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마늘종이 나와서 뽑아냅니다. 벌레 잡아 주고 풀 매준지가 엊그제인데 그새 밑이 굵어지며 대궁을 밀어 올렸습니다. 종은 나오는 족족 뽑아줘야 합니다. 연할 때일수록 쑥쑥 잘 뽑아지고 반찬을 해도 맛이 있지요. 말은 2주 정도까지 놔뒀다가 뽑아도 밑이 굵어지는 데는 큰 지장이 없고 뽑아낸 그것의 씨방은 주아 재배를 하는데 쓸 수 있다지만 아무래도 하루라도 빨리 뽑아 주는 게 밑이 더 굵고, 주아재배를 할 목적으로 채취할 것은 따로 좀 더 놔뒀다가 많이 여물었을 때 잘라내서 갈무리 하는 게 좋더군요.

그런데 올해의 마늘종은 썩 잘 안 뽑히네요. 종은 이른 아침이나 산그늘 내린 저녁나절에 잘 뽑히는데 어인 셈인지 열에 일곱은 끊어져서 짜증이 나는군요. 종을 쓸 목적이 아니라면 한 3일 만에 한 번씩 씨방만 똑똑 따버려도 되지만 종을 쓸려고 별렀더니 그런 보람이 없어요. 작년에 마늘 농사를 망쳐서 종은커녕 마늘도 평년 삼분의 일 수준이었는지라 마늘종 장아찌를 담그지 못했거든요. 멀리 사시는 형님 댁에서도 그 재작년에 가져다 담았던 우리 마늘종 장아찌가 정말 맛있었다며 또 보내주길 신신당부했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아침저녁의 일교차 큰 날씨 탓인 듯합니다. 밤에 바람 없이 맑고 푸근해야 이슬이 많이 와서 잘 뽑아지는데 계속 바람이 불고 아침 기온이 곤두박질치니 종을 싸고 있는 마늘대궁이 단단하게 오므라져서 뽑히지 않는 것 같군요. 그래도 나흘 동안을 아침마다 뽑았더니 거의 다 뽑혔고 모아진 것은 꽤 많아서 한 박스 잘 포장해서 형님 댁에 보내드렸습니다. 작년부터 내주신 숙제를 이제야 마친 듯한 홀가분함이 기분을 좋게 합니다. 이제 육쪽마늘 한 두둑이 남아있고 그것은 아직 종이 올라오지 않았으니 저희가 나중에 쓰면 되겠지요.

농사꾼하고는 상관없는 나흘간의 연휴가 끝나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혀 상관없는 것은 아니더군요. 우선 택배회사가 다 쉬니 택배를 보낼 수 없었고요. 서울에 있는 딸이 어버이날이라고 내려와서 반가웠고요. 아무래도 다들 이곳저곳에서 노는 분위기라 저도 덩달아 하루 이틀 느긋해져서 식구들끼리 맛난 음식 해 먹고 놀았으니까요. 언제부터인지 시골도 주말과 일요일은 공무원이거나 도시의 월급쟁이들처럼 쉬는 분위기가 되는 듯합니다. 바뿐 일이 있다 하더라도 주말에 대부분 결혼식들을 하니 어쩔 수 없이 시간을 비워놓아야 하지만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하루쯤은 쉬는 듯합니다.

이런 현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던 간에 노동과 휴식이 적절히 섞여 있어야 한다는 데는 두말 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농민을 포함해서 전 국민이 다 같이 주 오일 일하고 이틀 쉬는 것에서 더 나아가 나흘일하고 사흘 쉬었으면 더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나흘일하고 사흘쉬면 우리 삶이 얼마나 여유롭고 부드러워질까요. 그러지 말고 아예 사흘일하고 사흘 쉬는 것, 이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일률적으로 적용 할 수는 없을 테니 그 선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면 공무원이나 직장인들 참 천국에 다름 아니겠지요.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그렇게 일해도 예전처럼 생활이 보장된다면 말이지요.

그런데 지금의 이 생활이 그대로 보장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문제인 듯합니다. 그런 전제가 성립되려면 지금 상황에서는 주에 나흘만 일하거나 하루 쉬고 하루 일하는 것은 불가능 할 테니까요. 다시 말해 죽을 똥 살 똥 일해서 우리의 지금 이 생활을 유지 발전시키는 것을 어느 선에서 포기하지 않으면 놀 수는 없는 상황이고, 더더구나 그렇게 일해도 점점 형편이 쪼그라지거나 일자리 자체가 없는 게 문제의 핵심이지요. 그런 것의 해결 없이 노는 타령 하는 것은 제가 생각해도 참 공허하기 그지없습니다.

우선 저부터도 밭농사건 논농사건 돈 나오는 게 없으니 해마다 무엇을 심어야 할지 걱정이고 그것이 해를 거듭하니 생활유지가 되지 않아 마이너스통장의 잔고가 쌓여갑니다. 가처분소득 즉, 쓸 수 있는 돈이란 게 지금은 오직 마이너스 통장에서 빼는 것이므로 빚인 것이지요.

이 상태에서 빚을 지지 않으려면 쓰지 말아야 하는 건 자명합니다. 아니면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어들이던 지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제가 지금 쓰고 있는 한 달 생활비인 공과금은 하여간에 자동차 연료비와 몇 건의 경조비, 아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 포함된  최소한의 생활필수품비도 쓰지 않는다면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이라고 할 수가 없겠지요. 그래 할 수 없이 엊그제는 누구한테 였던가 ‘어디 일 다닐 데라도 좀 있으면 좋겠다’고 중얼댔던 것 같은데 옳아, 그게 안식구였군요.

어떻게 하다 보니 또 궁상떠는 이야기로 흘렀습니다만 어제는 모처럼 날씨가 정말 화창해서 텃밭에서 아내랑 함께 여러 가지 모종을 냈습니다. 그 전전날 사다놓은 청양고추도 한판심고 가지 오이 호박 토마토 모종을 냈습니다.

바쁠 것도 없고 일거리가 많지도 않은데다 비온뒤 끝이라 땅이 조금 진듯해서 오히려 일손을 늦추면서 밥에 두어먹을 동부 콩도 심고 옥수수도 심었습니다. 거름 뿌리고 경운기로 갈고 괭이 잡아 두둑을 만드는 동안만은 온갖 시름을 잊고 행복하였으므로 저 같은 사람은 이렇게 가볍게 일하는 시간은 조금 더 늘려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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