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곧 현실이 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지는 예쁜 전원주택. 그런데 마당에 있는 미끄럼틀과 트램플린을 보니 심상치가 않다. 아이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이곳은 ‘청주여성농업인센터’다. 간판만 없으면 예쁜 가정집으로만 생각할 만한 곳에 청주여성농업인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 청주여성농업인센터는 예쁜 전경 뿐만 아니라 “생각이 곧 현실이 된다”고 주장하는 만능 소장이 운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어떤 생각들이 현실로 이뤄졌을까?


“기왕 맡은거 화끈하게 운영해보자”

서울에 살면서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각종 문화교양 강의를 진행하던 김미희 소장은 1990년 7월 4일 청주로 내려왔다. 귀농을 해서 농사를 지으며 농업기술센터에서 천연염색, 한지공예강사를 하던 김 씨는 청주여성농업인센터를 운영해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됐다.
“처음에 아이도 어리고 농사도 지어야하고 강의도 진행해야해서 도저히 시간이 날 것같지 않아 거절했었어요.”
김 씨는 우선 거절은 했지만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집은 평생 한번밖에 짓지 못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신경을 많이 써 집을 지었어요. 5월경에는 집이 너무 예뻐 집을 구경하러 오시는 분이 있을 정도예요. 그래서 늘 남편과 함께 우리끼리만 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을 했었죠.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마당도 넓겠다 집에서 직접 운영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구요.”
이렇게 해서 김 씨의 첫 번째 생각이 현실로 이뤄졌다. 김 씨는 남편을 설득해 남편과 함께 집에 ‘충주여성농업인센터’를 차리게 됐다. 마당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있고, 김 씨 부부의 밭에서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들이 텃밭을 가꾸며, 1층에서 센터를 운영하고 2층에서는 소장네 가족들이 생각하는 김 씨가 생각하던 그대로 청주여성농업인센터가 탄생했다.
센터만 개소했다고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김 소장이 짓고 있는 농사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 김 씨가 따로 강의 나가서 번 돈을 생활비에 보태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돈이 안되는 복지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니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또다시 김 씨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 하나.
“어짜피 센터에는 운전기사가 한명 있어야 하니 남편이 그 역할을 맡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부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일까란 생각이 들었죠. 거기다 남편이 직원이 된다면 운전 이외에도 많은 일들을 도와줄 수 있을꺼란 기대도 있었죠. 실제로도 남편은 기사일 외에도 텃밭관리, 관광객관리, 어린이집 안팍 관리 등을 맡고 있어요. 일반 운전기사를 고용하면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역시 김 씨의 생각은 현실이 됐다. 논과 축사를 정리하고 남편은 본격적으로 센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얼떨결에 맡긴 했지만 이왕 맡은거 화끈하게 한번 시작해보자고 다짐했죠”

끊임없는 노력과 도전

모든 여성농업인센터는 어린이집을 필수로 운영해야하기 때문에 1급 시설장이 있어야 하지만 청주여성농업인센터는 따로 시설장을 고용하지 않았다. 김 소장이 시설장 1급 자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김 소장은 상담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6년째 전문적인 상담교육도 받고 있다.
이미 센터 운영 전부터 ‘사랑의 전화’에서 체계적인 상담교육을 받고 ‘한마음 상담 카운슬링’에서 상담 경력을 쌓았던 김 소장이지만 센터를 운영하면서 전문 상담사 못지 않은 상담업무 운영을 위해 끊임없이 교육을 받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청주 흥사단에 등록돼있는 풍경소리라는 상담기관에서 전문적인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김 소장은 전직을 살려 센터내에 활발한 부정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천연염색과 한지공예, 규방공예, 전통공예 등 요즘 여성농업인들에게 인기있는 강좌는 모두 섭렵하고 있는 김 소장 덕에 청주여성농업인센터를 이용하는 여성농업인들은 모든 강좌를 한 곳에서 접할 수 있게 됐다.
점점 센터에서 운영하는 문화강좌가 입소문을 더해 인기가 높아져 여성농업인들의 요구사항도 다양해졌다. 이런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김 소장 역시 계속해서 여러 가지 교육을 받고 있고 5년 전에는 새롭게 천연아로마테라피도 배워 강의를 시작했다.
덕분에 청주여성농업인센터는 센터 대표자, 부정기사업 강사, 시설장, 상담사를 김 소장 한사람으로 충당할 수가 있게 됐다.
또 2005년에는 여성가족부에서 추진한 어린이집 평가인증도 받았다.
“농촌의 저소득계층 아이들과 조손가정의 아이들이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맘에 안들어도 어쩔 수 없이 이용하는 농촌보육시설이 아닌 농촌에서 운영 하지만 국가 인증까지 받은 곳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여성농업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만능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

김 씨는 본인의 업적이 이것으론 부족한 모양이다.
“여성농업인센터를 운영하면서 저 스스로 복지분야에 정말 아는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됐어요. 그러다보니 저도 힘들지만 직원들까지 힘들게 하는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 전문적으로 복지분야를 공부해보기로 결심했죠.”
김 씨는 건국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아동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평생교육기관에서 전문적인 상담 교육을 받고 있다. 또 충청대학교에서 노인복지학을 전공해 오는 2월에 졸업할 예정이다.
김 소장이 자칭·타칭 ‘만능엔터테이너’가 되야만하는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센터의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인건비 절감을 위해서라도 만능이 될 수밖에 없어요. 월급시설장 고용할 돈이면 양질의 부정기 사업 몇 개를 더 추진할 수가 있으니 차라리 조금 노력해 시설장 자격을 취득하게 되고 , 부정기 사업을 위한 강사료, 상담사 등의 비용을 아끼면 많은 여성농업인 교육과 아이들을 위한 양질의 공부방 선생님들을 더 고용할 수가 있기 때문에 직접 교육을 진행 할 수밖에 없어요. 예산을 아낀다는 이유로 여성농업인들에게 질 낮은 수업을 진행할 순 없잖아요. 그 생각에 하나라도 더 배워 좋은 교육을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덕분에 15개 마을 300명의 회원들이 매일 수업하면 안되겠냐고 볼맨 소리를 해대 김 씨의 몸이 10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다.

여성농업인센터를 바라보는 시선들

외부의 많은 사람들이 여성농업인센터 사업과 농업기술센터 사업이 중복된다고 생각한다. 또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실시하는 교육보다 더 좋은 교육을 농업기술센터를 포함한 농협, 주부대학 등에서 실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실상 농촌에 내려와 보면 그런 교육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다.
“농촌지역의 경우 문화혜택의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두드러져요. 마을마다 찾아다니면서 교육을 진행하다보면 멀리 떨어진 외지 마을의 경우와 기동성 없는 여성농업인들은 이런 교육을 평생 처음 받아본다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여성농업인센터에서 교육을 받는 회원들은 생활개선회원도 여성농업인회원도 아닌 일반 대다수의 여성농업인들이다. 그렇게 때문에 농업기술센터의 업무와 겹칠래야 겹칠수가 없다.
“그 뿐만이 아니라 센터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다보니 수익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나 한가지만 예를 들어, 난방비의 경우 1년에 350만 원~400만 원정도가 나오는데 센터의 경상운영비 중 난방비로 지출되는 금액은 150만 원 내외예요. 이 계산만 해봐도 1년에 자부담으로 지출되는 비용이 어느 정도 될지 짐작이 되시나요?”
김 소장은 더 많은 예산 지원, 더 많은 관심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봉사하는 마음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으나 그 조차도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잘하는 점이 있으면 칭찬해주고 못하는 점이 있으면 잘될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 뿐이다.

과로도 말리지 못한 열정

김 씨는 얼마전까지 특별 감사를 받느라 의사의 경고를 받을 정도로 과로에 시달렸었다.
“워낙에 과천정부청사에서 가장 가까운 센터라 관심을 많이 받는 편이예요. 거기다 이번엔 좀 까다롭게 감사가 진행돼 애 먹었어요.”
이보다 더 잘 운영될 수 있을까 싶은데 어떤 문제였을까?
“첫째는 부부가 운영한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그러나 앞에 말한대로 남편이 같이 하지 않으면 운영이 불가능 하기 때문에 조목조목 설명했죠. 그랬더니 수긍하더라구요. 두 번째 문제는 청주여성농업인센터가 전국에 몇 안되는 자가시설이라는 점이었어요. 지적사항은 난방비를 비롯한 개인 생활비와 센터의 경상운영비를 혼용하는것 아니냐는 점이었죠. 그 점도 운영비와 자부담비 내역을 공개하자 조용해졌어요.”
그 외에도 어린이집의 이중지원문제, 차량 유지비 등 많은 사항이 지적됐으나 김 씨의 설명을 들은 감사들은 다들 입을 다물어야 했다.
“어찌나 특감 때문에 시달렸는지 의사 선생님께서 김 소장은 어디 정신병원 독실에 가둬놓고 치료를 하던지, 교도소에 넣던지 해야만 한다고 겁을 줄 정도였어요”라며 농담을 하며 웃었지만 아직도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청주여성농업인센터는 오는 3월 초에 천연염색 작업장을 개소한다. 여성농업인들 뿐만 아니라 도시의 가족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체험장이다.
그나마 평상시에도 주5일 근무의 개념이 없던 여성농업인센터이지만 천연염색 체험장 개장을 통해 그나마 간혹 있던 휴일마저 없어지게 생겼다.
생각만해도 한숨이 나올법한데 뭐가 좋은지 김 씨는 싱글벙글이다.
피곤해 죽겠다면서도 “이곳에서 가족들이 천연염색하면서 즐거운 하루를 보낼 것을 생각하니까 너무 기분 좋아요. 정말 근사하지 않아요?”라며 신나하는 김 씨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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