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육림의 주인공, 광기의 새디스트 … 중국 은나라 달기

  
 
  
 
사람들은 무서워하면서도 잔혹드라마(혹은 잔혹물)에 호기심을 느낀다. 무의식적으로 잠재돼 있는 폭력성의 대리구현일까? 반대로 공포와 불안을 느끼게 하는 불특정대상으로부터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은 안전하다, 안락하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느끼는 안도심리?

귀신, 유령, 원혼 등이 무서운 것 같지만 현실생활에서 정말 무서운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일 것이다. 살인을 일삼거나, 눈 하나 깜짝 않고 주위 사람을 저 세상으로 보내는 무서운 사람이 자기 주변에 있다면? 더욱이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그 사람의 손아귀에서 벋어날 수 없는 신세라면?..... 그것이야 말로 숨 막히는 공포가 아닐 수 없다.

역사 속에서는 무시무시한 살인마들이 많이 있었지만 여성들 중에도 취미(?)처럼 살인을 즐기던 광녀(狂女)들이 꽤 있어, 수많은 살인마 후보(?) 중 시리즈를 위해 네 명으로 압축하는 것이 힘들었을 정도다. 그녀들이 그렇게 통제 없이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던 이유는 왕녀, 공주, 여왕, 왕의 애첩 등 권력의 중심에 있었던 신분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는 공포물을 보는 기분으로 고대와 중세의 잔혹 녀 들을 만나본다.


주지육림(酒池肉林) 의 주인공, 광기(狂氣)의 새디스트… 중국 은나라 달기.
중국역사에는 잔인한 여자들이 많이 있다. 유비의 본 부인 여치(여태후)와 은나라 말희, 청나라 서태후, 당나라 측천무후 등 고문과 살인을 일삼던 악녀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잔혹하기로는 두 번째 라면 서러워 할 그 분야 일인자가 있으니, 이름 하여 주나라의 달기다. 이 여인의 방탕과 환락지향은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가 됐을 정도로 유명한 사실이고, 그녀의 광적인 새디즘은 정신병적인 살인 욕과 결합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무수한 피를 흘리게 했다.
결국 중국 역사의 여명(黎明)이라 할
수 있는 은나라(기원전 1600년~기원전 1057년)는 달기와 달기에 정신이 팔려 정사를 내팽겨 친 폭군 주왕(紂王)대에 멸망하고 말았다.

얼굴 보면 못 죽인다

“저 년의 목을 베라.”
기원전 1057년, 후에 주나라의 무왕이 되는 ‘희발’은 최고의 책사 ‘강자아(강태공)’의 도움으로 은나라를 쳤다. 백성들의 고통과 굶주림은 아랑곳 않고 쾌락만을 추구하는 폭군 ‘주왕’과 그의 애첩 ‘달기’를 죽이고 새 나라를 세워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거룩한 뜻이었다.

은나라(상나라라고도 한다) 수도는 순식간에 포위됐다. 주왕은 대세가 기울었음을 알고 달기와 즐기기 위해 만든 초호화 전망대 ‘녹대’에 올랐다. 그는 거기서 수많은 금은보화를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그렇게 희대의 폭군이요 미치광이였던 주왕은 산더미 같은 금은보화와 함께 녹대를 장작삼아 생을 마쳤다. 500년 이상을 지속한 은나라의 마감이기도 했다.

달기는 곧 침략군에 붙잡혔다. 성난 군중들은 “달기를 죽여라” “달기를 찢어 죽여라” “달기를 구리기둥에 올려라”며 소리쳤다.
통제 불능상태까지 동요하자 ‘히발’은 처형을 서두르려했다. 그런데.....
“엇! 저 녀석 저거 왜 저래?”

망나니가 주춤하며 물러서는 것 아닌가! 목을 베려는 순간 달기가 얼굴을 돌려 망나니를 쳐다보자 망나니는 그만 얼어붙고 만다. 평생 수없는 사람의 목을 베었을 녀석이 달기의 얼굴을 보고 그만 넋이 빠져버린 것이다.
“바보 같은 놈! 빨리 다른 놈 시켜”

그러나 다른 망나니도, 또 다른 망나니도 마찬가지였다.
‘희천’과 ‘강자아’가 직접 형장으로 올라가 달기를 쳐다보았다.
‘으음~’ 낮은 탄식과 함께 순식간에 달기에게 빨려 들어가는 두 사람!

달기는 둘을 보며 이렇게 소리였다. “내가 은나라를 멸망케 한 것을 너희가 왜 모른단 말이냐? 내가 주왕을 혼미케 만들지 않았던들 너희가 어떻게 이 단단한 은나라를 평정했겠는가? 따라서 나는 공은 있으되 죄는 없다.”
희천도 강자아도 정신이 어질어질 했다. 도대체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강자아’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직접 활을 들었다. 그는 달기의 심장에 세발의 화살을 박아 넣었다. 그제서 야 달기는 숨을 놓았다.

천상천하절색(天上天下絶色)

달기는 어떤 여인인가?
<살구 같은 얼굴빛에 복숭아처럼 분홍색 뺨, 머리카락은 구름처럼 충성하고 칠흑처럼 검구나. 눈썹은 봄 산처럼 가늘고 날렵하며, 눈동자는 가을파도처럼 둥글다. 가슴은 풍만하고 허리는 잘록하며, 엉덩이는 풍성한데 다리는 맵시 있게 잘도 빠졌다. 햇빛에 취한 해당화, 비에 젖은 배꽃보다도 아름다움이 더하다.> 고서에 표현된 달기의 아름다움이다.

달기는 기원전 11세기 당시 중국 유소 지역(현재의 중국 해남)의 유력자 ‘소호’의 딸로 태어났다. 소호는 지역 내에서 세력이 강대해지자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주왕의 군대는 막강했다. 주왕은 간단히 소호의 반란을 진압했다.

“못난 놈! 참으로 어리석구나. 네 감히 나에게 대들었단 말이냐. 내가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것이 그냥 헛소문으로만 들렸더냐? 아홉 마리 황소를 함께 묶어놓아도 내가 잡아당기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한다. 내 지략과 빠른 판단력은 너희 같은 범인(凡人)의 것이 아니다.”

“제가 어리석어 천하에 없는 죄를 지었나이다. 대왕이시여. 여기 제 딸을 바치오니 기쁘게 받아주옵소서.”
천하의 영웅이었던 주왕도 달기의 모습을 보자 다리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달기를 보는 찰나부터 완전히 사로잡혔다.

‘아아~ 소호의 반란은 오히려 축복이었어. 이런 아이를 만나다니. 어떤 금은보화도 불로장생도 이 아이와는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영웅과 천하절색의 이 만남이야말로 500여년을 이어온 은나라의 몰락으로 가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악마의 화신

주왕은 밤낮으로 달기를 끼고 살았다. 누가 봐도 상관없었고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둘 다 폭발적인 성적(性的)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고 취향도 같아 서로가 서로를 마음껏 탐닉했다.
낯 뜨거운 교성이 대낮부터 궁궐 안에 울려 퍼지면 밤을 지나 새벽까지 이어졌다. 정사(政務)는 이미 오래전에 내 팽겨 쳐졌지만 아무도 임금에게 바른말을 할 수 없었다.
달기의 잔혹함 때문이었다.

주왕의 행차에 따라나섰던 달기는 이상한 요구를 했다.

“마마 저기 보이는 임산부 보이시죠? 그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요.”
“그래? 그러면 잡아다가 배를 한번 갈라보자꾸나.” 달기는 얼굴빛도 변하지 않고 그걸 쳐다봤다.
“사람의 다리뼈는 어떻게 생겼을 까요?”

“궁금하냐? 여봐라 저기 지나가는 노인네를 잡아 다리를 한 번 잘라 보거라.”
달기와 주왕은 이런 짓을 서슴지 않고 즐겼다. 주왕은 그런 날 일수록 달기의 성적에너지가 더욱 넘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둘은 미쳐가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달기가 주왕에게 졸랐다.“마마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궁궐을 지어주셔요. 바닥과 기둥이며 벽을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보물들로 장식해 주시고 커다란 연못도 파서 배타고 시를 읊으며 마마와 함께 인생을 즐기고 싶어요.”

주왕은 백성들을 마구 동원해 강제노동을 시키면서 7년을 혹사시켰다. 길이가 1km에 이르고 높이는 아파트 5층 높이의 화려한 궁궐에는 200개 가까운 방을 만들어 놓고 세상의 화려한 보물들로 장식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전설의 궁궐 ‘녹대’다.

달기는 녹대에 들어온 후부터 더 악독해져 갔다. 젊은 날에는 영민했고, 나름대로 정의감도 있었다는 주왕은 달기를 만난 후부터 완전히 뭐에 홀린 사람처럼 달기의 품을 벗어나지 못했다. 달기는 직접 형벌을 고안해 냈다.
“마마 구덩이를 파서 거기에 불을 지펴놓고는 커다란 구리기둥을 다리 삼아 걸쳐놓고 죄수들을 건너게 하는 거예요. 단 죄수는 벌거벗어야하고, 구리기둥에는 기름을 잔뜩 발라 놓는 거죠. 미끄러져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건너는 놈을 살려주도록 하겠어요.”

그러나 거기서 살아날 사람은 없었다. 위태위태하게 기둥 위를 걷다가 미끄러져죽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죄수들이 떨어져 불에 타 죽으면서 소리치는 비명을 들으면 달기는 쾌감을 느꼈다.
달기는 구덩이에 전갈이나 독사들을 잔뜩 잡아 놓고는 죄수들을 거기 집어 쳐 넣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즐거워했다.

주지육림(酒池肉林)속에 진 은나라

주왕과 달기에 대한 원성이 하늘을 찔렀고, 은나라를 멸하자는 분노의 목소리가 대륙에 조용히 메아리쳤다. 각지의 영웅호걸들이 뜻을 합쳤다.

그러나 달기에 빠진 주왕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마마 저 연못에 술을 가득 채우고 주변 나뭇가지에는 고기를 걸어 놓고 마음껏 먹고 마셔요. 연못주위에 벌거벗은 선남선녀들을 풀어놓으면 더 재미있겠네요.”

이런 미치광이 같은 짓이 몇 날이고 이어졌다. 궁중안의 대신들도 더는 참을 수 없게 됐다.
은나라가 기울어가고 있었다.
마침내 기원전 1057년 ‘희발’을 비롯한 영웅들은 은나라를 쳤다.

아무 대비도 없던 주왕은 그 막강한 군사력과 풍부한 자원과 인력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할 수 있었어도 내부의 대신들과 국민들이 주왕의 명령에 응하지 않았으리라. 달기는 처형장에서 “나는 오히려 공을 세운 것.”이라고 우겨댔지만 죽음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달기는 지금도 중국에서 ‘달기정(澾己精)’이라는 속어를 통해 회자되고 있다. 그것은 “달기같은 년”, “여우같은 년(狐狸精)”이란 뜻으로 음흉하고 음탕한 여인을 욕하는 말이라고 한다. 달기야 말로 중국 최강의, 아니 세계 최강의 잔혹한 악녀의 대명사로 손색이 없는 여자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여성농업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