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주부들에게는 새참거리가 신경 쓰이는 계절입니다. 반대로 농군들에게는 새참이 기다려지는 일철이지요. 끼니야 차라리 밥하고 반찬하면 되지만 논밭에서 땀 흘리며 일하다가 쉴 겸해서 먹는 새참거리는 적잖이 까다로운 면도 있습니다. 아침저녁나절의 두 차례를 똑같은 것으로 할 수도 없을뿐더러 과일처럼 너무 가벼워서도 안 되지요. 그렇다고 너무 거하게 차리면 끼니가 빛을 보지 못해 주부가 힘이 듭니다. 끼니와 끼니 그 한 중간을 맞추되 되어지는 일거리를 살펴서 내가는 시간을 앞뒤로 조금 조절할 줄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일에 효율이 생기니까.

물론 대강 대강 할 수도 있어요. 어느 집 가보면 아침저녁 라면만 끓여다 주는 집도 있고 빵 하나에 우유하나 내오는 집도 있고 수박이나 참외 몇 조각만 썰어오는 집도 있고 처음부터 막걸리 몇 병과 김치 한보시기를 논밭 둑에 놓아두고 가는 집도 있고 아예 끼니로 두 번을 차리되 점심은 새참처럼 가볍게 먹고 쉬게 하는 집도 있습니다. 참 가지각색이지요? 노인들만 있는 집의 새참이 빵과 우유이기 쉽고 젊은 사람이 살림하는 집은 과일이기 쉽고 안팎으로 술 좋아하는 집은 당연히 술이 새참의 주인이고 일꾼들 일 많이 시키려는 집은 그래도 새참에 김 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말하기를 “일꾼 대접은 먹을 것으로 해야 한다”고 했어요. 똑 같은 강도의 일이라도 내 집 일보다 남의 집 일은 더 힘이 들고 시간이 지루하기 마련이어서 이들의 수고를 위로하는 데는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덜 지쳐서 그나마 하루해를 버틸 수 있으니까요. 일꾼들의 시정을 잘 살필 줄 아는 사람은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대접하려고 애를 씁니다. 결국 일꾼들도 그런 주인의 마음에 보답하려고 꾀부리지 않고 내일처럼 일을 해주지요. 일거리가 조금 늦겠다 싶어도 마무리까지 해줍니다.

새참이야기 하니까 옛날 생각이 납니다. 지금은 크고 무거운 일들을 콤바인 트랙터가 다 해버리니까 농사의 규모가 작은 사람은 비록 모심고 나락 벤다 하더라도 새참 챙길 일이 없고 챙긴다 해도 기계부리는 사람에게 달랑 빵 하나 우유 한 봉지거나 캔 커피나 맥주 캔 하나 건네주고 맙니다. 옛날이야 그럴 수는 없었죠. 작으나 많으나 다 사람 손을 빌려야 하고 또 하루 일거리에 맞춰서 놉을 얻는 것이므로 새참이 빠질 수가 없었습니다. 옛날의 새참은 대부분 국수였답니다. 국수는 참 여러 가지로 미덕이 있지요. 구하기 쉬운 것이지만 밥에 비해 색다르고 싸면서도 양이 많습니다. 음식으로 조리하기 간편하고 먹기 쉽고 쉬 배부르지요. 하지만 한바탕 일하고 나면 금방 꺼져서 부담이 없습니다. 이러니 새참은 이집이나 저 집이나 대게는 국수이게 마련이어도 일꾼들은 별로 불만이 없었습니다.

이맘때의 새참 중에 고구마도 뺄 수 없는 것이지요. 지금의 고구마는 먹고 살만한 집에서나 내놓는 것이랍니다. 가난한 집이야 겨우내 끼니로 다 먹어버려서 있을 턱이 없는데 잘 사는 집은 고구마를 아껴둡니다. 수분이 거의 다 빠진 지금의 고구마는 달기가 이루 말할 수 없고 쫀득거리기까지 하여 겨우내 그렇게 물리도록 쪄먹고 밥에 놓아서 불려 먹었어도 반갑습니다. 그래서 어떤 집은 일해주기로 하고 고구마로 품을 내다 먹기도 했답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새참으로 맛있는 것은 쑥 개떡 이거나 쑥버무리였다고 생각됩니다. 봄 개떡은 양반도 먹는다는 말이 있지요. 그만큼 맛이 있다는 말이겠지요. 연한 쑥을 뜯어다 삶아서 쌀가루 빻아 함께 치댄 다음 조그맣고 얄프닥 하게 만들어서 찌면, 그리고 참기름 발라서 담아 내가면 제아무리 점잖 빼는 그 옛날 양반님네라도 “나도 하나 다고” 말하지 않고는 못 베이겠지요. 그런 점으로는 쑥버무리도 마찬가지. 단, 이 쑥버무리를 보릿가루로도 하는데 그러면 조금 맛이 덜하지요.

새참거리 중에는 밀북섬과 절간고구마라 하여 썰어 말린 고구마 물에 불렸다가 쪄먹던 것도 있어요. 밀북섬은 밀을 물 조금 섞어서 절구통에 찧어 겉껍질을 벗긴 다음 단 것 조금 넣고 고추밭 콩 같은 것도 조금 섞어서 시루에다 찌는 것입니다. 그러면 따뜻할 때는 고소하니 맛이 있어요. 고구마도 물에 불렸다가 단것과 고추밭 콩을 섞어서 시루에 쪄놓고 새참으로 많이 먹었답니다. 그러나 우리 어린 일꾼들의 입맛에는 10원에 두개 주는 찐빵 새참만큼 맛있는 게 없더이다. 기껏 두개나 주던지 세 개씩이나 먹게 나눠주는 그 찐빵이 왜 그리 맛있던지 모르겠습니다.

찐빵의 그 시큼한 이스트 발효냄새와 달콤한 팥소의 맛이 잊히지 않아서 저는 지금도 가끔 찐빵을 사보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직접한번 만들어 보려고 밀가루 3kg짜리 하나 사다가 막걸리 넣고 반죽을 했더랬습니다. 팥소 없이 그냥 개떡처럼 쪄도 잘만 부풀면 맛이 있지 않던가요? 하지만 세 번째 시도인데도 반만 성공했습니다. 반죽이 너무 질었고요. 소금을 넣지 않았고요. 완두콩을 조금 섞었는데 덜 부풀었습니다. 안식구는 손도 대지 않으면서 빙글 빙글 웃기만하고 저만 새참으로 먹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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