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백색혁명’달성 먹을거리 해결
‘바이오혁명’으로 제2 농업혁명에 도전


우리나라 농업정책과 농촌사회의 변화 양상은 우리 역사의 질곡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WTO/DDA 협상이나 한미FTA협상을 비롯한 세계 각국과의 FTA협상이 추진되고 있어 우리 농업·농촌은 또 한차례 큰 전환기에 처해 있다. 이러한 때 한 달여 남짓 남은 새정부의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우리 농업발전의 큰 축을 담당해 온 농촌진흥청의 폐지 방침이 발표돼 큰 파장이 일고 있다. 농업계의 시각은 “농진청 폐지는 정부의 농업·농촌·농업인 포기 정책”이라는 것. 과거 1906년에 설치된 ‘권업모범장’을 효시로 보고 있는 농촌진흥청이 그동안 한국 근현대 농업 연구와 농업기술을 이끌어오면서 이뤄낸 지난 100년의 성과와 앞으로의 비전을 알아본다.[편집자 주]




‘녹색혁명’으로 ‘보릿고개’ 넘어

이 땅에 농업연구가 시작된 것은 200여년 전인 1799년부터 시작됐다. 조선 정조대왕이 수원에 인공저수지인 ‘서호’를 축성하고 논밭을 만들어 국영시범농장 ‘서둔’을 운영한 것을 근대농업연구의 효시로 보고 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은 1906년 4월 일본통감부가 수원에 지은 ‘권업모범장’을 설립한 것을 우리 농업의 근현대화를 위한 본격적인 농업연구로 평가한다. 권업모범장 이후 농사시험장, 농업기술원, 농사원을 거쳐 1962년 4월에 농촌진흥청이 공식 발족됐다.
‘권업모범장’은 벼·누에·가축·원예 등 당시 농가의 주된 생산품목을 총괄하고, 토지개량을 담당했다. 농진청은 이를 이전까지 경험에 의한 농업이 과학화된 농업으로 전환된 계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제의 군수식량과 물자조달을 위해 일본의 농업기술과 식량작물 품종을 가져와 접목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군수식량 조달을 위한 쌀을 증산하는 계기가 됐는데, 10a당 114kg에 불과했던 우리나라 재래종 품종 대신 일본 벼품종을 도입해 164kg까지 끌어올렸다.
1945년 해방 후 전 국가적으로 주곡자급과 식량안보라는 기치아래 배고픔에서 해방되기 위한 몸부림을 시작했다.
1962년 발족한 농촌진흥청은 ‘5000년 묵은 농사, 5개년에 탈피하자’는 캐치프레이즈를 시작으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다수확 쌀품종 개발에 주력했다. 주로 도입육종에 의존하던 품종육성 체계를 탈피해 ‘교배육종’ 개발에 매진한 결과, 1971년 농진청 설립 10년만에 ‘통일벼’(IR-667)라는 다수확 품종을 개발했다. 1975년 통일벼의 단점을 보완해 가며 농가보급에 주력, 비로소 쌀 자급을 이뤄냈으며 1977년에는 수출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배고픔의 대명사인 ‘보릿고개’를 해결해 낸 ‘녹색혁명’을 이룩한 것이다.

풍요로운 식탁 ‘백색혁명’ 주도

80년대 이후 농촌진흥청은 ‘풍요로운 복지농촌건설’을 슬로건으로 풍성한 식탁과 다양한 먹거리 생산을 위해 농업기술의 기계화, 자동화 연구에 주력했다.
그 결과 농진청은 세계적인 육종기술을 바탕으로 자급 달성을 이룩한 통일벼에 이어 최근에는 세계 최고의 밥맛을 자랑하는 최고품질의 ‘운광, 고품, 삼광벼’ 등 수십 여종의 벼 품종을 개발했다. 생산성도 90년대에 비해 16%나 향상시켜 나갔다. 특히 다이어트용 ‘고아미 2호’ 등 기능성 벼 품종을 개발,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시켜나가는 대목도 돋보인다. 또한 이앙에서 수확·가공까지의 생력기계화기술을 개발·보급해 농작업 시간을 과거보다 53%나 단축시키는 등 식량의 안정생산을 이룩했다.
특히 농진청은 주곡뿐 아니라 원예작물의 품종육성과 재배기술을 개발해 겨울에 상추(쌈)가 식탁에 올라오는 한국 농정사상 가장 획기적인 혁명, 이른바 비닐하우스의 기적 ‘백색혁명’을 일궈냈다.
백색혁명의 근간이 된 우리나라 비닐하우스 원예는 정부의 꾸준한 시설현대화 사업추진과 그에 맞는 각종 기술연구와 산업체 육성 등을 통해 오늘날 농산물 수출의 원동력이 됐고, 시설원예 선진국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농업부가가치 창출

농진청은 최근 개발된 고품질 ‘홍로’ 사과 품종이 과실품질 향상에 따른 시장가격 상승으로 927억원의 조수입 증가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국민 생활수준의 향상과 함께 각광받는 화훼산업에 있어서도 세계 선인장 시장의 70%를 우리나라 품종이 점유토록 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장미·카네이션 분야에서도 우수한 18작목 209개의 우리 품종을 개발해 최근 수출작목의 확대를 주도해가고 있다.

또 농진청은 우리 국민의 체력 향상에 크게 기여한 육류소비의 대중화를 이루는 초석을 닦았다. 축산 신기술 개발에 의한 고기생산량 증가와 HACCP 지침수립 등 안전한 축산물 생산을 가능케 했고, 최근에는 생명공학과 결합한 조혈촉진제 및 혈전증치료제 생산 돼지를 개발해 우리 농업의 새로운 장르 개척과 선진화에 앞장서고 있다.

한때 우리나라 근대화에 일조한 바 있는 양잠도 누에분말 혈당강하제, 천연강정제 누에그라, 실크단백질 바이오 신소재개발 등 ‘입는 누에’에서 ‘먹는 누에’로 발전, 농업의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한 노력도 계속하고 있다.

농진청은 최근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구명하고 그 기능을 향상시키는 농업환경개선 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친환경 병해충 및 잡초방제를 위한 생물적 방제기술을 개발해 주곡인 벼와 우리나라 대표 과일인 사과 농사를 짓는데 있어 농약 사용량과 방제횟수를 약 50% 정도 줄여 나가고 있다.

특히 21세기 생명산업을 주도할 농업생명공학기술의 기초기반을 구축해 벼와 벼흰잎마름병원균 유전체 해독을 완료했고, 배추, 돼지 등의 유전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이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강국으로 앞서 나가고 있다.
더불어 미래의 생명공학 원천기술 확보와 유전자원의 체계적 관리를 위한 종자은행 운영 등 생명공학 세계 5대 강국 진입을 목표로 ‘바이오그린21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한편 농진청은 그동안 추진한 연구사업 성과를 품목별로 가치평가한 결과 67조원에 달하는 기술개발 효과를 거두었다고 밝혔다. 농진청에 따르면 분야별로 식량작물은 32조5천억원, 원예작물은 20조5천억원, 축산은 9조2천억원, 양잠 등 기타에서 4조8천억원의 가치를 창출했다.


농업인과 함께 ‘농업기술’ 보급

우리 농업에 있어 녹색혁명과 백색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농업연구 결과를 농업현장에 그대로 접목해냈던 농촌지도사업의 업적이라 할 것이다. 물론 그 업적에는 농촌진흥청을 비롯한 각 시·도 농업기술원, 시·군 농업기술센터의 농촌지도 공무원, 그리고 지도사업을 묵묵히 따랐던 농업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의 농촌지도사업은 1962년 농촌진흥청의 발족과 함께 시작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정부의 주도로 이뤄진 두 차례의 ‘농업혁명’으로 국가경제와 국민생활 향상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한 성과를 거둔 농촌지도사업 사례로 평가받은 바 있다.

현재 6천여명의 농촌지도직이 350만 농업인과 함께 제3의 농업혁명을 일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촌지도직의 지방화와 함께 농촌지도사업이 다소 침체돼 있는 게 현실이지만 그들의 협력관계는 향후 우리농업의 경쟁력 향상과 도시·농촌의 균형 발전은 물론 농업인의 삶의 질 향상 등에 있어 대단히 큰 성과를 이뤄낼 것으로 기대된다.

그 일례로 최근 몇 년간 큰 반향을 일으켰던 ‘탑라이스’, ‘탑프루트’ 등 사업성과로 ‘탑’은 곧 ‘고품질’이라는 공식과 함께 고품질농산물 생산기술 확립·보급을 현장의 농업인과 함께 일궈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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