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파동·낙태죄 폐지 등 ‘여성 건강권’ 사회이슈로 점화

▲ 범여성계 연대기구는 지난 4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앞서, 대통령 후보를 초청해 성평등정책 간담회를 개최, 여성계의 5대 핵심 정책과제인 남녀임금격차 해소, 남녀동수내각, 여성폭력 철폐, 여성생애주기별 1인가구 지원 등을 요구했다.

올 한해는 여성의 건강권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한 생리대 브랜드의 부작용 문제가 생리대 유해물질 사태로 확산되며 여성의 건강과 직결되는 생리대에 대한 불신이 커졌다. 또 여성의 생명권, 재생산권, 건강권, 삶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는 ‘낙태죄 폐지’도 뜨거운 감자로 또다시 떠올랐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최근 선정한 ‘2017년 여성 8대 뉴스’를 통해 올 한해 여성계의 이슈를 짚어봤다.


생리대 유해물질 사태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제기돼 온 한 생리대 브랜드의 부작용 문제가 생리대 유해물질 사태로 확산됐다. 특히 올해 3월 여성환경연대와 강원대학교 김만구 교수팀이 국내 생리대 10개 제품을 대상으로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실험 결과를 발표하면서 사태는 더욱 증폭됐다. 실험 대상 전 제품에서 유해물질 22종이 검출됐고 그 중에는 휘발성 유기화합물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여성들의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검출된 휘발성 유기화합물이 인체에 유해한 수준이 아니라는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국민들은 이를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생리대는 여성건강과 직결되는 특수한 생활용품으로, 이번 사태는 우리사회의 여성 건강권에 대한 관심과 논의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내년 10월부터 생리대와 같은 기타의약품 등의 용기나 포장에 의무적으로 성분을 표기하는 약사법개정 법률안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환경부는 관련 부처 및 전문가와 논의해 생리대 유해물질의 인체 노출 가능성과 건강 피해 연관성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 ‘생리대 건강영향조사’를 실시할 계획임을 밝혔다.

낙태죄 폐지…사회이슈로 재점화

지난 10월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 합법화 및 도입‘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에 23만 명이 참여하면서 2012년 헌재의 낙태죄 합헌 결정 이후 ‘낙태죄 폐지’가 다시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조국 민정수석은 “현행 법제는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국가와 남성의 책임은 완전히 빠져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 외에 불법 임신중절 수술 과정에서 여성의 생명권, 여성의 건강권 침해 가능성 역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며 “내년에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실시해 현황과 사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겠다”고 8년 만에 실태조사를 재개할 것을 밝혔다.

‘낙태죄 폐지’를 둘러싸고 여성의 생명권, 재생산권, 건강권, 삶에 대한 통제권을 주장하는 낙태죄 전면 폐지 주장과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을 강제로 빼앗는 살인행위라는 낙태죄 폐지 반대 주장의 뜨거운 논란으로 단기간에 사회적 합의를 찾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8년간 중단됐던 실태조사가 재개됨에 따라 제대로 된 실태파악을 바탕으로, 한 단계 더 진전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차별 없는 헌법으로 개정되길”

올해 1월 출범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이하 개헌특위)를 중심으로 헌법 개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여성계는 실질적인 양성평등 사회 구현을 위한 국가적 목표를 반영한 별도의 헌법 조항을 신설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현행 헌법에는 양성평등 관련 조항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다. 그동안 ‘성평등’이라는 용어사용에 대한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개정의 내용과 방향성에 대한 국민적 여론수렴을 진행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성평등’ 용어 찬성 측은 남녀 대결 구도로 보는 사회적 시각을 보완하고 동성애에 대한 권익 보호 차원에서 ‘성평등’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고, 반대 측은 동성애와 동성결혼을 합법화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면 극심한 사회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롭게 개정될 헌법은 우리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할 수 있는 선진적 헌법이어야 하며, 더 나아가 실질적인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정의롭고 차별 없는 민주적 헌법이어야 한다.

직장 내 성폭력 문제

지난 10월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샘 신입사원이 직장 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면서 ‘한샘 성폭행 사건’이 드러났다. 이외에도 현대카드, 호식이 두 마리 치킨 등 사내 성폭력 문제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직장 및 근무지에서의 성폭력 문제는 상하관계에서의 권력을 무기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사실을 알리기 어렵고 사실관계가 은폐ㆍ축소될 가능성이 높으며 회사 내 불이익에 시달리는 등 2차, 3차 피해에 시달린다는 특징이 있다. 성폭력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사회에 양성평등 문화가 정착돼야 할 것이다.

공공분야부터 시작하는 ‘여성 대표성’ 확대

여성의 교육수준과 역량은 높은 수준에 이르렀지만 우리사회 각 분야에서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고위직으로의 진출은 여전히 심각하게 저조한 상황이다. 정부는 2017년 11월 ‘공공부문 여성대표성 제고를 위한 5개년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3급 이상 고위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의 여성 비율을 관리하기 위해 ‘여성 고위공무원단 목표제’와 ‘공공기관 여성임원 목표제’를 최초로 도입한 것으로 2020년까지 그 목표치를 각각 10%와 20%로 정했다.

뿐만 아니라 국가ㆍ지방 공무원 임용령에 여성관리자 확대 내용을 포함하고 공기업ㆍ준정부기관의 인사운영지침에도 관련규정을 삽입하는 실질적 이행방안을 확보했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공공부문부터 여성대표성을 제고해 이를 민간부문으로 확산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대부분 강제성을 띤 할당제가 아니라 목표제라는 점에서 그 실효성이 우려되기도 한다.

여성정책 새 패러다임, ‘여성 1인가구’ 지원

내년 예산안에는 여성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엿보인다. 의결된 ‘건강가정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1인가구를 ‘1명이 단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생활단위’로 정의하고, 이들의 복지 증진 대책 수립 등 지원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1인가구는 ‘건강가정기본법’에서 가정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아 지원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

우선 정부는 2018년 저소득층 여성 1인가구를 위해 그동안 몇몇 지방자치체가 원룸이나 오피스텔을 매입해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던 사업을 중앙정부 차원으로는 처음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주거ㆍ안전정책, 좋은 일자리, 체계적인 노후보장 등 생애 주기별 여성 1인가구에 대한 대책은 여성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 돼야 할 것이다.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2015년 12월 28일 타결된 한ㆍ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는 피해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되지 못했고, 일본의 법적 책임이 명기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1월에는 유엔 인권이사회가 일본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성의 있는 사죄를 하고 희생자에 대해 보상하라”는 권고를 내렸지만 이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는 “부끄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일본 정부는 합의 내용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을 핑계 삼아 위안부 문제를 외면으로 일관할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역사적 과오에 대한 반성과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성인지적 미디어 리터러시 필요”

최근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가 빠르게 생산되고 전파되면서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란 다양한 매체를 이해하고 다양한 형태의 메시지에 접근해 분석ㆍ평가ㆍ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생활의 모든 면이 스마트폰, 인터넷 방송 등 인터넷 미디어와 접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제성, 자극성 위주로 구성되는 각종 미디어 콘텐츠는 무분별하게 유포되고 있으나 청소년들은 어떠한 필터링도 없이 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청소년들의 윤리의식과 양성평등 의식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이들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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