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처음으로 호미 들고 밭에 앉았습니다. 마늘밭 매려고요. 풀을 보니 마음이 산란하던지 서리가 아직 녹지 않아 땅거죽이 단단할 터인데도 안식구는 이른 아침부터 먼저 밭에 나가는군요. 지금이 꼭 웃거름을 줘야 될 때인데 마늘 싹이 올라온 구멍마다 마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풀이 자라서 저 위에 그냥 거름을 줄 수는 없겠지요. 해마다 늘 이맘때부터 풀을 매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풀이 자란 정도가 더 심합니다. 겨울날이 따뜻했던 까닭입니다. 하긴 저 놈의 풀이 지난 가을부터 수북수북 올라와서 그때도 한차례 뽑아주기는 했습니다만 지금은 매준 곳이나 매주지 않은 곳이나 구분이 되지 않는군요. 저는 친구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가 와서 나가는 김에 부치려고 택배 세 개를 쌌고요. 택배도 세 개를 싸려니 한 시간 가까이 걸립니다. 알맞은 박스나 자루에 물건을 담아서 안전하게 포장하기란 그리 쉬운 게 아니어서 물기가 있거나 냄새가 나거나 깨지기 쉬운 것들, 특히 상하기 쉬운 것들은 각별히 더 신경을 써야합니다.

어쨌거나, 짐을 싸들고 장례식장이 있는 읍으로 나갔습니다. 중간에 제 차로 함께 가자던 조문객 한 사람을 더 태우고요. 일 바쁠 때 부고를 받았다면 이렇게 낮에 가기 보다는 밤에 갔겠지요. 요즈음도 물론 발인 전날의 밤에 문상객들이 가장 많이 밀려드는 것이지만 소란스럽기만 해서 상주와 변변히 인사도 나누기 어려운지라 낮에 가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여 상주하고 마주앉아 술잔 나누며 무슨 깊은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고인의 연세 정도, 돌아가시기 전의 근황 정도, 장례의 방법이나 절차 정도, 손들은 어디에 누가 살고 있는가 따위의 의례적인 이야기이기 쉽지요. 저는 애경사에 많이 찾아다니지는 않지만 경사와는 달리 애사에는 가능하면 부조를 하려합니다. 또 요즈음은 화장이 대세지만 지금도 시골은 매장이 많은지라 돈으로 하는 부조와 함께 산일을 하는데 빠지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남의 초상마당에서 혼자 늘 언짢아 지는 게 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장례식장 입구에 늘여 세운 조화 있지 않습니까, 이 집의 초상에도 역시나 문상객들의 사열을 기다리는 듯 두 줄로 늘어선 조화들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데는 제가 괜히 주눅이 들고 몸이 움츠려 들더군요. 조화를 보낸 사람들이 누구누구인지는 그걸 둘러보는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요 마는 무슨 기업 대표니 무슨 회장이니 무슨 동창회, 또는 계에서, 혹은 개개인의 이름표를 달고 늘어선 그 숫자의 많고 적음에서 상주의 능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이 느껴지는 것은 참 불편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미풍양속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요. 또 샘 속 밝으신 분들은 화훼농가의 소득이 어쩌니 꽃집에서 조화를 다시 어쩐다더라하는 이야기도 많이들 하시는데 조화 없는 장례를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장례식장에서까지 그것이 어떤 과시가 되어서야 이것을 양속이라 할 수 있을는지요. 요즈음은 우편봉투를 이용하는 부고 대신 핸드폰을 써서 메시지를 보내는 게 대세인데 방법이야 어떻든 간에 상주가 조화를 정중히 거절하고 꼭 필요한 위치에 문중이나 마을을 대표하는 것 정도만 놓는 것도 양속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도 큰 일 한 번이 남아있는 사람입니다. 홀로 사시는 처모님의 연세가 팔십이 가까운데 더군다나 건강이 좋지 않아서 걱정입니다. 물론 처남도 둘이나 있고 읍에서는 첫째 둘째가는 교회의 권사를 지내신 분이고 처가가 벌족하다 할 수는 없으나 외가 친가의 어른들이 있어 상을 당하면 초초하다고야 볼 수 없겠죠. 그러나 하나뿐인 사위인 제가 스스로 발이 넓지 않고 그런 것에 가치를 두지 않으니 사위의 관련으로는 어디서 조화 하나 들어올 데가 없을 겁니다. 그럴 때 처가의 시선이라는 것이 저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 언짢은 것은 앞서 아까 시골은 아직도 매장이 많다고 했는데 그 매장할 때의 모습입니다. 상복 입은 고인의 손들은 이십 명 삼십 명씩 묘 주변에 젊게 늘어서 있어도 동네의 몇 되지 않은 노인들만 괭이 들고 묘일을 하거나 그게 미안할 경우 아예 일꾼들을 소개소에서 데려와 버립니다. 그러면 작은 힘이나마 보태서 상주들의 조력으로 일을 마치려했던 동네 분들은 뒷전으로 물러앉아서 있는 겁니다. 마을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통과의례에서마저 이렇듯 종종 마을 분들은 소외된답니다.

예부터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했지만 그것이 고인을 보내는 마을공동체의 오랜 예의였다면 이런 장례를 통해서나마 양속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내야겠지요. 세상일이 나의 생각과는 너무나 다를 때, 그리고 그것이 계속 되풀이 된다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그 사람은 자기의 존재 의의를 점차 잃어버리고 우울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흘러가는 데로 생각 없이 따라간다면 그가 행복한 사람이 될까요? 세상이란 건 꼭 이렇게 이분법적으로만 나눠지는 게 아니어서 이것과 저것 사이에는 수도 없이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만 요즈음 세상은 대체적으로 사람이 중심에서 자꾸 벗어나는 듯합니다.
이래저래 즐거울 리 없는 조문을 서둘러 마치고 집에 와서 아내와 같이 밭에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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