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희 삼
국립농업과학원 곤충산업과장



지구 위에 사는 동물의 7할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곤충이다. 초등학생도 아는 상식이지만 동물의 74%를 차지할 만큼 다양한 곤충의 생존력과 기작을 연구하는 것은 상식을 뛰어넘는 과학이다.

곤충은 끊임없는 생태계 사슬에서 상호 작용하면서 자신을 보호하는 형태로 진화하였다. 이러한 진화는 곤충뿐만 아니라 식물에서도 일어난다. 최근 연구에서는 두 종류의 진드기를 처리한 십자화과(Brassicaceae) 식물에서 서로 다른 방어물질을 분비하는 것을 밝혀냈다.

이처럼 식물은 곤충에 대항하기 위해 방어물질을 분비한다. 식물의 방어물질을 감지한 곤충은 이를 이겨내기 위해 진화를 거듭한다. 곤충과 식물은 서로 경쟁하고 보완하면서 생태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생존을 위해 식물은 잎이 애벌레들에게 먹히는 것을 막기 위해 자극성 화학물질인 GLV(Green Leaf Volatiles)를 분비하여 포식 곤충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한편, 곤충도 바이러스, 곰팡이, 세균 등에 노출되기 쉽기 때문에 병원성 미생물의 감염에 대처하기 위해 비교적 복잡한 생물적 방어체계를 만들었고, 외부 자극에 여러 항생물질을 분비하여 미생물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방지하였다.

이처럼 진화의 결과로 곤충이 자체에서 만들어 내는 물질은 무궁무진하다. 최근 농촌친흥청에서는 흰점박이꽃무지 유충(꽃벵이)에서 분리한 ‘인돌 알칼로이드(Indol alkaloids)’가 혈액이 응고되는 인자의 활성을 70% 가량 억제하면서 혈전 생성량을 60~70% 가량 줄이는 효과가 있음을 밝혀냈다.

오래 전부터 쓰임이 많았던 누에는 뽕잎을 먹고사는 누에나방의 유충이다. 이 뽕잎에 함유된 DNJ(1-deoxynojirimycin)은 혈당을 강하시키는 효과가 있는데, 뽕잎 그 자체로 섭취했을 때보다 누에로 섭취했을 때 효능이 큰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왕지네에서 분리한 항생단백질인 스콜로펜드라신1은 아토피 피부염을 치유하는데 우수한 효과를 나타낸다.

이 물질은 실험을 통해 아토피 원인 물질로 알려진 면역글로불린 E와 히스타민을 각각 57%, 82% 가량 감소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애기뿔쇠똥구리에서 분리한 코프리신은 사람에게 해로운 여드름 원인균, 구강균, 피부포도상균 등에 강한 항균 활성을 나타내고 장내에서 급성 위막성 대장염을 일으키는 균에 대해서도 탁월한 항균 효과를 보인다.

징그러운 벌레로만 홀대받던 곤충이 농업과학과 만나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동물 180만종 중에 곤충이 무려 130만종을 차지하고 거의 모든 환경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볼 때, 기능과 효능이 밝혀지지 않은 곤충 유래 물질의 수와 그 종류는 무한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로봇, 빅데이터 등의 기술이 기존 산업 분야와 융합하는 4차 산업혁명이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러 나라에서는 농업과 4차 산업혁명의 융․복합연구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ICT(정보통신기술)과 연계한 자율주행 트랙터, 인공지능 제초로봇, 농업 빅데이터 정보망, 농작물 질병 원인 판별 어플리케이션 등을 개발하고 상용화 하였으며 일본에서는 새로운 로봇 전략 수립을 통해 2020년까지 무인 농기계를 실용화할 방침이다. 국내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형 스마트팜 기술을 확보하기 위하여 ICT 기기를 표준화 시키고 단계별 스마트팜 핵심기술을 국산화 시키는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천연 자원의 보고인 곤충의 기능성 물질이 융복합 한다면 농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삶속으로 곤충이 날아 드는 날이 멀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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