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흥규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공학과장



늦은 봄에서 초여름 사이 커다란 나무아래 그늘이 안식처가 되는 한낮, 커다란 나무 아래서 바람을 쐬다 고개를 올려다보곤 놀란 적이 있다. ‘어? 나무에 튤립이 피었네? 튤립이 피는 나무라니...’

봄에는 이처럼 튤립 모양의 꽃으로, 가을이면 황금보다 노랗게 빛나는 단풍으로 우리를 사로잡는 것이 바로 백합나무다.

백합나무는 튤립트리(Tulip Tree), 튤립 포플러(Tulip Poplar) 등으로 불리는데, 나무를 쪼개 보면 표면이 연한 노란빛이고 포플러만큼 빨리 자라는 까닭에 옐로우 포플러(Yellow Poplar)로도 불린다. 본래는 미국 동부의 혼합 활엽수림에 분포하는데 1900년대 초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잎은 어긋나게 달리고 길이는 10~15센티미터 정도로 끝이 수평을 이루며 손바닥 또는 네모진 모양으로 갈라지는데 가을에는 노랗게 단풍이 든다. 꽃은 5〜6월경인 초여름에 가지 끝에 녹황색으로 튤립 모양의 꽃이 위를 보고 한 송이씩 피는데 개화기간이 긴 편이고, 꽃받침조각은 수평으로 벌어지며, 여섯 개의 꽃잎에는 그 아랫부분에 주황색 띠가 둘러져 있다.

백합나무는 완전히 자라는 데 약 20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며 그 수명도 최대 300년 정도로 길어 기념수로 적합하다. 뿐만 아니라 수형 또한 웅장하고 아름다워 조경수와 풍치수(風致樹)로도 적합하고 공해에도 강해 공업단지의 가로수, 녹음수로도 쓰인다.

백합나무로 만든 목재는 밝은 노란색에서 노란빛이 감도는 녹색을 띄는데 가구재, 합판 패널, 종이, 목공제품, 상자 및 나무상자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병충해에도 강하고 연간 생장속도도 낙엽송보다 2배 이상 빨라 수익성이 기대된다. 게다가 산지와 농지는 물론 바위나 돌이 많은 8부 능선까지 어디서든 잘 자라므로 초기에 활착만 잘 도와주면 이후에는 특별한 관리가 필요치 않다.

백합나무는 목재 가치뿐만 아니라 훌륭한 밀원수이기도 하다. 산림청은 기존 대표적인 밀원수인 아까시나무 숲이 기후 온난화와 황화현상 등으로 급격히 쇠퇴하자 백합나무를 대체 밀원수로 정하고 2020년 6만 헥타르(㏊)를 목표로 해마다 5천 헥타르 가량의 조림을 시작, 현재까지 1만5천 헥타르 규모의 조림을 이루었다.

산림청의 이 같은 조치는 밀원수 고갈과 이상 기후로 중부 지역 아까시나무 꽃의 개화 시기가 평년보다 10~15일 빨라져 전국적으로 동시 개화 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벌꿀 채취기간이 절반 가까이 줄어 양봉농가들의 벌꿀 생산량이 매년 크게 감소하는 등 피해가 현실로 나타나는 데 따른 것이다.

백합나무는 개화 기간이 아까시나무보다 두 배가량 길고 나무 수명도 아까시나무의 세 배에 달한다. 우리나라 20년생 백합나무는 1.8킬로그램의 꿀이 채취되는데 2킬로그램의 꿀이 채취되는 20년생 아까시나무와 큰 차이가 없다. 특히 진한 갈색의 백합나무 꿀은 매력적인 향기에 다른 꿀보다 미네랄 함량이 풍부하고 항산화 능력도 탁월해 백합나무 원산지인 미국에서는 아까시나무 꿀보다 인기가 높다.

백합나무는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도 뛰어나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팀에 따르면 백합나무 30년생 한 그루당 연간 탄소 흡수량이 6.8(탄소 ton/년)으로 같은 수령의 소나무(4.2), 낙엽송(4.1), 잣나무(3.1), 상수리나무(4.1)보다 적게는 1.6배, 많게는 2.2배나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고품질의 목재와 영양만점 꿀, 거기다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까지 탁월한 팔방미인이 아닐 수 없다.

한편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국내에서 적응된 우량한 백합나무 선발목을 재료로 조직배양 기술을 이용한 클론(clone)묘를 육성하고 있다. 클론묘는 생장이 우수한 개체만을 복제하여 만들기 때문에 일반묘에 비해 높은 생산성을 기대할 수 있다.

클론묘는 2004년에 처음 시험식재를 실시한 이래 지난 10년간 약 36만여 그루가 보급됐다. 앞으로는 모니터링을 통해 클론묘의 생장 우수성을 지속적으로 지켜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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