으니 행여 도롱뇽 알을 드시진 마십시오. 도롱뇽이란 놈이 웅덩이 속의 풀이나 나뭇가지에 떠내려가지 말라고 제 알을 붙여놓고는 그 근처의 돌 아래나 나뭇잎 밑에 숨어서 지키는 게 고맙고 안타까우니까요.

그러는 사이에도 딱따구리 쪼는 소리가 계속 나서 올려다보니 불땀 좋은 나무 한그루가 말라 죽은 채 서있고 바로 그 나무의 꼭대기에서 아름다운 깃을 가진 딱따구리가 열심이었습니다. 밑동 굵기의 지름이 삼십 센티는 실히 돼 보이는 자귀나무였습니다. 이 나무는 지겟다리 나무라고도해서 지게를 짜는데 쓰기도 하는데 단단하고 질기기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선채로 말라죽어도 썩지 않고 몇 년씩 나무의 근육이 그대로인 나무입니다.

꽃을 찾으려던 생각도 잊어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지게에 톱 하나 챙겨서 그 나무를 베러 갑니다. 너무 단단해서 새에게도 별 도움이 안 될 테니 안심하고 베어 넘깁니다. 한 발길이로 지게에 짊기 좋게 자르니 여섯 토막이 나옵니다. 우듬지까지 다 조겨서 지게에 짊다가 또 웃음이 나옵니다. 지게에 지겟다리 나무라- 한 사나흘은 땔 감입니다. 예전부터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저는 제 사는 곳에서 좀더 산 깊은 곳으로 들어가던지 아예 섬으로 가서 살고 싶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집 밖의 세상일은 소연하기만 해서 갈수록 도무지 정이 생기지 않습니다.

어제만 해도 무슨무슨 회의다 해서 거의 하루를 진을 빼고 났더니 사람이 폭삭 늙는다는 느낌마저 들더라고요. 그러나 오늘 이것은 얼마나 좋은지요. 땅에 주저앉아서 선녀와 나무꾼의 그처럼 시르렁실겅 톱질하는 이 행위가 더없이 행복하기도 합니다. 마늘밭 양파 밭 맬 걱정이 무어 대순가? 호연해져서 저에게 큰소리 그만 꽝하고 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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