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매년 겨울이 되면 봉사활동으로 강원도 지역신문에 빠지지 않고 실리는 이가 있다. 바로 한국여성농업인춘천시연합회장 조중란(55세) 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현재 강원도의 많은 여성단체들이 겨울만 되면 서로 뒤질세라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있는데 왜 유독 특별하게 조 회장만 더 많이 소개가 되는 걸까?



철 없던 새댁이 억척 농사꾼으로
춘천 토박이 조 씨는 농사꾼의 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별 어려움없이 자란 조 씨는 스무살이 되던 해에 작은 아버지의 소개로 남편 배임삼(57세) 씨를 만나게 됐다.

“첫 눈에 반했다거나 보자마자 이 사람이다 이런 생각을 한 것 아니었지만 선한 인상에 성실한 모습을 보니 믿음이 가더라구요.”
그렇게 1974년 조 씨는 21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됐다.

철 없는 어린 신부 였던 조 씨는 시집오자마자 당시 14살인 시누이를 보살펴야했다.
조 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어려움 없이 자라 내가 생각해도 철이 없었는데 시누이를 거의 키우다시피하면서 그제서야 조금씩 철이 들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처음 시집 올 당시 시댁에서 가지, 토마토 등 원예채소를 재배하고 있었고, 송아지 한 마리, 암소 한 마리, 밭 갈이 용 황소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조 씨는 농사일에 뛰어들어 축산으로 업종을 바꾸고 육우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내가 이걸 할 수 있나 고민도 됐는데 한 마리 한 마리 늘어가는 소들을 보니 힘이 절로 나더라구요.”
육우를 키우며 축산에 자신이 붙은 조 씨는 10년 전 암소(번식우)를 키우기 시작하며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육우와는 달리 번식우는 배란과 수정을 직접 사람 손으로 진행해야하니 까다로워요. 다른 농업도 여자 손이 많이 가지만 번식우 사육은 특히 더 섬세한 여자 손길이 많이 필요한 분야죠.”

이렇게 조 씨의 손을 거쳐 3마리 뿐이던 소가 현재 100마리 넘게 불어났다. 작년 한 해만해도 35마리의 송아지가 태어났다.

통 큰 회장 덕에 단체도 활성화
어느정도 집안 농사가 자리를 잡아가자 조 씨는 사회활동에 눈을 돌리게 됐다.
그렇게 해서 가입하게 된 단체는 바로 ‘한국여성농업인연합회’.

조 씨는 가입한지 2년만에 춘천시 신동면의 회장직을 맡게 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는 여성농업인 단체에 대한 활동비 지원이 거의 되지 않을 때였다. 그러다 보니 매년 걷는 6만원의 회비를 활동비로 모두 사용해 기금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떤 단체든, 모임이든 어느 정도의 금적적인 여유가 있어야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데 기금조성이 여의치 않다보니 매번 행사때마다 회원들에게 부담을 줄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조 씨는 본인 임기안에 기금을 조성하기로 결심했다.

행사때마다 집에서 직접 도시락을 싸거나 음식을 준비해서 식비를 절약했고, 그렇게 절약한 돈을 기금으로 조성했다. 그렇게 조 씨의 임기 4년간 식비를 절약해 조성한 기금은 ‘1백만 원’이나 됐다.

“거의 제 사비를 털어서 마련한 기금이나 마찬가지지만 이렇게 재산이 조성되니 마음이 든든해지더라구요. 그제서야 어깨펴고 다음 회장에게 임기를 넘길 수 있겠더라구요.”

4년간의 신동면 회장을 맡으면서 특유의 뚝심과 리더십을 인정받아 춘천시연합회장을 맡게됐다.
“면 회장 재임때는 기금 조성을 목표로 열심히 뛰었으니 춘천시연합회장을 하면서도 한 가지 목표를 정해서 활동하자고 결심했어요.”

그래서 정한 목표가 회원 수 확보다. 당시 춘천시연합회에는 신북면, 동산면, 신동면 등 세 개 면만 가입돼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면 마다 돌아다니면서 회원 확보를 위해 홍보를 시작했고 그 결과 사북, 서면, 동래, 동면을 가입시켜 회원 수 100명 확보라는 쾌거를 거뒀다.

또 회원 수 100명을 확보하면서 당시 개별 단체에 불과했던 한여농을 여성단체협의회(이하 여협)에 가입시켜 큰 행사와 각종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됐다.
조 씨는 4년만에 여성농업인춘천시연합회를 명실상부 강원도를 대표하는 여성단체로 만들었다.

“몸이 부서져도 마음은 행복”

조 씨는 단체장을 맡으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그러다 3년 전 어느날, 집에 있는 빈터에 농작물을 심어 기부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그냥 농작물을 주는 것보다 음식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미치게 됐고 회원들과 상의해 매년 김장을 담그기로 결정했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조 씨는 유일한 본인 소유의 재산이라고 자랑하는 밭에 배추 1천여포기를 심었다.
그렇게 수확된 1천여포기의 배추는 집 공터에 있는 하우스를 개조한 작업장에서 회원 60여명이 이틀간 동원돼 맛있는 김장 김치로 재탄생됐다.

“배추를 수확해서 다듬는 일은 저와 딸이 꼬박 하루 걸려 하는 대작업이예요. 힘들텐데도 엄마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열심히 도와주는 딸을 보면 요즘 아이들 같지 않아 대견하기 그지 없어요.”
천포기 김장담그기는 배추 수확과 다듬는데 하루, 배추 절이는데 하루, 양념 만들어 속 넣는데 이틀해서 총 4일이나 걸리는 대작업이었다.

조 씨는 김장 담그는 일만도 힘들텐데 본인의 의견에 군말 않고 따라주는 회원들이 너무 고마워서 밤새 회원들을 위한 식사까지 준비한다. 돼지고기를 삶고, 직접 한 말도 넘는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고, 순두부찌개 한 솥을 끓이고 나면 조 씨는 이미 녹초가 되지만 열심히 일하는 회원들을 보며 다시 힘을 내게 된단다.

“올해는 김장 담그는 날 비까지 내려 유난히 힘든 작업이었어요. 덕분에 몸살이 심하게 걸려 보름간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만 있었죠.”
이렇게 고생하다보면 봉사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어지기도 할텐데.

“당연히 그런 마음이 들죠. 이번에도 앓아 누워 있으면서 이제 더는 못하겠다. 올해가 마지막인가보다 하고 체념하고 있는데 김치를 받아보신 한 할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더라구요. ‘내가 또 언제 이렇게 맛있는 김치를 먹어보겠냐’며 ‘머리카락으로 신이라도 삼아 보답하고 싶다’고 우는 할머니를 보며 몸이 싹 낳는것 같았어요. 뿌듯한 마음에 내 몸이 부서져나가는 것같이 아파도 행복하기만 하더라구요.”

이제는 봉사가 내 천직

이제 김장 봉사는 연례 행사가 됐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 지 모르지만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하고 싶다는 조 씨는 이제 올해로 한여농춘천시연합회장 임기가 끝나게 된다. 회장 임기가 끝나면 봉사활동이 조금 줄지 않을까?
“올해까지 열심히 한여농에서 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내년부터는 여협의 일반회원으로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개인적으로도 봉사활동을 계속 진행할 계획이예요.”

조 씨는 작년부터 여협에서 진행하는 ‘쓰레기 20% 감량 캠페인’에 참여 중이다. 매월 15일 홍보물을 나눠주고 분리수거 봉사활동을 실시하고 있다. 조 씨가 참여한 이 캠페인 덕에 춘천시의 쓰레기 양이 50%나 줄어드는 성과를 얻었다.

또 조 씨는 개인적으로 미혼모 보호 시설인 ‘요셉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엄마가 키우지 못하는 아이들을 끝까지 보살펴 주지 못한 것이 너무도 미안하고 죄스러울 뿐이예요.”

아이들을 생각하면 두고두고 마음이 아파 조 씨는 직접 춘천시장을 방문해 아이들에 대한 복지를 약속받았다. 그러면서 본인도 그곳에 한구좌씩 매달 성금을 내고 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조 씨는 계속해서 배추를 재배해 김장봉사에 제공하고자 한다.
“배추는 가장 더울 때 심고, 가장 추울 때 수확하는 작목이예요.”
소 1백여마리를 키우고 소를 위한 사료용 옥수수를 16,525㎡(5천평)도 재배하면서 배추 1천여포기를 재배하기란 정말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와중에 틈틈이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도 더 할게 없나 살피는 조 씨.
“제가 봉사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남편과 딸, 그리고 묵묵히 따라주는 회원들께 고마운 마음 뿐이예요. 저야 이렇게 안 아프고 건강하게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죠.”
베풀면서도 세상에 한 없이 감사하다는 ‘춘천의 날개 없는 천사’ 조 씨는 오는 30일에는 태안으로 봉사활동을 갈 계획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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