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돈 국립농업과학원 기획조정과장

겨울의 끝, 지중해성 기후로 연중 온화한 날씨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로마에 눈이 내렸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잘 알려진 거리들, 건물들이 6년 만에 내린 눈으로 하얗게 덮여 영화 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그려냈지만 뉴스들은 아름다운 풍경보다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더 비중 있게 다뤘다. 전세계의 관심은 꽤 오래 전부터 기후변화에 집중돼 있었다.

바야흐로 신기후체제 시대다. 신기후체제란 2015년 12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 총회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을 말한다. 2020년 만료 예정인 교토의정서를 대체하는 국제협약으로, 선진국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었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195개 당사국 모두에게 구속력 있는 보편적인 첫 기후합의다.

이에 따라 협약 당사국들은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혁명 이전보다 2℃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온실가스 배출량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고군분투 중이다.

지난해 7월 프랑스 에너지환경부 장관은 2040년까지 모든 휘발유와 경유 차량의 판매를 중단하는 ‘혁명적인 조치’를 이루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보다 앞서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202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동남아시아 국가 중 처음으로 2019년부터 탄소세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업 중에서는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가 2025년까지 사용 전력의 50%를 재생에너지원을 통해 생산,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2030년 배출전망치(BAU, 특별한 감축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예상되는 미래의 배출량) 대비 37%를 줄이겠다는 내용의 감축 목표를 2015년 6월 제출한 상태다.

특히 농업은 진작부터 신기후체제에 돌입해 체질 개선에 한창이다. 우리나라 농업 분야 총 온실가스 배출량은 21.3백만 톤으로 전체 배출량의 3.1%에 불과하다.

그러나 날씨와 밀접한 산업 특성상 태풍, 폭염, 국지성강우 등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를 최전방에서 맞고 있어 신기후체제로의 진입을 서둘러온 것이다.

이미 농촌진흥청은 2009년부터 기후변화 대응 연구를 추진해 농업기상재해 조기경보 서비스, 국가 고유 온실가스 배출계수를 개발하는 등의 성과를 이뤄냈다.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신기후체제에 맞게 기후변화대응 연구사업단, 기후변화정보센터 등의 조직을 신설해 체계적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계획이다.

적응에 대한 준비도 착착 이뤄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맞춰 농업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예전에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었던 망고, 아티초크, 파파야 등이 기후변화에 따른 재배적지 이동으로 제주도와 일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재배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20여 년 전부터 아열대작물의 특성을 파악하고 국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지를 연구했으며, 우리나라에 맞는 재배기술을 개발해 왔다.

“세상에 나쁜 날씨는 없다. 다만 준비 안 된 인간만 있을 뿐이다.” 스코틀랜드의 속담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농업이 얼마나 준비하느냐에 따라 기후변화는 ‘나쁜 날씨’가 될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기보다는 철저하게 대응하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농업은 기후변화라는 위기를 뛰어넘어 인류를 풍요로운 미래로 안내하는 일등공신이 될 것이다. 준비된 농업의 강함을 준비하고 보여줘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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