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경기방송 노광준 PD (전 KBS 1 TV `농업도 경영이다` 구성작가


서울대에서 대학원까지 마치고 대기업 연구소 대신 비료회사 연구소를 택한 후배가 있었다.
친환경 비료개발 연구를 통해 농민도 좋고 소비자도 좋고 땅에게도 덜 스트레스를 주고 싶다는 후배였다. 그런 후배가 어느날 시험포장에서 밭작물을 관리하고 있을 때, 이를 지켜보던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 지금처럼 공부안하면 나중에 저 아저씨처럼 된다.”

농업으로도 성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자신이 청계천 빈민으로 시작해 성공한 것처럼 농민도 농사지어 성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후보가 당선된 지 한 달만에 47년 간 농업만 연구해온 정부기관 연구소를 통째로 퇴출 전환시킨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당신 같으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대통령 당선인을 비롯한 인수위 농업정책 관계자에게 진지하게 묻고 싶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농민들이 연구없이도 성공할 수 있는가? 라고 말이다. 농업이라는 분야는 2천여명의 농업연구자와 지도직 공무원을 모두 퇴출 전환시키고도 농민이 성공할 만큼 만만한 분야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침대만 과학이 아니다. 농업은 과학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죽 그래왔다. 농업은 변화무쌍한 자연과 조화를 이뤄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 그리고 재투입을 해야 하는 섬세한 생명과학이다. 그러하기에 조선시대 장영실은 측우기를 발명했고 독일의 농학자 리비히는 비료와 작물생리에 대한 응용연구로 근대화학의 빗장을 열어젖혔다.

우리 사회 50대 이상 어르신들이 그 옛날 허리가 끊어질 만큼 고통스러우면서도 감내해야했던 ‘손모내기’로부터 해방시켜준 것이 현대 농업과학이었고, 70년대 통일벼로부터 80년대 비닐온실, 90년대 고품질 농업경쟁력 기술로 이어온 것이 바로 농업과학이었다.

그런데 그런 연구를 현장과 실험실을 오가며 묵묵히 해온 2천여명의 과학인력이 새 정부 들어 ‘철밥통에 퇴출대상’이 되어 피눈물을 삼켜야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퇴출이 아니라 민간이양이라고, 정부 출연기관으로의 전환이라고 주장한다면 또 한가지 묻고 싶다. 그렇게 좋은 게 정부출연기관 전환이라면 왜 18개 청 가운데 유독 농촌진흥청만 전환시키는가? 어떻게 해서 공무원 삭감인력의 44%, 신분전환 공무원의 무려 75%를 농림수산분야 연구인력이 채우고 있어야 하는가?

농촌진흥청은 단순한 연구조직이 아니다. 다른 분야 과학자들이라면 실험실에서 수립된 연구기술을 논문으로 발표하고 특허로 남기는 것만으로도 수고했다 칭찬받을 터이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반드시 이 기술을 현장에 있는 농업인들에게 넘겨주고 그 분들이 이를 통해 실질적인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줘야만 ‘그나마 본전치기’를 할 수 있는 국가 기술지도 조직이다. 이것이 일본을 제외한 다른 OECD 선진국들이 모두 농업연구 및 지도기능을 정부산하에 두고 있는 이유이다. 정부출연기관이 된 일본의 농업연구자들이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철밥통의 저항’이 아니라 ‘농업연구 및 지도기능 축소에 대한 분노 섞인 우려’이다. 진정 농민을 성공시키는 새 정부라면 응당 국가가 어떻게 해야 농민을 도와줄 수 있을지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농림수산분야 연구인력에 대한 전환계획을 반드시 원점으로부터 재검토할 것을 촉구한다.

최소한 “너 재수삼수를 해서라도 의대 아니면 법대가라. 괜히 농민 위한답시고 농업연구하다가 저 꼴 나지 않니?” 라는 말은 없어야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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