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처럼 살면 누구나 잘 살수 있어요”

올 해 때 이른 더위로 양봉농가들은 힘든 시기를 겪었다. 전국에서 아까시꽃이 동시 핀 데다가 꿀 분비량은 아주 적었던 탓에 꿀 생산이 60%도 못 미칠 것 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양봉을 지키려는 의지의 여성농업인이 있다.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금성양봉 권향화(61)대표는 100여개의 벌통에서 꿀을 채취하고 있고, 틈만 나면 고물상을 통해 수입을 올리고 있다.

2008년부터 한국에서 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북한이탈주민으로 4년전부터 양봉업을 하고 있다. 이전에는 5년간 간병인 생활도 했었다고.

“탈북을 하고 한국에서 간병인 생활을 했는데 아무래도 말투가 다르니까 힘든 구석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어렸을 때 북한에서 아버지 어깨너머와 기업소에서 배운 양봉을 남편과 함께 시작했어요. 지금은 100통 정도 하고 있고, 시간나면 고물도 팔고, 공병도 주우러 다니고 그래요.”

그녀의 하루는 새벽 5시부터 지금살고 있는 산아래 컨테이너에서 시작된다. 첫 번째는 예상대로 무조건 벌을 살피고, 그 다음부터 그 날의 일정을 소화한다. 한국에 와서는 정부가 지원해준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양봉을 시작하고 이듬해 불이나서 큰 피해를 본 후 아예 컨테이너로 들어가버린 것이다.

“벌통이 거의 다 타버리니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벌쟁이가 벌 옆에 살아야지 엉뚱한 곳에 살고 있었잖아요. 아파트 보다는 좁고, 열악하지만 불편하지는 않아요. 북한에서의 생활환경도 여기와 비슷했어요. 또 탈북자를 돕는 남북하나재단의 도움과 대출을 통해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어요.”

지금 금성양봉에서 나오는 꿀은 아까시꿀, 밤꿀, 잡(화)꿀과 프로폴리스인데 매년 완판을 할 정도로 꿀의 상태가 좋다. 무엇보다 공부를 좋아하는 그녀는 인터뷰를 위해 만난날도 손에서 양봉관련 책을 놓지 않고 있었다.

“제가 북한에서부터 살아온 이야기를 다 하려면 아마 한 달은 걸릴거에요. 그만큼 힘들었는데 한국은 내가 노력하면 하는 만큼 대가가 돌아오니 힘이나요. 그래서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고물을 찾고, 공병을 주워요. 공병만 주워도 하루 용돈벌이는 충분히 되거든요. 생각없이 버려지는 공병과 캔이지만 저한테는 그게 곧 돈이에요.”

그녀는 자신과 같은 길을 걸어온 북한이탈주민이나 여성농업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저같은 탈북자들은 글도 짧고, 기술도 부족하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힘든일이라도 열심히 하면 누구나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그리고 한국에 있는 여성농업인들이 인정 많고 참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우고 있어요. 늘 고마워요.”
이야기 내내 밝은 얼굴을 보여준 그녀는 “아~인터뷰만 해가지 말고 꿀 좀 팔리게 해봐요~”하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전화번호 : 010-5731-0618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