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학교에 다니는 아들 녀석이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물론 혼자가 아닌 학교 학생전체가요. 이 여행은 작년 가을 일본의 원폭 피해에 관련된 할머니들로 구성된 평화단체 회원 몇 분이 공동체학교를 방문하면서 초청 계획된 것인데 미래세대의 평화교육에 목적을 두었습니다. 초청에 따른 3박4일 동안의 체제비용은 그곳에서 부담하기로 하고 왕복 여비는 우리 쪽 부담의 조건이었고요.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따른 방사능 피폭위험이 일본에는 아직도 광범위한 지역에 그대로여서 여러 학부모들 사이의 의견은 여행찬성과 반대로 갈라졌습니다. 특히나 공동체학교는 원전을 반대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전기. 석유의 절약은 물론 대체 에너지 생산의 실천을 고민해오던 중이었는데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이 여행이 학교의 교육방침에 틀리지는 않지만 위험할 수도 있는(!) 그곳에 간다는데 따른 걱정이 있었으므로 찬성 쪽도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보자는 의견이었지요.

그러나 세상일이 진행되어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면 대부분 무엇인가 하자는 쪽 사람들의 주장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지 않던가요? 학생들이야 일본이 제 아무리 위험하대도 학교생활의 구속과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어른들과 같은 생각으로 눌러 둘 수는 없던 것이겠지요. 저희 부모들의 주머니 속사정 같은 것이야 더더욱 고려의 대상이 아니겠고요. 더더군다나 공동체학교 측에서는 해마다 오월에 5박6일간의 전국도보여행을 해오던 차 이번에는 일본 가는 것으로 대신 하겠다 하는데 피난민처럼 남부여대, 취사도구 싸 짊어지고 다니며 곳곳에 공짜 숙박지를 빌어야 하는 무전도보여행의 애로에서 한번쯤 놓여나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겠습니다.

하지만 학교와 학생 쪽에서 볼 때 뜻하지 않게 악재가 생겼죠. 바로 얼마 전에 일어난 일본의 지진입니다. 진도 7.5의 강진이 일본전역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은 지진의 강도도 강도이지만 바로 다음에 일어난 에콰도르의 지진이 태평양연안 국가, 즉 불의 고리에 해당하는 국가들의 연쇄현상 아니냐의 걱정이었습니다. 수백차례 여진이 계속되는 속에서 불안과 공포에 떠는 사람들을 시시각각 TV화면으로 지켜보았을 학부모 몇 분은 준비는 해놓고 본다며 여권을 발급받으라는 학교에 반대해 아예 애들을 집으로 대려가 버리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가까이 지난 후 이러저러한 곡절 끝에 학생들은 아무 탈 없이 가는 날 오는 날 합해 닷새 동안의 일본여행을 마치고 잘 돌아왔습니다. 저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내 마음을 조이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가슴을 쓸어 내렸죠. 그러면서 한자 친할 친(親)이라는 글자가 생각났습니다. 친 자는 나무위에 서서 바라본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풀어 말하면 자식이 어디 나가면 이제 오나 저제 오나 애가 쓰여서 높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살펴보는 게 어버이 마음이라는 것이지요. 그게 자식이 장성했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닌 듯합니다. 어릴 적보다 그 정도야 덜하다 뿐 마음이 쓰이는 건 마찬가지더군요.

저는 입버릇처럼 애 앞에서건 남 앞에서건 스무 살만 넘으면 지 인생 어떻게 하건 상관치 않는다고 말해왔지만 오히려 상관 말라는 쪽은 자식이고 부모인 저는 안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일본에서 돌아온 아들 녀석이 반나절동안의 외출허락을 얻어서 집에 왔습니다. 방에 들어와 즈이 엄마 앞에서 가방을 여는데 맨 먼저 목걸이 하나를 꺼내서 채워주더군요. 하트모양의 귀걸이를 사려다가 샀다는 그 목걸이는 제 보기에 그냥 쇠줄 목걸이 입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쇠줄이냐 금줄이냐를 떠나서 희한하게도 제 아내처럼 저도 감격스러운 거 있지요. 사실 저도 얼마 전에 무슨 기념으로다가 아내에게 귀걸이 하나를 사줬습니다.

진즉 약속했던 것을 잊어버린 척 모른 척 하고 있는 저를 입이 닳도록 조르고 결국 귀걸이 아닌 돈으로 받아서 자기가 산건데 아들 녀석이 사온 것과는 가격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지만 느끼는 감동 면에서는 아들 것이 하늘이라면 제 것은 발바닥정도나 된달 까요. 또 한편으로는 아들을 처음 났을 때의 마음에 조금 육박하는 그런 벅차오름 같은 것도 느껴지고요. 아들에게 처음 받은 선물이라고 너무 감격스러워 하는 아내의 모습을 오늘은 이상하게 제 필설로 그려내기 쉽지 않습니다 그려.

제 것은 술. 비염 때문에 4월 5월 두 달간 술을 못 먹는 줄 알면서도 술을 사왔어요. 그 또한 묘하게 가슴을 치더군요. 그 다음에 꺼내 놓은 게 일본 매실장아찌 우메보시! 별것인줄 알았더니 하이고! 짜고, 짠 것도 이상하게 짜서 하나먹고 말았고요. 라면의 원조 라멘종류 몇 가지 사오고 나무젓가락을 엄마 아빠 것과 지 것을 사왔더군요. 안식구는 저하고는 조금 다르겠습니다만 저는 여행경비 한 푼 주지 않고 지 모아놓은 것으로 다녀오라고 한 것 때문에 미안한 마음이 겹치는데 의기양양! 안식구는 책상위에 이것들을 올려놓고 사진 찍기 바빴습니다. 그러고 나서 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냅니다. 평소에 스마트폰으로 뭐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그런걸 보면 정말 기분 좋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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