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 관계, 종속 관계는 해묵었으나 언제나 현재형이기 일쑤이다. 도급을 떼어주며 위세를 부리는 이와 여러 아니꼽고 치사한 상황이나 조건을 감내해서라도 먹고살아야 하는 이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골목상권 붕괴와 소규모 자영업자의 폐업을 초래해 비판을 받았던 제과제빵 대기업의 횡포, 정규직의 수발을 들어야 겨우 살아남으면서도 늘 해고위협에 노출된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애, 인권과 사생활이 송두리째 짓밟힌 운전기사와 다반사로 폭력을 행사한 기업대표 등등. 어디 이뿐이겠는가, 세상사의 대개가 불평등한 현실을 깔아두고 있다.

농업분야에서도 갑의 횡포, ‘갑질’ 논란이 불거졌다. 농약 원제를 두고 벌어진 일이다. 제초제든 살충제든 농업에 쓰이는 약, 농약은 그 기능과 효과 덕에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농약이라는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농약의 원료, 즉 원제가 중요하다. 화학농약이든 천연생물농약이든 효능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적잖은 노력과 돈이 들어간다. 특히 농약 원제의 경우 기술적인 뒷받침이 없는 한 별도의 특정 원제를 만들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내 수많은 농약회사들 중에서 원제를 개발, 보유한 기업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에 불과한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한다.

원제 공급중지와 계약해지가 발단이 됐다. 원예용 살충제 ‘데시스’를 삼십 년 넘게 국내에서 팔아온 경농은 데시스의 원제를 공급하던 바이엘크롭사이언스가 원제 공급 중단을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고 주장한다. 반면 바이엘사는 일정 유예기간을 두는 등 적합한 절차를 따라 계약해지를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법 테두리 안에서 적합하게 추진한다고 하니 언뜻 문제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경농의 하소연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서로 충분한 협의와 합의를 통해 원만히 풀어갈 일을 갑 지위에 있는 바이엘사가 일방적으로 추진함으로써 30년 넘게 공들인 탑을 하루아침에 허물었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계약만료 전에 바이엘사가 자사제품을 출시해 판매함으로써 경제적으로도 적잖을 손실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두 기업의 계약관계가 갑을 관계인지, 동등한지는 이해득실 결과로 나타날 일이다. 문제는 이를 계기로 농약 값이 오르거나, 그래서 농업인의 부담이 늘어나는 경우다. 동종업체간 상생을 바라는 마음도 사실은 농업인에게 피해가 없어야 한다는 절박함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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