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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으시겠다고요?
2016년 07월 08일 (금) 15:28:03 박형진 시인 .
모 심은 지 한 달 조금 지나니 논둑에 풀이 또 무성하게 자랐습니다. 트랙터에 거름 뿌리는 기계를 달고서 팰릿으로 된 유박이라는 거름을 뿌리면 논과 논둑을 구분하지 않고 뿌려지는 탓에 논둑의 풀도 거름기를 받아 잘 크나 봅니다. 논둑의 풀만이 아닙니다. 제초용 우렁이를 넣기는 했어도 여기저기 등이 나온 곳은 피도 많이 나왔습니다. 모가 한창 새끼를 치는 지금 풀을 한번 매주면 일도 수월하고 벼도 더 건강해지겠지요.

논을 매려면 우선 논둑의 풀부터 깎아야 합니다. 좀 더 있어도 괜찮기는 하지만 논 맬 때 논둑이 개운하지 않아서 뱀이라도 나오면 조금은 거시기 하겠지요. 그래서 한나절은 예초기질을 했습니다. 집에서 논이 약30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탓에 식전 일이라는 것은 할 수가 없어 늘 아침을 일찍 먹고 논으로 갑니다. 하지만 가는데 30분 오는데 30분 차타고 왔다갔다 하다보면 논둑 한번 깎는데도 한나절은 걸립니다. 그나마 논이니까 부려먹지 유기농으로 하는 밭이라면 저 혼자 힘으로는 어림없겠지요.

이튿날은 아들놈을 데리고 풀을 맸습니다. 한창 논을 매는데 평생 술 담배도 하지 않고 농사만 열심인 후배하나가 지나가며 “형님이 바라던 모습이네요, 벌써 아들이 저렇게 커서 일을 도우니 말이요” 아나 개떡이다! 저는 혼자 웃고 말았습니다. 자기는 아들이 어려서 아직 모르겠지만 게임하느라 컴퓨터 붙잡고 사는 놈을 논으로 한번 끌어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겪어 본 사람은 알 것 입니다.

그저께 일입니다. 잠자리가 뭔가 어수선하고 뒤숭숭하고 찌르는듯하여 눈을 떠 보았습니다. 아 그랬더니 세상에나, 그때까지 머리 맡 책상위에 컴퓨터 공유기가 커져있지 뭡니까 시간은 새벽 3시30분, 아들놈이 제 방에서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는 중인 겁니다. 제가 아까 10시쯤 잠자리에 들면서 아들에게 이르기를 12시 전에는 반드시 끝내고 자라고 했는데 아비 말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말이지요. 마침 이 공유기는 며칠 전에 내 돈으로(!) 사준 겁니다. 그전에 있던 것은 뭐가 잘 안 잡혀서 게임을 하는 중간에 툭툭 끊어진다나요.

새로 산 이것은 깜박일 때마다 퍼런 불이 쏟아져 나오는데 밤이라 그런지 그것이 온 방안을 네온처럼 밝혔던 것입니다. 저는 전자파에 유달리 예민해서 잠시만 가깝게 컴퓨터나 TV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찌르는 듯 한 두통을 느낍니다. 수은 전지가 들어가 있는 손목시계도 팔목이 저려서 30분을 견디지 못하고 방안에 있는 유선 전화기도 3분 넘게 통화를 한다 싶으면 귀가 뜨거워져서 힘듭니다. 그래서 특히 잠을 잘 땐 전기 콘센트마저 저 멀리 책상 밑으로 밀어 넣어 제 머리와 최소 1미터 이상은 떨어지게 해야 합니다.

저는 불문곡직 일어나서 공유기 스위치를 꺼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아들놈의 방문을 열고 소리를 꽥 질렀지요. “야 이놈아, 지금이 몇 시냐, 낮에 하는 것도 모자라 밤까지 세울거야 응?” 사실 이 정도는 퍽이나 점잖은 것이지요? 자다 말고 아들과 전쟁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이 녀석은 지금 학교에서 내준 장마 방학 일주일을 컴퓨터 게임으로 채우는 겁니다. 며칠 동안이지만 집이라고 늦잠 자느라 아침은 같이 앉아 먹어 보지를 못했는데 새벽하고도 3시30분이라니! 한 시간 반만 더 있으면 그야말로 날밤을 홀딱 세우게 되는 거지요.

예상했던 대로 점심때도 일어나지 않아서 아들놈의 낯바대기를 저녁때서야 볼 수 있었지요. 제가 간밤에 야단 했대서 주둥이가 댓 발이나 나온 상태로요. 그래 이 녀석을 앞에 앉히고 “오늘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12시를 넘지 마라 내일 아침은 일곱 시에 일어나 밥 먹고 논 매러가야 한다”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아비 말 대접으로 그랬는지 다음날은 일곱 시에 일어나 나오긴 했습디다. 그런데 밥상머리에 앉은 녀석의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로 잠취미성입니다. 맘 같아선 들어가 더 자라고 하고 싶었지만 맘을 정말 독하게 먹고 “논에 가서 좀 첨벙대고 다니면 몸이 풀릴게다” 끌고 논으로 갔습니다.

그런 아비가 보기 싫은지 녀석은 저와 반대쪽으로 가서 매겠답니다. 가지고 간 음악 나오는 스피커를 크게 틀어놓고 말이지요. 그때 후배가 지나간 겁니다. 그러나 녀석 덕분에 한나절 안에 풀을 다 맬 수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풀이 있을지 모르니 전체를 하번 더듬어 보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풀은 등이 나온 곳에 있는 것이라 그곳만 매 나가니 생각보단 쉬웠습니다. 아들 녀석 얼굴도 일이 끝나 가는가 생각되니 비로소 펴져서 “아빠, 왜 그렇게 빨리 맸어?” 물어봅니다. 제가 녀석의 곱곱배기를 많이 맸지만 그 한마디에 저도 마음이 편해져서 논을 왜 유리알처럼 골라야 하는지, 벼가 새끼 칠 때는 왜 물을 낮게 대야 하는지 따위를 설명했습니다.

이런 것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좋은 세상인지 모르겠군요. 저희들 클 때는 아무리 늦어도 새벽1시를 크게 넘지 않았습니다. 지금 녀석의 나이 때만해도 논밭 일에 겨울에는 땔나무 하느라 밤을 샐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아무래도 낮에 힘이 드니까요. 물질이 풍부해지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을 이를 보면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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