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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를 때우는 것은
2016년 06월 24일 (금) 13:42:49 박형진 시인 .
며칠을 망설이고 생각하다가 결국 하기로 했습니다. 모 때우는 일말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이곳 공동체학교와 손모내기를 했는데 작년과는 달리 때우기도 그렇고 때우지 않기도 퍽이나 애매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오전부터 모내기를 해서 일꾼들이 지치지 않은 까닭에 따복따복 모를 잘 심어 때워야 될 곳이 거의 없었죠. 그러나 올해는 이틀째 하는 모내기의 마지막 날 그것도 가장 나중에 심은 논이 저희 논이 되었으니 학생들이나 어른들이나 지칠 대로 지쳐서 때울 곳이 많이 생겨 버린 겁니다.

처음 심어 놓고 논둑에서는 이리저리 쳐다봐도 잘 모르지요. 사흘째 되는 날 제초용 우렁이를 넣으러 안에 들어가 봤더니 어디라 할 것 없이 아주 애매한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기계 이앙처럼 어디 한쪽만 쭉 빠졌다면 간단할 것이지만 한두 개씩 때우며 논 전체를 한번 더투어 내야할 모양 세이니 그게 문제인겁니다. 아마도 저 혼자로는 하루 남짓 품을 버려야 하겠지요. 첨에는 그 하루 남짓을 논에서 첨벙거리며 휘졌고 다닐 일이 걱정스러워 눈 질끈 감고 그냥 관두어 버리자고 했습니다. 늘 해보지만 한두 코 빠진 곳이 보기만 싫다 뿐이지 막상 들어가서 때워보면 모판때기 두세 개도 들어가지 않거든요.

수확량에서도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게 말이지요. 며칠을 두고 묘하게 뒷골을 잡아당기는 듯 스트레스가 되는 겁니다. 가로세로 30cm에25cm로 한껏 벌려서 심은 거라 한 코 때울 곳이 생기면 그곳이 꼭 마당만큼 넓어 보이는데다가 그 들판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다니는 곳이라 남의 눈도 신경이 어지간히 쓰이고요. 남의 눈이야 의식하지 않고 산다고 항상 그렇게 말은 하지만 남처럼 많지도 않은 논 저런 것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나 하고 누가 꼭 말하는 것만 같기도 하고, 제일로 제 자신에게 용납이 되지 않는 겁니다.

마치 인생을 때우지 않은 모처럼 허투로 사는가 싶어지기도 해서요. 가끔 그러지 않던가요? 살다보면 어떤 때는 자기 검열이 강해져서 자신에게 엄격해지는 때가 지속되다가 그게 또 어느 날 ‘뭐 그럴 것 까지 있겠나 좀 부드러워져야지’ 하면서 느슨하게 풀어지는 것 말이지요. 어찌 보면 그런 변화는 어떤 계기에 의해서 일어나기 마련인데 길게 보면 일정한 주기나 패턴이 있는 것 같더군요. 모를 때우기로 결심 한 것은 이번에는 아들놈 때문이기도 합니다. 제 아들놈이 다니는 이곳 공동체학교는 지금과 같은 농번기철에는 학생들도 농사일을 거들게 합니다. 그것이 앞으로 즈들이 제 앞가림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등학생들은 공동체 일 뿐이 아니라 바뿐 이웃 농민들의 지원요청(!)에도 형편 닿는 대로 응해줍니다. 물론 아르바이트 수준의 용돈을 챙겨주는 것을 굳이 거절하지는 않고요. 이러는데 어제 그제 아들놈한테서 전화가 온 겁니다.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까지 양파 작업을 나가게 됐는데 긴팔남방이 필요하니 가져다 달란 겁니다.

이 더위에 양파작업이라니! 그것도 사흘씩이나? 아내에게 옷을 챙기라고 말을 하면서 저는 잠깐 걱정과 안타까움이 교차했습니다. 고1학년 때인 작년에도 양파작업을 며칠 나갔으니까 올해도 그러려니 여길 수 있는 것인데 그게 이상하게도 내 몸뚱이를 편하게 하려고 모도 때우지 않고 있는 처지에서는 마음 편하게 받아들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아들의 뙤약볕 양파작업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게 아니라 아들의 전화를 받는 순간 저의 게으름의 불편하고 스스로 안타깝게 느껴져 버린 겁니다. 그래 앉은 자리를 털어버리듯 벌떡 일어나며 모를 때우기로 한 것입니다.

소나기 온다는 예보가 있어 하늘은 금세라도 한바탕 쏟아지려는 듯 구름의 움직임이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논에서는 소나기 한 줄금 흠씬 맞는 것이 오히려 시원합니다. 지금처럼 왠지 답답한 그 무엇이 저는 내리누르는 듯 할 때 논으로 달려가서 논을 헤매며 맞는 소나기는 답답함을 풀어 주기도 할 것입니다. 아들의 전화도 전화지만 요즈음 자주 애들의 장래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딸애들의 결혼문제며 아들놈의 진로문제며 갑자기 마음이 더 세심하여졌는지 약해졌는지 그런 걸 생각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답답하고 무거운 마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바탕 내렸음직한 소나기는 무심하게도 오지 않더이다. 학교에 옷을 가져다주고 논에 와서 한쪽 귀에서부터 차근차근 모를 때워나가는데 날씨만 후덥지근해서 땀으로 맥질을 했습니다. 그새 개구리밥과 파래들이 논을 많이 뒤 덮어서 그거 가라앉게 하는데도 소나기는 필요한데 말이지요. 하여튼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논을 헤매고 다니니까 속은 조금 후련합니다. 한나절이 가까워지면서부터는 이가 조금 악물리고, 열두시 무렵까지 3분의2쯤 끝냈는데 내일 또 와서 하려고 발을 빼려다가 가만히 생가해보니 내일은 저도 이웃 동네 사는 후배의 양파 대궁 자르는 일을 하루 도와주기로 한날이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나온 김에 차에 가서 500ml짜리 물 한 병 다 마시고 다시 들어가 이제는 두시까지 애구애구 앓는 소리를 하며 다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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