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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우는 철에
2016년 06월 17일 (금) 14:15:48 박형진 시인 .
바쁜 때입니다. 보리배미를 빼고 논에는 모가 거의 다 심어진 듯한데 밭에서는 양파들 캐느라고 바쁩니다. 양파는 모 길러서 밭에 비닐치고 심는 일도 큰일이지만 거둘 때는 더 힘이 듭니다. 심을 때는 가을해 짧고 추워서 서두는 반면 거둘 때는 덥고 해는 길고 장마를 앞두고 있어서 또 서두르게 되지요. 힘들다고는 해도 대접 만씩 하게 큼직큼직한 양파를 뽑는 일은 오히려 재미가 있는데 한 사나흘 말렸다가 이파리를 자를 때, 그리고 망에 담을 때는 죽을 맛입니다. 특히 20kg 용량의 망 작업은 여성노인 분들은 하기 힘들어서 나이 좀 덜 드신 분들이 하는데 품삯도 조금 더 받게 됩니다.

그런데 농협과 계약재배를 많이 하는 요 근년에는 망 작업을 하지 않고 1톤씩 들어가는 커다란 자루에다 그냥 담아 버리더군요. 그걸 들어서 차에 실으려면 기본적으로 차가 밭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고 지게차 또한 필요합니다. 일반 상인에게 넘긴다던지 농산물 시장에 직접 내갈 때는 역시 망 작업을 해야 하고요. 양파는 겨울을 나는 작물이라 암지나 그걸 거두고 나서야 여름 끌을 붙이는데 온 밭에 다 이것들만 심지는 않는지라 나머지 비어 놓았던 밭에는 고추를 포함해서 여름작물을 미리 심어 놔 버리더군요. 그리고는 보리 양파 거두어낸 밭은 한철 쉬게 하던지 중복 무렵에 기장이나 메밀 따위들을 심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체를 보면 땅을 쉬게 하는 것은 윤작이나 휴경의 개념이 아닌 그냥 일하기 힘들어서 인 듯합니다. 갈수록 농사꾼의 나이가 많아지는 것 때문이고 여름작물에는 크게 돈 되는 게 없다 여겨서이기도 합니다. 그런 것은 저에게도 마찬가지 사정이 되었습니다. 가능하면 조금씩이라도 여러 가지 것을 심는 것이 유기농의 원칙이랄 수 있는데 하다 보니 이게 점점 숫자가 줄어들어서 심지 않게 되는 것이 이제는 더 많아졌습니다. 유기농도 좋지만 한마디로 힘만 들고 나오는 건 없으니 밭에서도 시장경제의 원리가 작동되는 겁니다.

저의 안식구는 언제부터인가 입버릇처럼 텃밭 정도만 가꾸었으면 자기한테 맞고 좋겠다고 뇌이더군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는 게으른 소리하고 있다고 퉁명스럽게 말했고요. 그런데 그게 한해 지나 두해 지나니 이제는 제 맘에도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차마 아직 제 입 밖으로 내놓고 말은 하지 않지만 앞으로 몇 년 만 지나면 아마도 그리 되지 않을 런지요. 어느 신문에서인가 농사일을 그만 두게 되는 평균 연령이 남자가 75세로 나와 있어 무진 놀랬습니다. 현실이 그런 것이어서 조금 생각해보면 절대 놀랠 일이 아닌데 마치 저보다 그때까지 일하라는 이야기처럼 들렸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도저히 그때까지 일할 자신이 없어요. 지금도 힘에 겨워서 한나절 일을 하면 나머지 한나절은 쉬는 때가 많은데 어떻게 그렇게 일한답니까? 물론 쉬엄쉬엄, 때론 소일 삼아서이기도 하겠지만 엄연히 소일은 소일이고 일하는 것은 일하는 것이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좀 다른 농업인들에 비해서 근력이 약하긴 합니다. 어느 순간에 막심 쓰는 것은 몰라도 빼빼 말라서인지 지구력도 없고 조금 일하면 뼈마디 여기저기가 삐걱대며 맞부딪히는 느낌이 옵니다. 벌써 오래전부터 몸이 기상대가 됐으니까요. 그래 이렇게 바뿐 철에도 남들과 같이 보조를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우스개 소리 하나 할랍니다. 저도 금년에 양파 약 300평정도 심었단 말씀을 여러 차례 드렸는데 그 양파가 어찌나 일 힘들어하는 저를 생각했는지 스스로 알아서 되기를 꼭 마늘 중간 크기만큼만 되었더랬습니다.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니 더 두고 볼 것은 없다 싶어 일찌감치 그것들을 거두어 들였는데요. 그게 더도 말고 외발수레 하나 분량이었습니다. 양파가 대접 만씩 하다면 절대로 절대로 망에 담지 않을 것들입니다. 그런데 저희 양파가 스스로(!) 그렇게 되고 보니 그 콩알 만씩 한 것들도 참 새롭게 보이긴 합디다 그려.

그렇다고 하여 풀 속에서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주어 담으며 ‘내년엔 잘해봐야지’ 했을까요? 신주단지 개 물어 가라지요. 다시는 양파농사 하지 않기로 작정을 했습니다. 돈 없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걱정 같은 것은 하도 달고 살아 버릇해서 이제는 감각도 없어졌고요. 허망한 생각 따위도 들지 않더군요. 사람들이 농사를 포기 하는 이유에 저도 조금 가까이 육박했다고도 생각되는데 그러나 그건 아닙니다. 저는 땅과 저의 관계, 조응하는 정도, 이런 것들을 다시 써내려가고 있는 것 일뿐이지요.

어쨌거나 올해는 밭 매는 것 좀 덜 바쁘게 할 요량으로 6월 초순에 깨를 두마지기 정도 심었더니 깨가 참 예쁘게 잘 났습니다. 그동안 깨는 실패 없이 몇 년을 자알 해 왔기에 올해도 효자노릇 하려니 생각되어 시차를 두고 먼저 심은 만큼만 더 심어볼 작정입니다. 마늘 캐고 밭 갈아 놓고 완두콩 거두어서 완전히 익은 것과 풋것을 따로따로 따는데 나무 그늘에 앉아 아내랑 같이 했습니다. 아 - 그러고 보니 모내기 한 논에 가서 물꼬를 살펴보고 와야겠군요. 이러 저러한 인간사를 알고 있는 것 같이 심상한 듯 심상치 않은 듯 간간 뻐꾸기가 우는 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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