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 뒷마당에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개미 한 무리가 삽니다. 물론 한 무리뿐만이 아니겠지요. 이름은 잘 몰라도 큰놈 작은놈 붉은놈 까만놈 눈에 잘 띄지 않아서 그렇지 아마도 수십 무리의 몇 천 몇 만인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의 눈에 몇 년 전부터 띠인 후 지금껏 한곳에서 세력을 불려 나가는 놈은 한 무리인 듯합니다. 저희 집 뒷마당엔 잔디가 심어져 있고 마당과 뒤뜰 사이에는 약 오십 센티미터쯤의 나지막한 돌담이 둘러 있습니다. 돌담 바로 밑에는 좁다란 화단이 담을 따라 만들어져 있고요.

담 밖의 뒤뜰 저 멀리 대숲을 끼고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거름을 받아쓰는 화장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화장실을 하루에도 서너 차례는 드나드는데 저는 항상 버릇이 돼서 그곳을 갔다 오면 바로 담 밑 화단과 마당의 경계쯤의 길옆에 있는 개미집을 살펴봅니다. 언제부터인가 절대 거르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제가 무슨 개미의 습성을 연구 관찰하여 논문 따위를 쓰고자 해서가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데 이제 그게 버릇과 소일거리를 넘어서 제가 거두고 관심 두는, 울안 식구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고나 할까요.

사람들이 알기로 이 녀석들은 부지런 하다고 애기들 하는데 제가 보기는 조금 다른 것 같더군요. 우선 겨울이 지나가도 한참 지나갔는데도 집 밖으로 나오는 놈들이 없어요. 다른 벌레나 곤충들은 진즉부터 나와서 밭으로 어디로 활개치고 다녀도 나올 기미가 없다가 사람들 생각에 날이 아주 이상고온이다 싶을 정도여서 웃통을 벗어부치고 일한다고 해야 굴 밖으로 얼굴을 내밉니다. 이제나 나오나 저제나 나오나 하루에도 몇 번씩 보니까 그건 제가 잘 알지요. 지난겨울에도 역시 개미집에 눈이 쌓인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구멍하나가 늘 빼꼼하게 뚫려 있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옳다! 개미집 환기창인가 보다, 직감적으로 생각했죠. 눈이 녹아도 그 구멍 중심으로 더 녹아요. 그래서 눈이 아주 녹은 후에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몇 년을 두고 그 근처가 오강단지처럼 봉긋하게 솟은 그 한가운데쯤에 좀 큰 빨대구멍이 나 있더라고요. 그래 기다리다 지친 어느 날 그 구멍에 실제 빨대를 물고 가서 숨을 하번 불어 넣어 봤습니다. 그래도 반응이 없어요. 그래서 마음먹고 크게 서너 번 불어넣고 기다렸더니 아주 똔발 똔발하게 생긴 놈 세 마리가 나오는 겁니다. 나와서 잠깐 바로 구멍근처에서 안테나 돌리듯 고개만 이리저리 몇 바퀴 돌리더니 이내 그냥 들어가 버리더군요.

날이 이제 많이 더워져서 개미집은 날마다 부산합니다. 빨대 구멍 중심으로 수십 개의 다른 구멍들이 생기고 그 구멍주변의 오강단지 전체면적이 덮이게끔 굴 안에서 흙을 파내는 작업을 하는 중이거든요. 그러니까 4월도 중순인 이제야 뭔가 일을 벌이려고 굴을 확장하고 있다는 이야긴데 부지런하다고 생각하기엔 좀 거시기 하지요? 실제로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한 이삼십 분만 구다 보고 있으면 일하는 놈보다는 밖에 나와서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놈이 더 많고 솔 씨며 여치다리 같은걸 그야말로 잔디 풀 사이로 천신만고 땀 흘리며 끌고 가는 동무들을 도와주기는커녕 비웃듯이 옆에서 쳐다만 보는 놈 부지기수입니다.

이러는 모습이 화가 나서 한번은 예의 그 빨대로 숨을 크게 불어 넣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어찌나 행동이 민첩한지 마치 TV화면을 빨리 돌리는 것처럼 제가 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새 제 다리며 팔이며 몸뚱이에도 수없이 들러붙어서 물고 늘어져 떨어지지 않는 놈, 냄새 맡는 놈, 할 수 없이 서너 발 뒤로 물러나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는 몇 번 너무 늦게 나온다 싶으면 놀래 켜서 일하라고 숨을 불어 넣어 봤는데 그것도 그만해야겠지요?

저보고 참 할일 없는 사람이라고 하시겠지만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봄날이 조금 가문다 싶었는데 비 온다는 예보가 있어 그런지 여기저기 지렁이가 기어 나와 햇빛에 말라죽은 게 눈에 보였습니다. 그것보고 어떤 생각이 떠올라 그걸 통째로 한 마리 집어다가 개미집위에 올려놔 봤습니다. 사실 이렇게 큰 먹잇감은 집까지 끌고 갈수 없으므로 그 자리에 흙을 파 올려 쌓아서 새집을 만드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집이란 것도 사람처럼 나중까지 살만한 곳이어야 할 텐데 먹이 놓인 곳이 꼭 그렇게 맞아 떨어지란 법이 없겠지요.

이놈들이 자기네들 집 지붕 위라 그런지 망치 들고 와 두드려 보고 만져보기는 하는데 흙을 퍼 올리지도 않고 굴속으로 끌어가려고 애쓰지도 않더군요. 이번에는 가위를 들고 가 꾸덕꾸덕하게 마른 그 지렁이를 성냥골 만씩 하게 잘라서 끌어가기 좋게 만들어줘 봤습니다. 그제는 신나게 굴 안으로 끌어들여서 한 이십분이 지나자 흔적이 없이 되었습니다. 이때 제가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르실겁니다. 짐승이고 뭐고 간에 기를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풀 먹여서 거름 받고 길들여서 논밭 가는 소뿐이라 생각하고 이제 여러 해 만에 다시 좋은 일소나 한 마리 거두어 먹여 보려고 하는 차에 이 또한 생뚱하게 개미에게 정을 주고 있는 꼴이라니, 허나 동서양과 인간의 고금에 개미라고 하여 어찌 이야기꺼리가 되지 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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