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상 근
전국육계사육농가협의회 회장


닭고기산업은 불과 30여년전 닭을 기르던 농가들이 야반도주하는 일이 빈번할 정도로 영세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 무렵 미국식 ‘계열화사업’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국내 닭고기 산업은 눈부신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지나치게 급한 성장 이면에는 헌신적인 농가들의 희생이 필연적이었다. 억울해도 억울하다고 말 한마디 못하는 그런 희생을 감수해 왔던 것이다. 단언컨대 이러한 사육농가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현재의 닭고기산업은 기약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냥 희생을 감수하던 농가들이 어느 순간부터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 10여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똑같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출발한 계열주체들은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반면 농가들은 빈곤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이다. 마냥 참는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된 농가들이 다양한 의견을 쏟기 시작했다.

필자는 2004년 무렵 국내 최대 닭고기회사인 H사의 위탁농가로써 농가들의 불만을 귀담아 듣다보니 문뜩 회사와 농가간 대화 채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농가협의회 가 결성돼야 한다는 의지로 H사의 600여 위탁농가들을 설득했고 2005년 전국 최초로 농가협의회를 정식으로 출범시켰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회사는 회사대로, 농가는 농가대로 각자 주장만 외치는 통에 이렇다할 성과는 내지 못하고 평행선만 줄곧 달렸다. 대화와 토론이 낯선데다 회사가 여전히 ‘갑’이라는 현실에 농가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원인이 컸다.

특히 농가협의회가 계열회사들의 눈치를 살피며 적극적인 행동을 나서지 못하는 ‘어용’이라는 비난을 받아 왔던 것이 사실이다. 농가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보다는 개인 안위가 우선이었던 부끄러운 과거도 부정할 수 없다. 

10년이 지난 2015년 8월 전국육계사육농가협의회가 발족했다. 하림, 마니커, 동우, 참프레 등
9개 계열회사 농가협의회들이 한데 뭉친 것이다. 10년전과 현재 농가협의회의 차이점은 계열주체와 농가가 동등 입장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 농가와 회사 대표단이 머리를 맛대로 합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간다는 점이다.

일부 사육농가들 사이에서 농가협의회가 강성 노조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센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의 농가협의회는 어디까지나 ‘가교(架橋)’을 최우선을 두고 있다. 지난 과거 농가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아스팔트 농사도 마다하지 않던 그런 행보에서 벗어나 대화와 토론을 통해 실리를 추구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키로 했던 무항생제 축산물 인증기준 강화를 골자로 하는 ‘친환경농축산물 및 유기식품 등 인증에 관한 세부실시요령’ 고시 일부개정(안)도 농가협의회가 정부를 상대로 쉼없는 대화를 통해 농가의견이 최대한 반영되는 성과를 냈다. 

수천명 농가들을 불러 모아 집회를 통해 요구사항 관철을 추진하던 과거에서 탈피하고 대화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농가들의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이다.

이제는 계열주체들도 농가협의회를 상생·공생 존재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화 채널에 참여할 정도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농가들의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계열주체들과 진솔한 대화와 협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 내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대화와 토론을 고수해 나갈 것이다.

지난 1년여간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야할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당장 강제 환우 금지, 계열업체 부도 시 사육농가 보호대책, 무허가 축사 등 현안이 산적하다.

육계산업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각종 현안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보다는 업계의 중지를 모아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큰 성과, 큰 열매만을 기대하며 활동하는 우자(愚者) 보다는 작은 것부터 실행해 성과를 내는 현자(賢者)가 될 수 있도록 농가협의회를 잘 이끌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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