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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같고 벽력같았던 80년의 역정…골다 메이어(하)
현대 이스라엘 건국의 어머니 ‘골다 메이어’ 전 수상
2008년 01월 30일 (수) 11:02:51 박재호 pjaehool@nongupin.co.kr
  
 
  
 
(전편 줄거리) 1898년 구 소련연방이었던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골다 메이어는 1906년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했다. 20대 초반에 결혼해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갖고 있던 골다는 그러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당시 전 세계 유대인의 열망이었던 ‘새로운 이스라엘 건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화약고나 다름없는 팔레스타인(지금의 이스라엘)으로 달려간다.

그녀는 헌신적으로 일하면서 젊음을 바쳤고 여러 부서에서 일하면서 신생 조국을 위해 헌신했다. 1969년 애쉬콜 수상이 급사하자 70대의 골다 메이어가 비상 정국하의 이스라엘 수상 직에 오른다. 골다는 오늘 내일하며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 속에 있는 중동국가들과의 네 번째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데….


위대한 성
이스라엘은 이미 지난 제 1, 2, 3차 중동전쟁을 통해 이집트와 시리아의 많은 영토를 확보해 놓고 있었다. 특히 이집트의 시나이반도는 그 땅의 광대함과 함께 이스라엘 민족이 기원전 2000년경에 모세의 영도아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올 때 거쳐 왔던 이른바 ‘광야의 유랑 생활’ 40년의 역사적 현장이다.
“시나이 반도는 반드시 지켜야 돼.” (골다)

“그 위대한 성(城)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떠한 적도 그것을 허물 수는 없습니다.”(군 사령관)
사령관이 이야기하는 ‘위대한 성’이란 시나이 반도의 사막지대에 이스라엘 군이 쌓아놓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모래장벽을 말한다.

“제깟 놈들이 아무리 포탄을 날려봐야 모래무지에 묻혀 그냥 퍽하고 한번 들썩이면 그만이니 약도 오르겠지요.”
그랬다. 모래장벽에 쏘아대는 포탄과 총탄은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다. 이스라엘 군은 ‘위대한 성’ 덕분에 조금은 느긋하게 대처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세 차례의 전쟁에서 망신을 톡톡히 당했던 이집트는 많이 달라졌다.
이집트 지도부는 세계 각국의 군사전문가들을 초빙, 혹독한 훈련과 정신력 고취로 군의 면모를 일신했던 것이다. 각국의 군사전문가들 중에는 북한에서 온 교관도 있었다.
그가 제안했다.

“거대한 소방호스를 준비하십시오. 막강한 수압을 자랑하는 독일제 호스가 있는 걸로 압니다. 이스라엘이 쌓아 놓은 모래장벽은 그 호스만 있으면 간단히 격파할 수 있습니다.”

욤키푸르 전쟁
1973년 기어이 제4차 중동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흔히 ‘욤키푸르 전쟁’이라 불리는 이번 대전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됐다.
그해 10월 6일 2시 5분, 이집트와 시리아는 각각 수에즈운하와 골란고원에서 이스라엘군을 기습했다.
“큰 일 났습니다. 수상 각하. 시나이반도의 모래성이 초고압 물대포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당황한 우리 군이 밀리고 있습니다.”
북한 군사고문이 제안한 물대포는 엄청난 위력을 과시했다.
이스라엘군은 북쪽의 골란고원과 남쪽의 수에즈운하에서 많은 희생자를 내며 결정적 위기상황까지 몰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이오? 저들이 침공해 온 시기는 라마단 기간 직후 아니오?”
라마단 기간이란 이집트나 시리아와 같은 이슬람 국가에서 행하는 공식 금식 기간이다.
“그러나 각하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은 그 기간에 군사들에게 오히려 더 잘 먹어 놓으라고 독려했던 모양입니다. 우리가 미처 정보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초기 일주일 동안 악전고투를 면치 못했다. 골다에게 보고되는 사상자 수도 엄청나게 늘어갔다. 골란고원을 거의 손에 넣은 시리아군은 곧 이스라엘의 심장부를 쳐 들어갈듯 했고 모래장벽을 돌파한 이집트 군도 시나이 반도로 쏟아져 들어왔다.
‘으음~이래서는 곤란해.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겠어.’
골다와 군 수뇌부는 전선이 넓게 펼쳐져 있고 사막이라 이동이 신속치 못한 시나이 반도의 병력을 최소한의 방어력만 남긴 채 골란고원에 집중시켰다.

병력을 신속히 재배치하고 반격에 나선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전세는 역전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군은 다시 골란고원을 차지했고 수에즈 운하 역시 열흘이 못돼 이스라엘의 차지가 됐다. 전쟁은 순식간에 역전 돼 이집트와 시리아는 또다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물러나야 했다. 미국, 소련, 영국 등이 전쟁의 장기화를 우려해 중재에 나섰다.

종전은 됐으나 언제라도 다시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것이었다.
전쟁의 파장도 무서웠다. 이 전쟁 이후 아랍의 산유국들은 석유를 무기화 해 세계를 오일 쇼크로 몰아넣었다. 세계가 기름 값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편린(片鱗)들
전쟁은 끝났다. 그러나 이스라엘 내의 여론은 좋지 않았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이스라엘은 너무도 압도적인, 너무도 기적적인 승리를 거둬왔기 때문일까? 이번 전쟁에서 초기 수일 동안 많은 사상자를 낸 것과 시리아와 이집트의 작전에 대한 정보 부재에 대한 비난의 여론이 폭등했다.
1974년 4월 11일 골다는 수상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국민들의 성원과 기도 속에서 지금까지 수상 직무를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초기대응에서 저의 불찰로 우리 병사들은 많은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저는 오늘부로 수상 직에서 물러날까 합니다. 부디 우리 이스라엘 창조주의 영원한 가호가 있으시기를….”

자리에서 물러난 골다는 자택의 자그마한 서재에 앉아 종일 책을 보며 지냈다. 때로 지인들이 찾아오면 담소를 나누며 지난 일을 회상했다. 골다와 골다 세대의 이스라엘 인들이 개척해 낸 새 나라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이 이들 이야기의 주된 주제였다.
“기억나세요. 지난 1947년 이제 막 우리나라가 재탄생하기 직전 각하(골다)께서 평화 교섭을 위해 요르단에 파견됐을 때 일 말 이예요.”

“그래 기억 나. 그때 요르단의 압둘라 국왕은 참 다정한 분이셨지.”
“저는 그때 각하께서 하셨던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었어요.”
“뭐~ 그건 우리 국민들이라면 당연히 다 그렇게 말하지 않겠나?”

그때 요르단 국광은 골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딸이 레비빌 키부츠에 살고 있다면서요? 그곳은 이집트군의 공격 타깃입니다. 따님을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는 것이 좋을 텐데요….”

골다는 이렇게 답했다.
“폐하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레비빌에는 많은 이스라엘 부모들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만약 다른 어머니들 역시 자기 아이들을 전부 데려가 버린다면 이집트는 누가 막겠습니까?”
다른 이가 골다에게 말했다.

“제가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때 각하께 전황을 보고하러 들어갔다가 머쓱해 졌었던 것을 아십니까?”
“글쎄? 무슨 일일까?”
1967년 벌어진 6일 전쟁은 그야말로 현대전의 기적이었다.
압도적인 군사력과 군사수를 보유한 이집트 등 중동국가에게 이스라엘은 불과 6일 만에 완전한 승리를 거뒀던 것이다.

“저는 흥분해서 단숨에 각하께 달려가 아랍인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들처럼 흩어지고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때 골다는 장군에게 이렇게 답했었다.

“민족이 민족을 죽이는데 우리가 그렇게 까지 기뻐할 일은 아니겠지요. 우리 군인들이 덜 다친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이러한 전쟁 중에 우리가 이겼다고 감사를 올리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쁨만으로 받으실 것인지…. 진정 우리가 기뻐해야 할 것은 광야에서 산딸기가 열리고 들판에 꽃이 피는 것이 아닐까?… 내가 전쟁 중에 너무 감상적이오?”
“저는 그때 각하께 정말 놀랐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각하에게는 얼음같이 차가운 피가 흐르는 줄 알았거든요.”

이스라엘 현대사의 어머니
골다는 1978년 12월 8일 예루살렘에서 숨졌다. 향년 80세.
1921년 미국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황무지 같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해 와 유대인 나라의 건국이라는 일념으로 싸워 온 강철 같은 일생이었다.

골다가 죽은 후 의사의 발표가 있었다.
“골다 메이어 전 수상은 지난 12년간 백혈병을 앓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인은 그것이었습니다. 말년에는 끔찍한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정말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골다는 자신의 병이 악화되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게 했다.
그해 12월 12일 전 국민의 애도와 전 세계의 유대인들의 애도 속에 골다는 조국의 품에 잠들었다.
‘너희가 땅에서 비롯됐으니 결국은 땅으로 돌아가리라’는 성경 구절처럼 골다는 자신의 근본이요 태초의 시발점으로 믿었던 가나안 땅에 잠들었다.

골다 메이어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시온의 영광’을 구현해 낸 건국의 어머니로 추앙받을 뿐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현대여성 파워의 아이콘으로 회자되고 있다.
골다 메이어야 말로 원조 철의 여인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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