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분 2,700만수 넘어서…사상 최악 사태 기록


조류인플루엔자(AI) 기세가 꺾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전국에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 11일 전남 해남에서 시작된 AI는 서해안 중심으로 발생되기 시작해 중부 내륙에 이어 강원도까지 발생됐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구랍 27일 기준으로 AI로 살처분됐거나 예정인 가금류는 2,730만 마리에 이른다. 국내 전체 사육 가금류의 16%에 달한다.

단연 역대 최대 규모의 AI 사태이다. 이 중 알을 낳는 산란계의 경우 전체 사육 규모의 28%에 해당하는 1,964만 마리가 살처분됐다. 방역당국은 AI 차단을 위해 살처분과 이동중지(StandStill)명령, 소독 및 백신, 할당관세 등의 대책을 잇따라 내놓았지만 그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이를 두고 골든타임(Golden Time)을 놓쳤다는 지적과 지금이라도 철저한 대책수립과 이행을 통해 AI를 차단하는 게 시급하다는 상황론이 혼재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AI대책이 지금까지와 달리 구체적인 지침으로 강제성이 부여돼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지고 있다.


■ 뒷북 방역이  화 키웠다

H5N6형 AI가 제주도를 뺀 전국으로 확산한 가운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과거 우리나라에서 큰 피해를 냈던 H5N8형까지 발생하면서 정부는 말 그대로 ‘방역 총력전’에 나섰다.
그러나 AI 발생 초기 국정 공백 사태로 인한 늑장대응과 허술한 방역 대책으로 오히려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결국 예견된 인재(人災)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번 AI 사태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농식품부는 2016년 11월 16일 전남 해남 농가에서 최초 AI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보다 앞선 2016년 10월 28일 민간 대학 연구팀이 채취한 충남 천안 봉강천의 야생원앙 분변에서 H5N6형 고병원성 AI가 검출됐고 2016년 11월 11일 검역본부에서 최종 확진됐다.

그러나 AI와 관련해 범정부 차원의 관계장관회의가 처음 열린 것은 한달뒤인 12월 12일이다.
농가 최초 신고 이후 26일 만이고 봉강천 야생조류 확진 판정이 난 이후 무려 한 달 만이다. AI 위기경보는 바이러스가 사실상 전 지역에 확산한 이후인 16일에야 최고 단계인 ‘심각’으로 격상됐다.
지난 2014년 1월 전북 고창군에서 최초 AI 의심 신고가 접수된 지 이틀 만에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 주재로 8개 부처가 긴급관계장관회의가 열려 범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됐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또 올겨울 우리나라와 똑같이 H5N6형 AI가 발생한 일본의 경우만 보더라도 야생조류 분변에서 AI 바이러스가 검출되자마자 즉각 위기경보를 최고 단계로 격상하고 아베 총리가 직접 방역 상황을 챙겼다.
초기 대응의 차이는 피해 규모의 엄청난 격차로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한 달 만에 도살 처분된 가금류 마릿수가 2천만 마리를 넘어섰지만 일본은 100만 마리가 채 안 된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가금류 사육 환경이나 여건은 분명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피해 규모가 20배가량 나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결국 AI가 이미 퍼질 대로 퍼진 상황에서 정부가 ‘뒷북 정책’만 내놓고 있다는 비판은 당연한 것이다. 

■ 사상 최악 사태…앞으로가 더 위협

AI 확산이 계속되면서 AI로 인한 직간접피해가 조만간 1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지난 2014~2015년 당시 총 669일간 닭과 오리 1,937만 마리가 살처분됐고 보상금만 1,017억원 등 2,381억 원의 국가 재정이 지출됐다.

하지만 이번 AI로 살처분 마리수가 전체 가금류의 16%를 넘어서면서 구랍 26일까지 살처분 직접 보상금만 1,585억원에 이른다. 국내 전체 산란계가 6985만수(2015년 9월 현재)인 상황에서 내년 2월까지 AI 확산이 계속되면 살처분 규모가 5,000만수에 달할 수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역대 최고 속도의 조류 인플루엔자 확산과 경제적 피해’ 보고서에 따르면 AI 감염률이 20%를 기록할 경우 살처분, 생산감소, 생계소득안정 등 직접피해비용이 5,716억원으로 전망됐다.

이와 함께 육류, 육가공업 피해 3,709억원, 음식업 416억원 등 간접피해 4,130억원으로 직간접피해비용이 9,846억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됐다. 이미 살처분 규모가 전체의 16%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만약 20%에 도달하면 직간접피해가 1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AI 감염이 30%에 달할 경우 기회손실 규모는 최대 1조 4,92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 현장에서 뛸 방역인력이 없다

정부가 방역의지를 확고히 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AI 기세는 꺾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일선 현장의 방역인력 태부족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경기도 포천에서 40만수 규모의 산란계 농장의 살처분 기간이 무려 15일이나 소요될 만큼 방역인력, 살처분 인력이 매우 심각한 지경이라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이미 AI가 발생한 농장은 신속한 살처분이 급선무임에도 불구하고 인력 부족으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번 AI가 발생한 34개 시·군 중 4곳은 가축방역관이 아예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가축방역관이 없는 곳은 무려 70곳이 됐다.

특히 강원 11곳, 경북 6곳, 울산 3곳, 충북 2곳 등 전국 25개 자치단체는 가축방역관이 아예 없다. 농식품부 적정 기준대로라면 1곳당 최소 2명 이상의 가축방역관은 있어야 하지만 이를 충족하는 지자체는 50곳도 안된다. 이 때문에 사상 최악의 AI 발생은 전문적인 방역 인력 부족이 빚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가축방역관 부족 문제는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난 2014년 구제역과 H5N8형 고병원성 AI로 인해 큰 피해가 발생하자 당시에는 방역조직 확충문제가 도마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때 뿐이었다. 별다른 개선없이 세월만 흘러 오히려 지자체에서 가축방역관 수는 더 줄었다.

가축방역관은 지역의 가축전염병을  관리하는 수의사 공무원이다. 평상시에서는 예방 업무를 벌이다 AI나 구제역 등이 발생하면 살처분, 이동제한 등 초동방역행정을 총괄한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이지만 수의사들 사이에서는 갈수록 기피직종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축전염병 발생이 잇따르면서 과중한 업무량과 열악한 근무조건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 처우 개선 등 근본적 해결책 마련돼야 

정부와 지자체가 각 지역축협을 활용해 운영하고 있는 가축방역공동방제단 역시 정부의 인건비 지원이 계약직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전문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소규모 축산농가의 방역을 지원하기 위한 공동방제단은 전국적으로 450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사업 지침에 따르면 축협은 1인당 보조금 한도 이내에서 방역요원을 채용해야 한다. 1인당 보조금은 월 185만원으로 정규직으로 채용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정부는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방역 업무를 전담하기 보다는 다른 업무를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계약직 채용을 권고하고 있다.

방역 현장의 목소리와 전면 배치되는 상황이다. 일선 축협에서 계약직을 채용해 관련 분야에 숙달될 쯤이면 계약기간 2년이 종료되고 또다시 신규 계약직 인력을 뽑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어 지자체가 체계적인 방역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계약직 운영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다.

특히 일선 축협에서는 근무여건이 열악하고 2년 계약직이다 보니 가축방역관을 선발하기가 녹록치 않아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곳도 있지만 정부는 정규직 채용을 이유로 그나마 계약직에 지원하던 비용마저 지원을 중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함께 방역인력이 중앙에만 집중된 구조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농식품부의 경우 산하 수의직 공무원이 300여명에 이른다. 반면 가축방역관이라고 불리는 일선 지자체의 수의직 공무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AI 확산방지, 차단방역 등을 위한 현장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데 중앙에 과도하게 배치된 방역 전문인력 체계는 근본적인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매번 구제역이나 AI 등 가축 질병이 발생할 때마다 방역 전문인력 확충을 요구하는 현장의 목소리가 컸지만 거기까지 였다. 분명 소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외양간을 고칠 생각도 못하는  실정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가축방역관 운영이 어려운 한 지자체 관계자는 “오지 등 전형적인 농업 지자체는 수의직 공무원을 뽑아도 지원자가 없거나 운좋게 뽑아도 이직률이 매우 높다”면서 “처우 개선 등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전문 인력 공백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다른 방역 관계자는 “AI나 구제역 가축질병이 발생할 때만 사용할 인력을 평상시에도 운영하는 것 자체를 낭비라고 생각하는 지자체가 상당수 인 것이 사실”이라며 “처우개선은 둘째치고라도 평상시 방역활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사고부터 확립시키는 것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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