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찬바람 핑계로 방문을 열어 놓지 않는데 노인네들만 사는 집에 어쩌다 가보면 첩첩 닫힌 새시 문 열고 얼굴 들이밀었을 때 훅 끼쳐오는 음식 냄새와 온갖 냄새들, 한번쯤 싫었던 기억들이 있지 않던가요? 그래서 저희 집은 하루 세 번, 끼니 후에는 꼭 이삼십 분씩 문을 열어 냄새를 몰아냅니다. 그래도 청국장 냄새나 젓갈 냄새는 여간해서 잘 빠져 나가지 않아요. 그중에서도 한번은 생각 없이 방안에서 고기를 구웠다가 배인 기름 냄새가 빠지지 않아 한 사나흘 곤욕을 치루기도 했습니다.
아궁이 앞에서 먹는 밥은 더 맛이 있습니다. 가스레인지에서 조리한 음식을 그대로 들어다 입천장대일정도로 후후 불어가며 먹는 맛도 맛이지만 그냥 부엌 흙바닥에 두트레방석 깔고 퍼질러 앉아 밥그릇 손에 들고 먹는 그 격식 없음도 맛의 순수함에 훨씬 더 가까이 가게 하더군요. 그러니까 상 같은 것도 없고 명절 때 들어온 빈 사과박스 하나 엎어놓고 그 위에 몇 가지 반찬을 올리는 거지요. 저는 불을 때면서 안식구의 하는 음식을 냄새도 맡아보고 가까이 다가서서 눈으로도 보다가 입맛을 다시며 버릇처럼 술 한 잔을 마십니다.
곱게 눈을 흘기는 안식구에게는 ‘이렇게 맛난 음식을 두고 술 생각이 안 나는 놈은 바보 병신이여’ 어쩌구 저쩌구 하며 너스레를 떨지요. 직간접적으로다가 음식 솜씨를 칭찬 하는 데야 술 한두 잔에 잔소리 늘어놓을 위인은 아닙죠, 제 아내가. 그런데 요즈음 재미 진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게 뭔고 하니 정지서 밥 먹을 때 쓸 상이 하나 생겼다는 겁니다.
그 상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아마도 처음엔 칠도 벗겨지지 않고 번듯하니까 나무로 만든 것인 줄 알고 놔뒀던 듯합니다. 그러던 것이 시간이 지나니까 안 보이던 새에 칠이 다 벗겨져서 플라스틱으로 정체가 드러났는데 그나마도 버리기 아까워서 마루 한 편에 자그마한 월동용 온실을 만들고 그 속에 들여 놓은 화분들의 밑받침으로 썼답니다. 그러던 것이 봄이 되어 화분들을 들어내면서 이제는 버릴 량으로 마당구석에 동댕이쳐 놨어요. 그러고도 한삼일, 부엌에서 밥을 먹기로 했는데 제가 잠깐 소피를 보고 온 사이 안식구가 그것을 집어다가 아궁이 앞에 놓고 신문지 한 장 덧깔고 상을 차린 겁니다.
그걸 보자마자 제가 무릎을 치면서 “버리지 않기 참 잘 했네. 이렇게 쓰일 줄 어찌 알았나”고 좋아 했습니다. 사과 박스보다 조금 더 크고 맨땅에 놓기 딱 좋은 거무튀튀한 플라스틱 상. 이 상에는 아무리 맛없는 반찬이 놓여도 상보다는 나을게니 못생긴 상이 밥맛을 더 나게 하지 않겠습니까? 애먼 생뚱하게 김춘수의 ‘꽃’이란 시가 생각났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밥상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저희 부엌살림살이 흉을 볼작시면 스테인리스 수저와 저분 밥공기(공기란 말이 저는 참 맘에 들지 않더이다.) 이 세 가지를 빼고는 짝이 맞는 게 글쎄 단 하가지도 없습니다. 우선 눈에 들어오는 데로 주어 섬겨보면 대여섯 개 선반에 놓인 커피 잔도 같은 게 하나가 없고 양념통도 다 제각각, 냄비 따위도 다 오롱이조롱이고요. 크고 작은 그릇하며 접시며 대접이며 바가지며 하나같이 아롱이다롱이지 그 뭣이 다냐. 세트라는 게 부재 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내 기억에 십육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 생전에 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다니는 황아장수한테 샀던 저 스트레인리스 수저 그릇 빼고는 저희들은 그릇이란 건 사본일도 없고 오로지 누가 준 것 얻은 것으로만 살았던 거지요. 안식구도 저와 같아서 격식에 구애 받지 않는지 그릇 한 가지 사자는 소리 없었고 저 또한 사라는 소리 하지 않았죠. 제가 아마 장남이 아닌 까닭에 제사며 큰일 치를 일이 없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이제는 슬슬 조금씩 걱정도 됩니다. 점잖은 손님, 즉 사돈 맞을 일이라도 생기면 이 중구난방 적이며 총 천연색적 사태를 어떻게 하지요? 방의 종이장판에서 올라오는 흙먼지 하며 덮일 이불이며 아휴 -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 결혼하겠다고 아직 나서지 않는 제 딸들이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효녀들이지 않을까요? 이 몹쓸 애비!
이런 저런 생각다가 버릇처럼 뒷마당에 나가 개미집에 숨을 하번 불어 넣어주고(그러면 개미들이 쏟아져 나와 활동을 하거든요)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얼레지 이파리 나오는 것이 나 살펴봅니다.
박형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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