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추석으로 농촌 들녘이 분주한 가운데 벼 수확도 강원도 철원에서 시작해 차츰 남하하고 있다. 벼 재배면적이 지난해에 견줘 2.6퍼센트 줄어든 77만8천여 헥타르라고 하지만 올해는 이렇다 할 태풍이나 여타 자연재해와 병충해가 없어 대풍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철원지역 농협과 강원도농업기술원 등에 따르면 올해는 기상이 양호해 평년작 이상의 벼 풍작이 예상된다. 출수기가 예년에 견줘 2, 3일 빠른 데다 벼 한 그루당 평균 낟알 수도 10퍼센트 가까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수확한 벼가 마당에 쌓이면서 농업인의 걱정도 쌓여만 가고 있다. 재고미가 창고마다 넘쳐나고 쌀값은 바닥을 기고 있는데 덜컥 수확기에 접어들었으니 쌀 풍년이 마냥 기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벼 수매 일선에 있는 농협들이 10퍼센트 이상 하락을 예상하며 수매가를 책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에서 첫 번째로 벼 수매가격을 정하는 철원 갈말농협이 작년의 80퍼센트 수준인 1킬로그램 1천240원으로 책정했다고 한다. 선지급금 개념으로 나중에 정산한다고는 하지만 자칫 쌀값이 반등하지 않으면 수매가는 회복하기 어렵다. 쌀값 하락 때문에 풍작을 반기지도 못하는 농업인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문제는 풍작과 공급과잉, 소비부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바꿔 말하면, 쌀 문제를 시장자율에만 맡길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밥쌀을 포함해 해마다 40만 톤 이상을 수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쌀 대란은 상시적인 현상이 됐고, 정부가 적극 개입해 풀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수입쌀 비중이 국내 쌀 전체생산량의 10퍼센트가 넘으니 시장가격을 좌우하기에 충분하다. 결국 정부가 구조화된 국내 쌀 대란의 원인을 세계무역기구 규정이든 양자, 다자 협정이든 외부요인에 있다고 둘러대는 것도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식용이든 가공용이든 재고를 소진하지 못한 상태에서 돈 들여 격리만 한다고 시장이 안정을 찾아가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이치다.

쌀 전업농들이 지난 1일 회견을 열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모든 쌀 수입의 중단을 주장하는 한편 재고미 긴급처분, 쌀 100만 톤 조기수매 등 정부의 종합대책을 요구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쌀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정부에 뭘 더 바라겠나마는, 이번에도 늑장부리거나 수수방관할 경우 쌀 대란은 민란이 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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