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충제 파동’, 예견된 재앙

▲ 전남 나주시 공산면의 한 산란계 사육장. 검사결과 닭 진드기 박멸용으로 쓰이는 살충제 성분이 기준치 21배를 초과했다.
업계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수년전부터 음성적으로 살충제 사용을 남발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최근 들어 산란계 농장에서 빈번하게 발생해 생산성저하 등의 큰 피해를 줬던 닭 진드기 일종인 와구모를 박멸키 위해 살충제를 빈번하게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친환경인증센터 등에서 살충제 내성 문제를 제기할 정도로 산란계농장의 질병이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고 지적했지만 정부는 그때마다 안심할 정도라며 유야무야 외면해 왔다.
그러다 최근 유럽발 ‘살충제 계란’ 사태가 드러나면서 소비자단체들이 국내 계란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실시해 살충제를 발견하고, 정부가 뒤늦게 인정하면서 ‘살충제 계란’ 논란이 확산됐다.


 ‘살충제 파동’ 확산

14일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친환경 산란계 농장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피프로닐’ 살충제 성분이 검출됐다. 피프로닐은 가축과 애완동물에 기생하는 벼룩·진드기 등을 제거하는데 사용되는 물질로 닭에 대해서는 엄격히 사용이 금지돼 있다. 최근 유럽에서 해당 물질로 인한 살충제 계란 논란이 확산되자 세계보건기구는 피프로닐 과다 섭취 시 간장과 신장 등 장기 손상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처음 논란이 시작된 경기도 남양주의 8만 마리 규모의 농가에서는 피프로닐이 기준치인 0.02㎎/㎏ 보다 많은 0.036㎎/㎏이 검출됐다. 하루 평균 2만5000개의 계란을 생산한 해당 농가는 중간유통상 5곳에 계란을 납품했다.

강원도 철원의 5만5000마리 규모 농장에서 생산한 계란에서도 피프로닐이 0.056㎎/㎏ 검출됐다. 경기 양주에 있는 2만3000마리 규모 농가의 계란에서는 비펜트린이 기준치 0.01㎎/㎏를 초과한 0.07㎎/㎏이 검출됐다. 비펜트린은 사용이 허가돼있지만 기준치를 넘어 문제가 됐다.

경기 광주 농가도 비펜트린이 기준치를 넘는 0.0157㎎/㎏ 검출됐다. 해당 농가는 하루 1만7,000개의 계란을 생산·유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는 1주일간 전국 모든 산란계 농장 1,239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 17일 현재 32개 농장의 부적합을 발견했다.

 살충제 여파…이미 예견된 일

닭은 본래 흙에서 살며 자신의 몸에 기생하는 진드기 등을 스스로 퇴치하며 살아가는 가축이다. 현대 시대는 닭의 특성은 뒷전으로 미루고 좁은 사육공간에서 최대의 생산을 위한 밀집 사육을 일반화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좁은 케이지 안에 갇혀 스스로를 퇴치할 수 없게 된 닭들은 온갖 질병에 시달리면서 농가들이 진드기 등을 퇴치키 위해 살충제를 살포하고 있다.

현재 산란계 1마리 당 케이지 면적은 0.05㎡(가로 20cm, 세로 25cm)로 A4용지 한장 크기에 불과하다. 이렇다 보니 산란계는 날개조차 펼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흔히들 최첨단 계사로 알려져 산란계 농장이 너도나도 지향하고 있는 무창계사가 실상은 닭 스트레스를 더욱 악화시키는 사육시설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무창계사는 환경조건이 일정하게 유지되면서 오히려 해충 발생이 급격하는 늘어나는 사례가 잇따라 드러나고 있기 때문. 이번 살충제 파문도 대부분 무창계사 농가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정부가 이처럼 갈수록 독해지고 있는 살충제 성분에 대한 기준조차 마련하지 않아 살충제 오남용을 방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피프로닐 성분은 코덱스(국제식품규격) 기준치가 0.020mg/kg으로 규정돼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자체 기준치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정부가 그동안 계란에 대한 잔류농약검사를 하면서 피프로닐 성분에 대해서는 검사를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나마 최근 유럽 계란에서 피프로닐 성분이 검출되면서 이번에 뒤늦게 검사를 통해 적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또 다른 살충제 성분인 트리클로폰의 경우도 닭에 대해서는 기준치가 아예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부 농가들이 진드기 제거를 위해 살충제 살포를 남발해 왔지만 지금까지 단 한번도 트리클로폰 잔류량은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무지한 농가 탓만 할 수 있나

충남 천안의 한 산란계 농장주는 “국내 산란계 농가 대다수가 닭 진드기 와그모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있으며 대다수가 살충제 살포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살충제가 불법이라는 인식도 낮은데다가 살충제를 쓰지 않고선 진드기 퇴치가 어렵다는 현실이 이같은 파문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합법적 제품을 사용해도 진드기가 남아있을 경우 어쩔 수 없이 살충제를 쓸 수밖에 없다는 것.

지난해 한국가금수의사회 조사에 따르면 전국 120개 산란계 농장 중 94%가 닭 진드기 감염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닭 진드기가 생기면 닭이 죽지는 않지만 스트레스 요인이 돼 산란율이 떨어지고 질병에 취약해진다. 

또 다른 문제는 법으로 허용된 사용법을 지킬 경우 닭 진드기를 효과적으로 퇴치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약품 오염을 막기 위해 빈 축사나 축사 주변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으나 현장에선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당장 닭 진드기를 없애는 것이 우선인 농가들 입장에서 살충제 사용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닭 진드기를 퇴치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AI 이어 ‘계란 파동’ 재현되나

살충제 계란 파동이 확산되자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물론 편의점과 온라인쇼핑사이트들도 계란 관련제품의 판매를 즉각 중단했다. 사실상 ‘올스톱’ 상황에 직면한 것. 유통업체들은 정부 조사 결과까지 판매를 멈췄다가 결과에 따라 판매 재개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대한양계협회에 따르면 이달 들어 산란계 마릿수는 6천300만 마리로 지난해 11월 AI 발생 이전인 7천만 마리와 비교해 90%까지 회복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 산란계 가운데 병아리와 중추, 노계가 30% 이상을 차지해 실제 하루 평균 계란 생산량은 AI 발생 이전 4천300만개의 80% 수준인 3천400만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양계협회는 이번 살충제 파동으로 인해 계란 소비둔화 현상이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살충제 파동을 지켜본 소비자들의 인식이 생각보다 심각해 소비감소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무엇보다 살충제 전수검사로 인한 부적합 농장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면서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계란유통협회 관계자는 “살충제 검출 소식이 알려지면서 며칠전 동네 소매점포에서 계란을 사갔던 소비자들이 반품을 요구하는 사례가 빗발치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의 외면과 계란 소비둔화가 현상이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가들 깊은 한숨…무책임한 농가 ‘원망’

AI 여파가 막 사라지고 이제 기지개를 펴나 싶었던 농가들은 살충제 파동에 할 말을 잃었다.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양질의 계란을 공급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지켜왔던 대다수의 농가들은 이번 살충제 파동을 야기 시킨 무책임한 농가들에게 엄중한 문책이 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명의 소비자를 설득하는 과정은 무척 고되지만 100명의 소비자를 잃는 것은 순간이라는 말처럼 살충제 계란은 그간 계란산업이 쌓아놓은 공든탑을 한꺼번에 무너트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각에서는 무책임한 계란이 시중에 유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산란계 농장 단위에서 품질을 담보할 수 있는 강력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까지 계란 유통인에게만 일방적으로 강요됐던 품질 문제를 근원적으로 농장단위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자신이 생산한 계란의 품질을 보증할 수 있는 책임이 강조되는 것은 당연하다.

어찌됐든 살충제 여파는 매우 크다. 고병원성 AI를 넘어 그 파괴력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이제 막 AI 위기에서 벗어나 안정을 되찾나 싶었던 계란산업은 살충제 여파로 또다시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양계협회는 지난 17일 사과문을 내고 “이런 사태를 막고자 정부와 합동으로 농가의 교육과 홍보를 지속적으로 실시했지만 효율적이지 못했고 정부의 관리 또한 허점이 있었다는 사실에 깊이 반성한다”며 “다시는 국민여러분이 걱정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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