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심은 깨를 벱니다. 베기는 베어도 참 거시기 하네요. 깨 씨 뿌리고 날이 가문 탓에 싹이 고루 나지 않고 약 2주가량 여기저기 갈 나더니 익는 것도 그 모양이라 서요. 그래서 익는 대로 하나씩 하나씩 베어내다 보니 한 300평 되는 것을 일주일도 더 넘게 베고 있습니다그려. 날마다 시원할 때 한 시간 가량 골라서 베어 외발수레로 두어 번씩 비닐하우스로 나르는데 그걸 묶어세우면 열조배기정도 되는군요. 하우스 안에 비 안 맞게 말리는 중이니 털어낼 때만큼은 한꺼번에 할 수 있겠지요.

깨는 맨 밑에 달린 꼬투리가 한두 개씩 벌어질 때가 베는 적기입니다. 이걸 그냥 사나흘 더 놔두어도 벨 때 조금 살살 베기만 하면 괜찮아요. 그런데 그렇게 놔둘 수 없는 이유가 뭐냐면 원수 같은 비둘기 때문입니다. 어찌 그렇게 용케 알고 꼭 익은 꼬투리만 부리로 쪼아대는지 그대로 놔두면 깨 농사지어서 비둘기 아가리에 다 넣게 생겼어요. 그래서 날마다 베게 되는데 비둘기 이놈들이 하는 짓이 얼마나 얄미운지 이야기 좀 들어 보십시오.

이놈들은 처음 깨 밭으로 도둑질하러 들어올 때 절대로 옆의 산에서 바로 날아오는 법이 없습니다. 도둑이 대문 열고 버젓이 들어오지 않고 담을 넘듯이 이놈들도 밭둑을 타고 가만가만 기어들어 옵니다. 그러니 비둘기 날아오는 것 안 보인다고 태평스레 있다가는 다 도둑맞지요. 그래서 어떤 때는 한 시간에 한번 꼴로 순찰을 도는데 그럴 때마다 어느새 밭에 새까맣게 몰려들었는지 여기저기서 달아나는데 달아날 때는 하늘로 날아가요. 나 잡아봐-라 하고요. 속수무책 도둑놈들의 뒤꽁무니를 보고 있노라면 그놈들 날개소리가 꼭 용용 죽겠지 하는 것 같아서 아주 분통터져 죽을 지경입니다.

그래 돌멩이를 서너 개씩 손에 쥐고 저도 가만가만 숨어서 밭둑까지 가서 벼락 치듯 소리를 지르며 돌멩이를 던지곤 하는데 그것이 어디 도둑놈들의 깃털하나 뽑을 수 있겠습니까 더 약만 오르고 팔뚝이 빠졌는지 팔뚝만 아파서 나중에는 그 짓도 못하겠더군요. 참말로 소리 안 나는 총만 있으면 비둘기 우두머리를 한 마리 잡아서 본보기로 탕을 끓여먹고 싶은데 총은 없지요, 비둘기는 이제 즈들의 사돈네 팔촌까지 몰려들지요, 하여 독한 약이라도 한번 구해서 놔볼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것도 못할 짓이라 아서라, 내가 조금 덜 먹고 말지 하면서 견디는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비둘기가 덜 익은 꼬투리까지 쪼아대고 어떤 것은 대를 쓰러뜨려서 그걸 또 쪼는군요.

작년에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비닐하우스에 깨를 가득 세워 말리는 중인데 어느 날 보니 바람 통하라고 양 옆을 열어 놓은 곳으로 언 듯 비둘기 한 마리가 들어가는 것이 보이더군요. 며칠 전부터 그 근처에서 어정거리는 것은 보았어도 설마하니 그 뜨거운 속에까지 들어가 쪼으랴 싶었는데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몇날 며칠을 그 속에서 이미 오진 꼴을 보고 있던 것이지요. 그래서 옳다 됐다 이놈들, 천라지망 속으로 스스로 들어갔으니 혼 좀 나봐라, 뛰어가서 잽싸게 양쪽 문을 내려 버렸습니다. 그런 다음에 아들 녀석에게 부엌에서 쓰는 빗자루를 가져오라 해서 하우스 안에서 몇 바탕 몰고 다닌 끝에 비둘기 두 마리를 잡았습니다. 비둘기가 금슬이 좋다하니 아마도 틀림없이 그 두 도둑놈은 내외간이겠지요.

그래서 희희낙락, 그놈들을 우선 양파 망에 넣어서 체포현장에다 걸어두고 뭇 도둑놈들에게 경종을 울릴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낸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바로 당장 그 자리서 효수를 해서 도둑놈들의 길목에 목을 걸어두는 것, 또 하나는 비둘기 탕이 맛이 기막히다 하니 껍질을 벗겨서 살은 저미고 뼈는 좆아서 갖은 양념을 다해 탕을 끓여서 식구들끼리 둘러 앉아 배 두드리며 먹은 다음 벗겨 놓은 껍질은 박제를 만들어 그 또한 도둑놈들의 길목에 세워두는 것이었습니다.

이래도 저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대경대법인 것이어서 이는 이로 갚고 눈은 눈으로 갚는 이 방법은 도둑놈에게 결코 섭섭하게 대접한 게 아니겠지요. 그리고는 무슨 일인가로 동네에 내려가서 술을 한잔 거하게 잡수고 집에 왔던 모양입디다.(저는 기억이 없으니 이렇게 말씀 드릴 수밖에요) 부엌에서 제 안식구가 들으니 제가 큰소리로 누군가를 마구, 한참동안을 나무라더란 겁니다. 그래서 대체 왜 누구한테 큰 소린구 하고 내다보니 제가 글쎄 비둘기 두 마리를 망에 담은채로 손에 들고 마치 사람에게 타이르고 나무라듯 “한번만 더 내손에 잡히면 그땐 용서하지 않는다”며 훈계하더란 거지요. 자 - 목 베고 껍질 벗길 놈을 훈계하겠습니까? 풀어줄 마음이 있으니 훈계 한 거지요.

비둘기 놈들, 제 은혜를 갚으려면 즈들이 자청해서라도 깨 밭의 파수를 서야 되고 산 안의 뭇 동류들에게 저저이 나의 선행을 알리고 다녀야 마땅할 텐데 지금 제 밭에서 하는 짓거리들을 보십시오. 분통 터뜨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그나저나 이거 원 무슨 대책이 있어야지 해가 갈수록 이런 유해 조수가 늘어나서 극성을 부려대니 참 갈수록 속이 많이 상합니다. 이것들 때문에 농사 못 짓겠다는 말이 빈 말이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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