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준 국립산림과학원 임목육종과 연구사

경기도 남양주와 가평군을 경계로 솟은 축령산에는 잣나무 수십만 그루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해방 전후 산기슭에 심은 잣나무 묘목들이 이제는 어엿이 자라 숲을 찾는 이들에게 편안한 쉼터를, 지역 주민들에게는 귀중한 산림소득자원을 제공하고 있다. 또 2010년에는 치유의 숲이 조성되면서부터는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을 치료하고 있다.

잣나무는 오래 전부터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았다. 숲에서 자라는 동안에는 피톤치드를 내뿜어 우리의 건강을 도왔고, 잣나무 열매는 구황작물이자 별미로 한몫을 했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궁궐의 조경수가 되었으며, 집을 지을 때 기둥으로, 고인(故人)을 모실 관재(棺材, 관을 짜는 나무)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잣나무는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심재(心材, 나무줄기의 중심부에 있는 단단한 부분)가 붉어 홍송(紅松), 잎이 다섯 장이라 하여 오엽송(五葉松), 열매가 크다고 해서 과송(果松) 등으로 불린다.
잣나무는 영문명이 코리안 파인(Korean Pine)으로 외국에서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나무과로 알려져 있는데, 원산지는 한반도지만 중국과 시베리아, 일본에도 분포하고 있다.

사실, 잣나무 열매를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나무의 맨 꼭대기 그것도 햇가지의 끝에만 달리는 잣송이는 따는 것조차 매우 힘든 일이라 TV 프로그램에서 ‘잣 따는 일’이 극한직업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우리가 먹는 잣은 속껍질까지 벗겨낸 씨앗의 속살이다. 잣송이를 털어 알알이 빼낸 다음 종자의 다부진 껍데기까지 벗겨내야 맛있는 잣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채취에서 손질을 거쳐 우리가 잣을 먹기까지 수고스러운 과정이 많은 만큼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는 이유가 충분하다.

귀한 견과류인 잣은 예로부터 기운이 없거나 입맛이 없을 때 원기회복 음식으로 애용되어 왔다. 어린 시절 기억을 되짚어 보면, 할머니가 편찮으시거나 기운을 차리지 못하실 때면 어머니는 항상 잣죽을 쑤셨다. 잣은 비타민 B가 풍부하고 다른 견과류에 비해 철분 함량이 높아 빈혈의 치료와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섬유질이 많아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주어 변비치료에도 좋다.

 잣은 지방유(脂肪油, 74%)와 단백질(15%)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방의 함량이 많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잣이 품은 지방은 ‘좋은 지방’으로 알려진 불포화지방으로 올레인산, 리놀레산 등으로, 이러한 불포화지방은 피부에 윤기를 돌게 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주며, 자양강장 효과가 있다.

또한 식사 전에 먹으면 포만감이 들어 음식을 적게 먹게 되니 다이어트에도 효과 만점이다. 이러니 아는 사람은 잣을 찾아 먹을 수밖에, 하지만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고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지나치게 먹지 않기를 바란다.

이처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잣나무를 지속가능한 산림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국립산림과학원에서는 잣나무를 더욱 쓸모 있고 경제적인 나무로 육성하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현재는 채종원(採種園) 조성이 완료되어 모든 조림용(造林用) 종자를 채종원산으로 공급하고 있어 생장이 우수한 목재의 생산이 기대된다.

또한 잣송이의 손쉬운 채취를 위해 수형(나무모양)을 적절히 조절하는 기술을 개발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잣나무 목재를 사용한 실내 환경이 아토피피부염 완화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바 있다.

잣나무의 열매는 크고 무거운데다, 소나무처럼 종자에 날개가 달려있지 않아 먼 거리를 이동하지 못한다. 잣나무 종자의 이동은 다람쥐, 청설모, 잣까마귀, 동고비와 같은 야생동물의 몫으로 활엽수림에서 잣나무가 어미나무에서 멀리 떨어져 번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물론 귀중한 먹잇감이기도 하다. 혹시 산길을 가다 떨어진 잣송이를 발견한다면 동물들의 소중한 먹거리요, 잣나무가 번식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소중한 환경과 건강한 숲의 미래를 위해 그냥 지나쳐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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