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원회 “곡물 118만여톤 확보하고도 3.9%만 국내 반입”

정부는 2008년 전 세계 곡물 가격이 치솟은 ‘곡물 파동’을 겪은 뒤 2009년부터 민간이 진출하는 해외농업자원 개발사업에 융자금을 지원해왔다. 작년까지 8년간 투입된 융자금은 총 1천553억 원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융자금이 ‘눈먼 돈’이 될 우려가 있다고 보고 통제·관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개선 권고안을 마련해 농림축산식품부·한국농어촌공사에 권고했다.

농어촌공사는 민간업체가 해외에서 밀·콩·옥수수·오일팜 등을 생산·유통하는 사업에 연리 2%로, 총사업비의 최고 70%까지 융자해준다. 지난 8년간 연평균 200억 원 가까이 융자를 해줬다.

‘해외농업·산림자원개발협력법’에 따라 농식품부 장관은 곡물 수급에 중대한 차질이 생기거나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융자금을 받은 사업자에게 해외에서 개발한 곡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국내에 반입하라고 명령할 수 있다.

2008년 이후 곡물가격 안정으로, 지금까지는 정부가 국내 반입명령을 내린 적은 한 번도 없다.
이 때문에 지난 8년간 융자금 투입을 통해 해외에서 확보한 곡물량은 118만7천여톤이지만 이 가운데 국내로 반입된 양은 3.9%(4만6천여톤)에 불과하다.

권익위는 사업자들에게 국내반입을 명령할 수 있는 ‘중대한 차질이 생기거나 생길 우려가 있는 경우’에 관한 구체적 기준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비상시 곡물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추진되는 사업인 만큼 명확한 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국내 반입량을 확인할 별도 근거가 없이 해당 업체가 제출한 신고서만으로 반입량을 집계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권익위는 융자기준(지원자격·평가항목·채점기준)을 농식품부의 행정규칙(고시)이 아닌 농어촌공사의 내부지침으로 정해 필요에 따라 융자심의회가 기준을 바꾸고 사전공고도 없이 변경된 기준을 적용해 업체를 선정하는 사례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일례로 2014년 융자심의회는 사전공고 없이 융자 대상을 식품원료(팜유·전분 등)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내부지침을 바꿔 P기업과 C기업에 대해 융자지원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익위는 이와 함께 농어촌공사가 융자신청 접수 후 회계·법무법인을 통해 사업성과 법률 적합성 검토작업을 하지만 신청업체의 자료 미제출·답변거부에도 감점 조치를 하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5년 융자를 신청한 S기업의 경우 현지사업체의 사업승인과 관련된 서류 일체를 융자심의회에 내지 않았음에도 융자대상 기업으로 선정됐다.

권익위는 이밖에 검토업무를 맡은 회계·법무법인의 임원이 융자심의회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공정한 검토’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며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특히 ‘오일팜’ 등은 해외농업자원개발 융자금과 해외산림자원개발 융자금 양쪽 대상 자원에 해당함에도 중복지원 여부를 확인하는 규정이 없다고 우려했다.

권익위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개선하고자 내년 상반기까지 ▲반입명령을 내릴 구체적 기준 마련 ▲반입 곡물량 집계를 위한 근거서류 제출규정 마련 ▲융자기준을 행정규칙으로 규정하고 세부기준 공고 ▲외부 전문기관의 융자심사 실효성 확보 ▲유사사업과 중복 여부 확인절차 마련 등을 농식품부·농어촌공사에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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