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용 철
국립식량과학원 남부작물부장



우리나라 농경지는 논과 밭으로 구분된다. 전통적으로 논은 벼를 심었고, 밭은 콩, 참깨, 옥수수 등 밭작물을 재배한다. 쌀을 주곡으로 했던 영향으로 우리나라 논 면적은 1980년대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늘어났다. 1988년에 역대 최대면적인 136만ha까지 늘어나 논 경지비율은 64%에 달했다. 이후 논 면적은 지속적으로 줄어 지난해 역대 가장 작은 91만ha로 줄었다. 20년이 채 되기도 전에 서울 면적의 7.5배 논이 사라진 것이다. 신도시나 산업단지 개발로 대규모 논이 택지나 공장으로 전용된 것이 주요인이다.
상대적으로 밭 재배면적은 2015년 77만ha로 10년 전보다 7.5% 늘어났다.

전체 경지 중 밭 비율도 조금씩 늘어나 46%로 역대 가장 높다. 쌀값하락으로 논벼 재배를 포기하는 사례가 늘고, 수익성이 높은 밭작물 재배로 전환하는 농가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현재 농식품부는 쌀 소비 감소로 인한 공급과잉을 해소하기 위해 2020년까지 벼 재배면적을 지금보다 9만8천ha 줄인 70만ha로 축소할 계획이다. 아울러 올해 7월에는 자급률이 매우 낮은 밭작물 식량자급률을 현재 10.6%에서 2020년까지 15.2%로 높이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논에 밭작물 재배면적은 확대될 것으로 예측된다.

밭은 물이 고여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작물이 생육하는 경작지다. 따라서 밭작물을 논에 재배할 때 가장 큰 문제는 습해가 발생하기 쉽다는 것이다. 물 빠짐이 좋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여름철 강우는 평탄지 논에서는 장시간 물이 고여 있을 수밖에 없는 특성이 있다.

특히 장마기간에는 2~3주간 계속 비가 내려 그 기간 동안 습해를 피하기 어렵다. 두둑을 높게 만들어 물기가 잘 빠지도록 해야 하지만, 작업이 쉽지 않고 형성된 두둑도 무너져 내려 앉는 경우가 많아 벼농사에 비해 관리 노력도 많이 든다.

이런 불리한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논의 대표적인 장점은 기계화 작업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현재 벼농사 기계화율은 97.8%로 매우 높은데, 1960년대부터 시행된 경지정리사업으로 대부분의 논이 구획화·규모화 되어 이앙, 수확 등 기계 작업이 용이하게 되어 있다. 반면 밭농업 기계화률은 56.3%로 낮다. 2015년까지 밭기반 정비 사업이 완료된 면적은 11만ha로 전체 밭 면적의 14% 수준으로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현재 논에 벼 재배를 포기하는 농가는 늘고, 밭에서 기계화 작업이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앞으로 기계작업이 용이한 논에서 밭작물 재배 확대는 필연적이다. 밭작물을 논에 재배하여 성공한 사례는 우리나라 최대 평야지인 전북 김제의 죽산 콩영농조합법인에서 찾을 수 있다.

 벼농사를 짓던 농업인들이 2011년부터 논콩 재배를 시작하여 현재 58농가가 조합을 구성하고 250ha 규모로 재배면적을 확대하고 있다. 콩 논 재배 전과정을 기계화하여 노동력을 일반농가보다 91% 줄였고, 평균단수(1,000㎡당 수량)가 300kg을 넘어 전국 평균보다 1.6배 정도 높다. 조합에 가입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논에 밭작물 재배 확대를 촉진하기 위해 기술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최근 농촌진흥청 핵심사업으로 추진하는 Top5 융복합 프로젝트에는 ‘밭농업기계화’가 포함되어 있다. 각 분야 전문가가 융복합 연구팀을 구성하여 현안 문제인 밭농업기계화를 촉진하여 국내 밭 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밭농업기계화를 직접적으로 촉진하는 품종, 재배기술 및 농기계 개발뿐만 아니라, 논에 밭작물 재배 확대를 위한 기반기술로 논 지하수위 자동조절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이 기술은 논 지하에 급배수관을 매설하고 ICT기술을 접목하여 자동 물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다. 습해와 가뭄 피해가 없는 전천후 논 토양 관리기술로 밭작물을 논에 재배하고자 하는 것이다. 논의 생산기반을 그대로 유지하여 필요시 벼농사도 가능한 기술이다. 향후 논 이용을 다양화하기 위해 많은 예산이 소요되겠지만, 논 지하수위 자동조절시스템 개발과 보급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시점이다. 논과 밭 구분 없이 농사짓는 날이 멀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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